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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Dec 22. 2021

근무시간 외에는 회사로부터 칼 같이 로그아웃하고 싶다

회사 밖에서는 회사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다

회사 대표님이 인터넷 강의 끊어줄 테니 들으라고 했다. 나의 오랜 구독자라면 이미 아는 사실이지만, 참고로 회사 대표님은 내 동생이다. 회사에서 공적으로는 대표님이고, 회사 밖에서 사적으로는 동생놈이다.


탈잉에서 영상제작과 어도비 프리미어 관련 강의를 알아보라고 했다. 내가 듣는 강의라고 해서, 대표님이 들으라는 주제 아래서, 내가 듣고 싶은 강의를 듣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단지 탈잉에서 관련 강의를 검색해서 대표님께 드리면, 대표님이 들으라는 강의를 듣는 것이다.


유튜브와 영상제작 프리미어 등등에 대해 평소에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 부분이기는 했다.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대표님의 제안 아니 명령은 달갑지 않았다. 강의를 끊어줄 테니, 퇴근 후 들으라는 것이다.


퇴근 후에는 회사에서 로그아웃 하고 싶은데. 10시 출근과 동시에 회사에 로그인하고, 7시 퇴근과 동시에 회사로부터 로그아웃 하고 싶은데. 아무리 내가 관심 있던 분야의 공부를 회사에서 공부시켜 준다고 하는데도, 기쁘기는 커녕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퇴근 후에는 아내 에미마와 아들 요한이랑 놀고, 브런치에 글 쓰고,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보면서 놀아야 하는데.


유튜브 영상제작에 관심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글 쓰기 외에는 자기 계발을 할 열정이 없다. 회사 대표님은 회사와 나 개인이 동반 성장할 수 있도록 내가 자기 계발을 하기를 원하는 것 같은데, 회사 근무 시간 내에도 피곤한 일인데, 회사 퇴근 후 역량 계발을 위해 회사 장학금으로라도 내가 배우고 싶었던 관심 과목이라도 공부하고 싶은 열정과 여유가 없다.


그렇다고 회사에서 놀다 오는 것은 아니다. 현재 내가 하는 일 특성상, 일이 올 때는 몰려오고 없을 때는 없어서, 지시받은 할 일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놀고 있을 때가 있는 것이지, 맡겨진 일은 다 한다. 야근이 없는 회사이지만, 근무시간이 끝나도 그날 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마무리 짓고 간다. 나의 일이 다른 직원과는 달리 그런 특성이 있고, 대표님과 나는 사적으로는 형제관계라는 특수관계가 있다. 이 특수라는 게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있어서, 회사에서 직원들과 같은 대우를 받지 못하고, 근무시간에는 형 대우를 받지 못하는, 애로사항도 있다.


일자리가 없던 나에게 동생이 일자리를 준 것은 고마운 일인데, 돈 받는 이상으로 회사를 위해 일하고 있으니, 그에 대해서는 고마울 것도 서운할 것도 없다. 동생 회사가 나에게 돈을 주고, 나는 동생 회사에서 역할을 하니 말이다.


딱,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 정도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한계다. 동생은 회사가 성장해서 형에게 더 많은 돈을 주고 싶고, 동생 회사와 내가 동반 성장하고, 내가 더 많은 역할을 맡아주기를 바라지만, 나는 근무시간에는 시킨 일은 예쁘게 따라가지만, 근무시간 외에는 회사로부터 완전히 로그아웃하고 싶다. 근무시간 내에도 지금 내가 가진 능력 범위에서 할 수 있는 일들 선에서만 하고 싶다.


어차피 회사 대표님은 영상제작 전문가를 뽑을 것이다. 이미 채용공고를 냈다. 나에게 전문적으로 인터넷으로 강의를 들으라는 것은, 영상 담당자와 대표님 사이에서 영상 기획이나 커뮤니케이션을 맡아달라는 것이다.


내가 그 일을 하게 되면, 기존에 내가 하던 일이 업무조정이 되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쓰레기통을 만지고, 회사 사무 전반을 맡고, 지금 하는 일을 하면서, 그 일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또 회사가 성장하여 내가 맡게 되는 자리를 새로 채용된 전문가가 맡게 될 것이고, 나는 하던 일을 그대로 하면서 다른 또 필요한 일로 업무조정될 것이고, 그 일에 또 적응하고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회사에 뼈를 묻을 생각이라면 지금 내게 맡겨지는 일이 행복할 텐데,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작가를 밥벌이로 할 수 있는 날을 위해 지금 회사는 거쳐가는 자리로 생각하기 때문에 불행하다.


글 쓰는 일이 아닌 다른 직업과 직장을 다니는 것이 스트레스가 아니라,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내가 하는 일이 나에게 정신적인 스트레스다. 내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일이지만,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나도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하지 않고 싶지만,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도 하지 않을 수 없을 때가 있다.


회사 대표님은 내가 작가의 꿈이 있는 것을 알고 있으니, 회사의 마케팅을 위한 글쓰기를 해주기를 바라지만, 그 글쓰기와 이 글쓰기는 다른 것이다.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같은 에세이라도, 내 이야기를 나누는 에세이와, 회사 서비스를 홍보하는 에세이는 다른 것이다. 결정적으로 내 회사 서비스를 홍보하는 에세이와 나의 사장님 회사 서비스를 홍보하는 에세이는 다른 것이다. 나는 나의 글쓰기는 잘 하지만, 남의 글쓰기는 잘 못한다. 또 우리 회사 대표님은 주관이 강한 분이라, 대표님이 원하는 글 쓰기는 더더욱 쉽지 않다. 나는 클라이언트의 요청은 100% 수용하는 주의다. 그런데 클라이언트가 디테일한 가이드라인을 주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디테일을 원하면, 일하는 사람으로서 어렵다. 과묵하면서 디테일한 까다로운 사람과 일상의 커뮤니케이션이 아닌 업무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은 어렵다.


성경을 보면 애굽(이집트) 왕 바로(파라오)나 바벨론 왕이 대신들을 불러놓고, 자기가 꾼 꿈도 말해주지 않고 자신이 꾼 꿈과 해몽을 말해라 명령한다. 그래서 대답하지 못하면 목을 자른다. 자기가 꾼 꿈을 디테일하게 말해주고 해몽을 들어야지, 꿈의 내용을 말해 주지도 않은 채 '꿈의 내용의 디테일과 해몽을 너네가 맞추어 보아라. 그렇지 않으면 목을 치겠다.' 하면 골 때리는 것이다.


우리 회사 사장님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사장님들이 일반적으로 그런 경향이 있다는 것뿐이다. 원하는 디테일과 결과 값과 방향이 있는데, 가이드라인 없이 제목만 던지면, 일을 두세 번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싫은 소리는 싫은 소리대로 들어야 한다.


그런데다, 10시 출근 7시 퇴근인데, 집은 수원 회사는 신촌이니, 8시에 집을 나와 9시에 돌아온다.


생각하기에 따라 내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기는 한데, 일이 행복하고 즐겁지는 않다. 불행하고 재미없다.


처음에는 나에게 일자리를 준 동생이 고마워 일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아내와 요한이 그리고 나 셋이서 한 달 벌어 한 달 살 돈을 벌기 위해 다닌다.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보다,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밥벌이가 우선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요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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