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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Oct 24. 2021

1학년 여선생이 예뻤다

2013년 3월. 초등학교에서 영전강으로 불리는 영어회화전문강사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영전강은 이명박 정부 때 영어회화 교육을 위한 인력 수급을 위해 도입된 제도이다. 내가 초등학교에서 경험한 현실 영전강은 말이 영어회화전문강사였지, 영어수업을 하고 영어교과 행정업무를 하는 비정규직 영어교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담임교사만 맡을 수 없었다. 영전강이 담임을 기피하는 것은 아니고 법이 그렇다.


처음 근무했던 학교에는 영어과에 원어민 선생님 한 분이 계셨다. 캐나다 국적의 원어민이었는데, 말이 원어민이지 중학교 때 캐나다로 이민 간 교포라, 네이티브 한국인처럼 한국어를 잘할 뿐 아니라 정서도 완전 한국인이었다. 원어민 선생님은 수업 준비를 철저하게 하시기도 했지만, 수년 동안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셨기 때문에, 대본처럼 써 두신 레슨플랜 노트를 가지고 계셨다. 한국어와 영어가 모국어처럼 능통했기 때문에, 영어 수업 준비와 수업은  짚고 헤엄치기였을 것이다. 다만, 현장의 영어수업이 그게 다는 아니다. 공부할 마음이 없는 아이들을 수업에 참여시키기 위해 아이들과 악다구니를 써야 하는 것이 교사가 하는 일 중 하나다.


최소 주 18시간에서 최대 주 21시간의 수업을 해야 다. 법이 그렇다. 물론, 수업이 교사의 업무의 전부는 아니다. 수업 준비, 학생지도, 학교 행정업무 등이 있다. 주 21시간 수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 근무시간은 5 × 8 = 주 40 시간이었다. 첫 학교는 학교가 작아, 정규수업 시수 만으로는 교사의 수업시수를 채울 수가 없어서, 방과후수업, 영어 수업이 없는 1학년 2학년의 창의체험활동 수업으로서의 영어활동, 심지어 유치원 영어놀이 까지 들어갔다. 그렇게 하니 주 21시간 수업이 빽빽이 찼다.


일반 규모의 학교에서는 영어교사 1인이 한 학년에서 많아야 두 학년을 맡는다. 방과후수업이나 저학년 창의체험활동 유치원 영어놀이에 들어가는 경우는 없다. 같은 21시간 수업을 해도, 레슨플랜 하나를 만들어 놓고, 여러 반을 돌려쓴다. 한 번의 수업 준비로 같은 학년의 여러 반의 수업을 한다. 같은 수업시수라도 수업시수만큼 수업 준비를 하는 것은 아니다. 한 학년에 한 반 밖에 없는 작은 학교라, 레슨플랜 한 장으로 수업 하나 하면 끝이었다. 하루하루 닥치는 수업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레슨플랜을 짜고PPT와 학습지를 만들며, 수업 준비를 했다. 시간에 쫓겨 레슨플랜을 라인 바이 라인으로 대본처럼 만들 여유는 없었다. A4 한 장에 대략의 개요만 짜 놓고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뿐 아니라 학교의 영어교과 행정을 맡아해야 했기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원어민 선생님은 영어교사로서 유능한 분이셨지만 호랑이 선생님이었고는 가능한 좋게 좋게 아이들과 영어로 노래하고 놀이하며 시간을 보냈다. 학교에 통기타를 가져다 놓고, 기타 반주를 하며 영어로 아이들과 노래하는 것으로 동기 유발하며 수업을 시작하여, 그날의 교과 진도를 나갔다. 아이들에게 영어공부를 열심히 잘 시킨 교사는 아니었고, 영어로 아이들과 놀았다. 초등학교 영어교육은 공부가 아니라 놀이다라는 교육철학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기타 치고 노래하며 영어로 노는 것이었을 뿐이었다. 물론, 마냥 논 것은 아니다. 그날의 교과서 진도를 나가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물론, 학교 교과서 진도라는 게 학원 다니는 아이들에게는 너무 쉽고, 부모가 공부를 챙기지 못해 학습적으로 방치된 아이들에게는 너무 어렵다.


교육감이 바뀌고 정책이 바뀌면서, 작은 학교에는 더 이상 원어민 교사를 두지 않겠다는 공문이 내려왔다. 원어민 선생님은 일찌감치 떠나게 되어 다른 학교를 찾게 되었다. 나는 교장 교감 선생님 앞에서 공개 수업을 하고다음 해 재계약을 하기로 구두로 확정이 되어 있었다. 학교장의 재평가 절차를 통해 2년 차 재계약을 하기로 했는데, 경기도 교육청에서 정규 영어교과 수업시수가 18시간이 되지 않는 소규모 학교의 영어회화 전문강사를 빼겠다는 공문이 내려왔다. 창의적 체험 활동, 방과 후 수업, 유치원 영어 놀이 등은 교사의 수업시수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영어과 업무 담당자였는지라나를 계약해지하라는 공문을 받아 내가 위로 결제를 올렸고, 그렇게 해서 첫 학교를 일 년 만에 떠나게 되었다.




새로운 학교를 찾아 원서를 냈다. 두 군데 학교에서 2차 면접을 보러 오라는 통보가 왔다. 사전에 를 알고 오라는 어떤 학교가 있었다. 학교에서 나를 불러준다고 하여도, 경기도 교육청 홈페이지를 통한 공개채용이었기 때문에, 경쟁시험을 보고 합격해야 했다. 학교에서 내가 마음에 들었다고 하여도, 나보다 월등이 뛰어난 경쟁자가 있는데 나를 뽑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나를 불러준 학교의 면접을 먼저 보았더라면, 나는 그 학교에 갔을 것이다. 사실 그 학교의 지원자는 나 혼자 밖에 없어 형식적 절차를 걸쳐 채용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 사정을 몰랐던 나는 혹시 몰라 집에서 가까운 초등학교에 원서를 내고 면접을 보았다. 여기도 지원자가 나 하나뿐이어서 경쟁자 없이 나 혼자 시험을 봤다. 보통 서류전형에서 2명으로 좁혀, 2차 전형에서 모의수업을 시켜보고 면접을 한 후에 한 명을 선발한다. 개학을 앞두고 시기적으로 지원자는 없는데 학교에서는 교사 채용이 급한 시기였나 보다. 최종 면접은 교장 선생님께서 보셨다. 초등학생이지만 부모님과 함께 미국에 거주한 경험이 있어 선생님보다 영어를 잘하거나, 학원을 다녀 영어를 잘하는 학생이 있으면,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대안을 제시해 보라고 하셨다. 교육청 장학관 출신으로 유능하셨던 교장선생님의 결론은 당장 영어실력과 티칭 능력을 키우라는 것은 아니었고, 나만의 강점을 살려 승부하라는 뜻이었다. 유능한 보스 밑에서 일하면, 유능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교장선생님이 직접 일을 배울 수 있는 업무 상 내 사수도 아니고, 직접 만날 기회가 없는 최고관리자인데 말이다. 나를 불러주는 곳으로 가야 했는데, 유능한 교장선생님을 보고 갔다가 망했다.


교장선생님께서는 몇 안 되는 남자 선생님들을 퇴근 후에 부르셔서 맛있는 것 먹으러 다니는 것을 좋아하셔서, 교장선생님을 따라서 여기저기 다니기도 했다. 어느 학교 교장선생님이나 영어교육에 관심이 많으셨기 때문에, 학교 영어교육에 대하여 논의를 하기 위해 영어과 담당자인 나를 부르시기도 했지만, 중간의 부장님이나 결제라인을 통해 보고를 올렸기 때문에 교장선생님을 직접 뵐 일은 많지 않았다.


영어 수업과 영어교과 행정 외에도 친목회 총무를 맡았다. 남자 선생님들이 몇 되지도 않았고, 일이 많은 주임 선생님이 맡을 수도 없고, 바로 임용고사 합격한 새파랗게 어린 신규교사를 시킬 수도 없었다. 영어회화전문강사라는 이름은 그럴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비정규직 영어교사였던 내가 친목회 총무를 맡게 되었다. 회식 장소를 잡아 회식장소를 알리고 직원들의 친목 분위기 띄우는 그런 일이었다. 일 년에 한 번 친목회에서 직원 여행을 갔다. 여행 장소를 잡고, 친목회 회장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과 함께 사전 답사를 했다.




1학년 여선생님 한 분이 치명적으로 예쁘고 착했다. 이거는 완전 반칙이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김태희가 농사를 지으며 밭을 갈고 있다는데, 모델을 해야 할 분이 교대를 졸업하여 학교에서 선생님을 하고 계셨다. 착하고, 예쁘고, 일도 잘하고, 능력 있고, 옷도 잘 입었다. 나이도 어렸다. 8살 연하였다. 그런 분이 당연히 나를 좋아할 리가 없었다. 사랑에 국경이 없다지만, 현실세계에서 사랑에 국경이 있다. 결과적으로 이 사랑은 3개월 만에 끝났지만, 이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전에 여러 번 짝사랑을 거치면서 이미 상사병에 어느 정도 면역이 생겼다. 첫사랑 소녀를 향한 짝사랑은 7년, 두 번째 아리따운꽃은 3년이었다. 세 번째 사랑 배우 한효주에 대한 사랑의 기간은 끝없이 길었지만, 어차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기 때문에 마음이 아프거나 그립거나 그러지는 않았었다. 예쁘고 착한 1학년 여선생을 향한 사랑은 3개월이었다.


6월 학교 친목회에서 1박 2일 직원 여행을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때 1학년 여선생에게 고백해야지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준비했던 고백 타이밍은 빗나갔다. 둘만의 여행도 아니고 전 직원이 같이 간 직원 여행에서 당연히 둘이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없었다. 그분이 내 마음을 알지만 부담스러워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항상 정답은 있었다. 가는 사랑 붙잡지 말고 오는 사랑 막지 말고, 내 삶을 살면 되었다. 1학년 선생님 반은 1층 이쪽 끝에 있었고, 내가 있던 영어실은 꼭대기 층인 5층 저쪽 끝에 있었다. 그분은 1학년 소속, 나는 6학년 소속이었다. 동선 자체가 만날 수 없는 구조였다. 가까운 곳에 인연으로 맺어질 수 있는 다른 분이 계셨는지도 모른다. 바로 옆 교실에 영어전담 여선생님이 계셨다. 학교 영어 수업은 그분과 내가 둘이서 나누어했지만, 그분은 영어수업을 했지만 맡은 학교 업무는 다른 영역이었다. 학교의 영어교과 업무는 내 담당이었다. 사람에 대하여 비교할 수 없지만,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1학년 선생님보다 가까운 곳에 계셨던 옆 교실 선생님이 더 예쁘고 착했을지도 모른다.


내 사랑의 근본적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사랑이 찾아오면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내 갈길 가면서 상대의 곁에 있는 것으로 충분했다. 서로가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때까지 잘해 줄 필요도 없다. 사랑이 찾아오면 그 사랑에게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내 일을 하면서 때를 기다리면 된다. 나의 사랑이 스스로 나를 향해 걸어올 수도 있고, 다른 더 좋은 사랑이 나를 찾아올 수도 있다.


어느 순간부터 항상 죽고 싶은 생각이 가득했다. 내가 생각했던 가장 이상적인 죽음의 형태는 비명횡사였다. 짐승처럼 돌진하는 덤프트럭과 한 순간의 키스로 세상을 떠나는 그런 형태의 죽음이 나의 로망이었다. 벽에 똥칠하지 않고, 고통 속에 비명 지르지 않고,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모른 채, 순간 기억이 소멸되어, 심장이 멈추고 흙으로 돌아가는, 그 순간이 오기를 소망했다. 매일매일 죽고 싶었지만, 실제로 그 계획을 실천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분을 사랑했지만 그분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고백하려는 계획 자체를 시도도 해보지 않고 접었다. 


1학년 여선생을 그리워하는 동안 하지 못했던 일이 내 책상에 쌓여 있었다. 내일 당장 수업을 해야 하는데 수업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손까딱할 힘 조차 없었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학교에 전화해서 그 주의 남은 며칠 연차 써서 병가 내고, 마음을 추스르고 주말 보내고 다음 주부터 출근하면 되었다. 빼먹은 수업을 보강하고 한동안 내 책상에 쌓인 일과 서류를 처리하며 다른 생각하지 말고 눈썹 휘날리며 바쁘게 살면 되었다. 모질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도 실패하고 출근하지 않고 자취방에 누워 있었다. 어머니께서 학교로부터 내가 출근하지 않았다는 전화를 받으시고 자취방에 찾아오셔서 응급실로 데리고 가셨다. 


학교를 그만두었다. 바로 병원에 입원하지는 않았다. 조증이 나타난 것도 아니고, 단순히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라고 판단해서, 부모님은 그냥 집에서 쉬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셨다. 극단적인 선택을 수도 없이 생각하는 것과, 비록 실패했을지라도 실행한 것은 다르다. 실패라도 극단적인 선택을 실제로 실행했다면 바로 병원으로 가서 상담해 볼 필요가 있다. 거기서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집에서 쉬다가 어차피 집에서 쉬는데 마지막으로 약을 끊어 보기로 했다. 약 없이 조울증을 극복해 보려고 시도를 했다. 얼마 동안은 정신이 맑아지고 기분도 좋아졌는데, 얼마 되지 않아서 조울증이 재발하여 대형사고를 쳤다. 다시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을 했다. 그 이후에는 더 이상 직장생활을 하지 못했다. 동생과 아버지의 일을 도와드리며 소일하며 요양하면서 지냈다. 직장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조울증이 반복적으로 재발해서 취업을 못한 것은 아니었다. 한 번 직장을 잃고 경력이 단절되니 일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데도 사회로 복귀할 수 없게 되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놀았던 것은 아니다. 가족 일을 도왔다.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었다. 다만, 돈을 벌지 못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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