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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Mar 22. 2022

그냥, 오지게 재수가 없었을 뿐이다

조울증의 이유

그냥, 오지게 재수가 없었을 뿐이다

나는 고2 때부터 시작된 짝사랑과 군대에서의 스트레스로 인해 조울증에 걸렸다고 생각한다. 나뿐 아니라 우리 어머니 아버지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신다. 조울증의 원인에 대해 명확히 밝혀진 것은 아직 없다. 다만, 생물학적 요인, 유전적 요인, 사회 심리학적 요인이 결정적 원인이라고 강력하게 추정되고 있다. 쉽게 말해서, 뇌 호르몬이나 신경전달 물질의 문제가 생겼거나, 유전적으로 조울증에 취약하게 태어났거나, 스트레스를 받아서, 조울증에 걸렸다는 이야기다.


내가 짝사랑과 군대의 스트레스로 조울증에 걸렸다고 하면, 조울증은 그렇게 생기는 게 아니라고 반박하는 의사나 환자가 있다. 극심한 스트레스가 조울증 발병에 영향을 주고, 조울증 환자는 스트레스 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데는 모두 동의하지만, 스트레스보다는 유전적 요소에서 조울증의 원인을 찾는 것이 최신 경향인 것 같다. 나는 또는 너는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아 조울증에 걸렸어 보다, 나는 또는 너는 원래 태어나기를 조울증으로 태어났어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한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거는 내가 말하는 뇌피셜이 아니라, 정신의학 전문가들도 하나 같이 동의하는 바인데, 조울증의 유전은 유전병에서의 유전과는 다르다. 부모가 암일 경우 자녀가 암일 경우가 높은 것처럼, 부모가 조울증인 경우 자녀가 조울증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뿐이다. 부모가 조울증이라도, 자녀가 조울증에 걸릴 확률보다 걸리지 않을 확률이 훨씬 높다. 또 유전적으로 조울증에 취약하다는 것도, 나는 또는 너는 조울증으로 태어날 때부터 결정되어 있었어, 하는 결정론적인 운명론적인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보다 조울증에 좀 더 취약하게 태어났을 뿐이다. 조울증에 취약하지 않고 오히려 강한 유전을 가지고 태어났어도, 환경과 스트레스 등으로 조울증에 걸릴 수도 있다.


나는 원래 조울증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스트레스에 남보다 취약하지도 않았다. 상사병이 된 짝사랑과 군대에서의 스트레스의 강도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뛰어넘었을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상사병이 된 짝사랑이었던 첫사랑이 이루어졌다면, 첫사랑이 실패했을 때 바로 잊고 나를 사랑하는 다른 사랑을 찾을 수 있었더라면, 사랑보다 내 인생에 집중했었더라면, 나는 조울증에 걸린 만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군대를 가도, 매일 산을 타 다니는, 부대원들의 신경이 다들 삐쭉삐쭉 서 있는, 나의 육체와 정신이 감당할 수 없는, 강원도 험준 산령 양구의 보병부대에 가지 않았더라면, 나는 조울증에 걸릴 만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의 실패와 군대의 실패 둘 중의 하나만 나를 피해 갔었더라면, 나는 조울증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에 실패했지만 군대에 성공했더라면, 군 제대 후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새로운 사랑을 하며 나의 인생을 잘 살아갔을 것이다. 사랑에 성공했더라면, 같은 부대에 갔었더라도, 온전한 정신으로 이겨낼 수 있었을 것이다.


나의 탓도, 첫사랑 소녀의 탓도, 군대 시스템 또는 나를 괴롭혔던 고참들의 탓도, 사회와 국가의 구조의 탓도, 하나님의 탓도,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생물학적인 탓도, 유전적인 탓도, 그리고 스트레스의 탓도 아니다. 그냥 오지게 재수가 없었던 것뿐이다. 장기간의 집중적인 강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사랑과 군대의 두 가지 스트레스가 하필 재수 없게 동시에 나를 찾아왔을 뿐이다. 하필 조울증이 가장 많이 발병되는 시기인 스무 살 즈음, 그 두 스트레스가 동시에 재수 없게 나를 찾아왔을 뿐이다. 


2000년 봄, 스물한 살 때 시작된 조울증을 극복하기 까지, 거의 이십 년 가까운 세월이 필요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필요했던 것은, 나와 부모님과 내 주변에서 조울증이란 지랄 같은 질병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도 부모님도 정신과 전문의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조울증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전혀 몰랐던 것도 아니다. 나는 조울증이 군대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조울증 초기부터 증상을 중대장이 알아보고 바로 군병원에 보내버렸기 때문에, 초장부터 치료를 받을 수 있었고, 처음 주치의 선생님이셨던 군의관으로부터 조울증에 대해서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부모님과 나는 들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병에 대해서 진정으로 제대로 정확히 알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과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나뿐 아니라 다른 조울증 환자들의 대부분도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조절과 관리가 될 때는 사람 같이 살고, 조절과 관리가 되지 않을 때는 사람 같이 살지 못했다.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와 부모님도 조울증이란 질병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내 인생의 조울증이란 대재앙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그냥, 오지게 재수가 없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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