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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Dec 25. 2021

돌아보면 은총이었던 날들

크리스마스 간증문


크리스마스다. 교회에서 간증을 하고, 기타를 치며 노래 한 곡을 불렀다.


메리 크리스마스. 예수님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저는 예수님을 잘 믿는 게 너무도 당연한 특별히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저의 꿈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친구들과 선생님은 제가 목사님일 될 줄 알았지만, 목사님이 되는 것이 꿈은 아니었습니다. 목사님이 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것도 아니고, 그냥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자체가 꿈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꿈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소녀를 사랑하는 꿈이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소녀를 사랑했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소녀는 저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사랑하지 말아야 하는데,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의 시작과 끝이 제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군대에 갔습니다. 군대를 가도 하필 강원도 양구의 험준산령 산을 매일 타 다니며 매복하는 훈련을 하는 보병부대에 배치받았습니다. 고문관이라고 불리는 관심병사가 되었고, 고된 훈련으로 신경이 날카로운 고참들에게 정신적인 집단 괴롭힘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스물한 살 군대에서 조울증에 걸렸습니다. 저의 잘못도, 부모님의 잘못도, 하나님의 잘못도 아니었습니다. 100명 중에 한 명 걸린다는 조울증이라는 재앙이, 랜덤으로 저에게 찾아온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울증은 다른 정신질환과는 좀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약을 꾸준히 먹으면 멀쩡하고, 약을 안 먹으면 붕 뜹니다. 말이 많아지고, 며칠씩 잠을 자지 않아도 졸리지 않고, 성실하고 얌전했던 사람이 며칠 사이에 수천만 원을 술집에서 쓰기도 합니다. 과대망상으로 되지도 않는 사업을 벌이기도 합니다. 기분이 고양되어 좋아지는 것뿐 아니라, 짜증이 심해지고 폭력적이 되기도 합니다. 약을 꾸준히 먹으면서 관리만 하면 아무렇지도 않은 게 이 병의 특성이기도 합니다. 처음 병이 발병했을 때 일 년 정도 약을 먹으면 되고, 두 번 이상 재발을 하면 평생 먹어야 한다고 합니다.


조울증은 약 잘 먹고, 신앙생활 잘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 병입니다. 약만 잘 먹고 신앙생활을 못 해도 안 되고, 신앙생활만 잘하고 약을 안 먹어도 안 되는 그런 병입니다. 


저는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결혼할 수 있을까 했는데, 하나님께서 에미마를 만나게 하셨고, 요한이가 태어나게 하셔서, 에미마와 요한이와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낮에는 회사에 다니고, 밤과 주말에는 요한이와 에미마랑 놀고, 틈틈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제 꿈은 회사 안 가고 에미마와 요한이가 있는 집에서 글 쓰며 사는 직업으로서의 작가가 되는 것입니다. 제 글을 통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그런 글을 쓰고 싶습니다.


성경을 보고, 세상을 볼 때, 어떤 축복과 재앙은 하나님의 주권으로부터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오지만, 어떤 축복과 재앙은 하나님으로 인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인생을 찾아왔던 오랜 슬픔들이, 저의 잘못도, 부모님의 잘못도, 하나님의 잘못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어느 날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에미마와 요한이와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고난의 한가운데서는 눈물이 흘렀지만, 돌아보면 은총이었던 날들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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