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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Jan 12. 2022

생각은 끝없이, 행동은 현실적으로

작년 말과 올해 초를 걸쳐 퇴사와 이직을 생각했다. 지금 다니는 회사와 지금 하는 일이 나에게 행복하지 않고 불행했다. 내가 하기 버거운 일은 아닌데,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았다. 회사를 다니게 된 처음 동기가 돈은 아니었는데, 돈 버는 것 외에 내가 회사에 다니는 다른 동기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이 나이에 지금 경력으로 취업할 곳이 없는데, 동생이 날 불러준 자체가 고마운 것이지, 지금 돈을 많이 받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다른 데서 나를 오라는 곳이 없다는 것뿐이지, 어디를 가도 받을 수 있는 돈을 벌고 있다. 가족의 회사란 것이 그렇다. 회사가 잘 되면 더 많이 대우받고, 회사가 처음 시작하여 어려울 때는 덜 대우를 받는다. 지금 가장 힘든 것은 내가 아니라 동생인데, 내 입장에서는 동생 사정은 동생 사정이니 말이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돈 문제는 전혀 아니고, 그냥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하는 일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다. 세상 어디나 스트레스가 없는 곳은 없겠으나, 그 스트레스가 내 한도를 넘었다.


경기도교육청 홈페이지 구인 페이지에 들어갔다. 아주 오래전 2013년 내가 하던 초등학교의 영어회화전문강사 자리가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원서를 냈다. 1차 서류전형을 통과하고, 2차 면접을 보러 오라고 통보를 받았는데, 다른 직장을 구했다고 둘러대고 가지 않았다. 초등학교 비정규직 영어교사가 지금 동생 회사 다니는 것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초등학교 영어회화전문강사 원서를 내놓고, 떨어질 경우에 동생 회사에 계속 다니지 않기 위해, PLAN B를 생각했다. 집 근처 동네에 빈 카페를 임대해 북카페를 하는 플랜이었다. 직원 쓰지 않고 나 홀로 북카페를 운영하면서, 거기서 1인출판사를 하면서 내 책과 이웃의 책을 내고, 카페에서 정기적으로 온오프라인으로 북 토크를 하고, 북카페의 오프라인과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의 온라인 상에서 나와 이웃의 책도 팔고 말이다. 세는 비싸고 유동인구는 많지 않은 동네에서, 카페로 수익을 얻을 생각보다는, 수익은 1인출판사에서 낼 생각을 했다. 나와 이웃의 책을 내는 1인출판사인데, 그중에서 내 책에서 수익을 내서 주변의 이웃의 책을 만들어 주는 그런 콘셉트이다. 카페에서 적자가 나도, 출판사 사무실 임대료라고 생각하면 되는 플랜이었다. 카페 이름도 『CAFE 다함북스』, 1인출판사 이름도 『다함북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이름도 『다함북스』로 하고 말이다. 물론 허무맹랑한 아이디어는 아닌데, 일단 이 정도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할 돈이 없다. 또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카페와 도서출판 비즈니스도 아니고, 그냥 글 쓰며 사는 것인데, 그걸 하겠다고 일을 크게 벌이는 것은 사실 좋지 않다. 물론, 그 좋지 않은 선택을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기는 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 그것을 하기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일종의 플랫폼을 만드느라 열정을 쏟는 경우가 많이 있다. 회사에 더 다니고 싶지 않으니, 현실성이 없는 별 생각을 다 해보았다.


다시 감사하는 마음으로 동생 회사에 계속 다니기로 했다. 동생 부부는 내가 계속 동생과 같이 갔으면 하는 마음도 있기는 한 것 같은데, 난 가능한 한 빨리 떠나고 싶다. 지금도 내가 다니는 회사와 내가 하는 일이 나에게 여전히 불행한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 물론, 항상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는 없다. 그때가 올지 안 올지 모른다. 조금 기다려 보기로 한다.


동생 회사를 계속 다니기로 마음을 잡은 후에도, 일단 일과 후 투잡으로 집에다 사업자등록을 하여 1인출판사를 해서 내 첫 번째 책을 낼까도 생각해 보았다. 지금까지 쓴 글을 정리하여 출판사 투고도 생각해 보았다. 문학동네에 한 번 투고를 해볼까 하고 구체적인 출판사까지 찍어 두었다. 곧 접었지만 말이다.


나는 아주 구체적으로 끝없이 생각을 펼쳐보지만, 다시 그 생각을 최소화하여 정리하여, 결국은 내 처지에서 가장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한다. 끝없이 생각을 펼쳐본다 하여, 실제로 내가 이상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지극히 현실적으로 처신을 한다. 현실적으로 행동하기 전에, 시나리오를 아주 구체적으로 끝없이 펼쳐볼 뿐이다. 그러다 보면, 결론은 처음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회사에 다니며, 가정을 돌보며, 틈틈이 브런치에 글을 쓰고 브런치에서 하는 각종 공모전에 응모한다. 이 정도가 회사에 다니고, 아침 두 시간 저녁 두 시간씩 수원에서 신촌까지 출퇴근을 하고, 아내 에미마와 함께 아들 요한이를 키우는 내가 할 수 있는 지금의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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