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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Oct 26. 2020

안철수 팬클럽

이짝과 저짝 사이 양다리를 걸치다 죽도 밥도 아니게 되었다

삼성역 코엑스 스티필드 별마당 도서관에서 아내와의 데이트 ⓒ 최다함


TESOL과

안철수 팬클럽 사이에서


이 짝과 저 짝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다가, 가랑이가 찢어지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13년 반 만에 강원대학교 영어교육과를 드디어 졸업을 했다. 중등교사 정교사 2급 자격증을 얻었다. 학교에서 영어 선생님을 할 수 있는 자격증이다. 아버지께서는 임용고사를 준비하거나, 중고등학교에서 기간제 영어교사를 하지 말고, 초등학교에서 영어회화 전문강사를 하라고 하셨다. 영어회화 전문강사는 이명박 정부가 ‘영어 공교육 완성 실천방안’을 추진하면서, 영어교사의 부족함을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도입한 제도이다. 초등학교에서는 직종 이름과 보수체계가 영어회화 전문강사인 것이지, 실제로 하는 일은 풀타임 비정규직 영어교사였다. 개인적으로는 비정규직 또한 기능이 있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노동자들에게도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버지께서는 이듬해부터 초등학교에서 영어회화 전문강사 잘하라고, 2012년 가을에 경인교대 TESOL을 보내 주셨다. TESOL은 영어로 영어를 가르치는 영어교사 양성 프로그램이다. 중등교사 2급 자격증이 있기 때문에 TESOL 자격증 자체는 아무 의미가 없지만,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재미있고 능력 있게 가르치라고 TESOL을 보내주셨다.


마침 정치의 계절이었다. 지금은 국민들의 지지를 잃었지만, 그때 안철수가 정치적 메시아로서 국민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떠오르고 있었다. 그전에도 그 이후에도 어떤 후보를 지지한 적이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캠프 위원회에 참가하거나, 팬클럽 활동을 한 적은 없었다. 안철수가 처음 정계에 혜성처럼 등장하던 그때 딱 한 번 정치가 팬클럽 활동을 했다. 안사모라고 가장 큰 안철수 팬클럽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곳에서 활동했었다. 안사모 사이트도 막 시작하던 초창기였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는데, 지역 별 게시판이 있어서 지역 별로 오프라인 모임이 있었다. 중앙본부에서 공식적으로 지역 모임을 인증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고, 지역 별로 자체적으로 운영하던 때였다. 나는 경기남부지역 모임에 나갔다. 사람들에게 제가 호감이 갔는지, 아니면 정기모임을 가질 수 있는 어머니의 카페를 제가 운영하고 있어서인지, 내가 경기남부지역과 수원지역 예비 지역장이 되었다. 중앙에서 인증을 받은 것은 아니고, 우리 자체에서 투표까지도 아니고 만장일치로 합의해서 결정했다. 말도 잘하고 생각도 좋은데, 별 직장 없이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나를 지역장으로 뽑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사람을 끄는 힘과 리더십이 있기는 하다.


내가 지역장이 되면서 경기남부지역은 수원에서 매주 모였다. 매주 토요일 모여서 이야기하고, 밥 먹고, 교제하고 그런 것이었다. 전국 지역모임 가운데 가장 활성화된 모임 중 하나였다. 그러다 보니 우리 지역 회원들 말고 다른 지역 리더들이 찾아왔다. 일종의 정치를 하려고 찾아온 것이었다. 지역장들이 모인 모임이 있었는데, 나 또한 우리 지역 모임을 찾아오신 분들에 이끌려 지역장들 모임에 가입하게 되었다. 안사모 중앙본부 입장은 기존 지역 모임의 리더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닌데, 일단 창립 리셉션을 가지며 회의를 하며 그곳에서 지역장들을 정식으로 뽑자는 것이었고, 지역장들의 입장은 지역의 모임과 리더십을 그대로 인정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던 차에 안사모 중앙본부에서 창립총회를 부여 롯데리조트에서 하기로 결정을 했는데, 지역장 모임에서 목소리가 큰 사람이 어떻게 친일파 일본 기업 롯데 그룹에서 하는 리조트에서 창립총회를 하냐고 우리는 못 간다 하였다. 힘이 있는 세력은 자기가 유리한 곳에서 회의를 열고, 힘이 없는 세력은 회의장에 들어오지를 않는다. 이게 대한민국 정치의 현주소이다. 안사모를 따라갔어야 했는데, 안사모 중앙본부의 사람들은 아직 만난 적이 없어 전혀 모르고, 지역장 모임 분들과 형님 동생 하며 지내던 사이였기 때문에, 안사모에서 나와 새로운 안철수 팬클럽을 만들었다. 나 혼자 지역장 모임에 참여했던 것이지, 경기남부지역과 수원지역의 회원들은 중앙본부와 생각을 같이했기 때문에, 나를 따라 나오지는 않았다. 다음 카페에 <대한민국 안사모>라는 팬클럽을 만들었다. 안사모 블랙리스트에 회원을 선동하고 안사모 조직을 배신했다고 블랙리스트에 내 이름도 올랐다. 다른 지역장들과 함께 하지 말고, 경기남부지역 회원들과 우리의 갈길을 회의를 통해 합의로 정한 후에, 부여 롯데리조트에서 개최한 안사모 창립총회에 참석했었지만, 그때는 정치의 세계를 몰랐고, 나를 패밀리처럼 대해 주셨던 형님들과 한 배를 탔다. 만약에 먼저 중앙본부 분들과 내가 만났더라면, 그분들도 나를 패밀리로 대해 주셨을 것이다. 중앙본부 분들을 나중에 만났더라도, 내가 창립총회에 일단 참여했더라면, 나를 패밀리처럼 생각해 주셨을 것이고, 아마도 나는 그분들을 따라갔을지도 모른다. 


다음에 만든 카페는 대전에서 농협인가 축협인가 조합장 하시는 분이 개설하셨는데, 카페 관리는 내가 하였다. 지역장 가운데 나이가 가장 젊기도 하고, 카페 관리하는 일들을 잘하기도 하였기 때문에, 그 일을 맡아하였다. 아직 조직이 갖추어지고, 임원을 정하기 전이라서 특별히 직함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대표는 아니지만 총무나 사무총장이 하는 일을 했다. 형님들의 의견들을 모아서 제가 실제적인 일을 진행하였다. 우리 <대한민국 안사모>에는 안사모 지역장 출신만 주축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를 활동가라고 이야기하면서, 안사모 중앙본부에도 드나들고, 그 당시 안철수 최측근이자 실세였던 금태섭 사무실까지 왔다 갔다 하는, 그런 분이 있었다. 지역장들이 안사모를 탈퇴하고, 새로운 <대한민국 안사모>를 만든 것 또한 이분이 바람을 넣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사모를 탈퇴하고, 새로운 안철수 팬클럽에 참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도, 이분에 눈에 제가 들어서였다. 처음에는 지역장들끼리 형제 같은 수평적인 관계에서 새로운 모임을 도모하게 되었는데, 새로운 조직을 만들고 일이 진행되면서 이 활동가 분의 참모처럼 되었갔다. 영어회화 전문강사로서 능력 있게 일하기 위해 준비했어야 할 때, 나는 이 분을 따라 팬클럽 활동을 하는 데 따라다녔다. 아무 의미 없고 중요하지 않은 일을 하면서, 스타벅스에서 만나서 별 시답지 않은 일을 하며 회의를 하고 그랬다. 우리는 정치를 한 것이 아니라, 소꿉놀이를 했었던 것이다.




정치인 안철수의 열혈 지지자였을 때가 있었다. 그때 좀 잘해 보시지...


양다리를 걸치다

가랑이가 찢어졌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 하나를 놓았는데, 결과적으로 둘 다 잃어 버렸다.


철수 지지활동에 올인을 하던지, 아니면 TESOL 공부에 올인을 하던지, 둘 중에 하나만 했어야 했는데, 둘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다가, 결국은 둘 다 놓치게 되어버렸다. 더 이상 둘 다 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려서, 안철수 팬클럽 활동을 중단하고 탈퇴했다. TESOL 공부에 전념하기로 했다. 그때 이미 TESOL 과정에서 갈 때까지 간 것이었다. TESOL 과정을 마무리 지어 자격증을 따지 못했던 것 자체는 중등교사 정교사 2급 자격증이 학교에서 상위 자격증이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TESOL 과정을 충실히 공부했었더라면 능력 있는 좋은 교사로서 초등학교에서 어린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칠 수 있었을 것이다.


안철수가 공식적으로 정치참여를 선언하지 않고 간을 보고 있을 때 안철수 팬클럽 활동을 했었다. 안철수가 본격적인 대선 도전을 선언하기 며칠 전, 안철수 팬클럽 활동을 그만두었다. 일꾼이 사라진 <대한민국 안사모>에서 집까지 나를 찾아왔지만,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영어교사로서 제 호구지책을 위해 준비를 하거나, 아니면 팬클럽 활동에 열심히 하다가 <안철수 캠프>로 들어가서 그 길에서 당직자로 호구지책을 해결하며 정치계에서 밥 먹으면서 살던가, 둘 중 하나를 택했어야 했는데,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영어회화 전문강사가 되었지만, 유능한 영어교사는 되지 못하였다. 아이들과 영어 노래 부르고 재미있는 활동 게임이나 하며 놀았다. 초등학교 영어교육이라는 게 공부 대신에 영어로 놀이만 해도 안 되는 것은 아닌데, 영어를 열심히 가르치면서, 연습과 활동 때 영어놀이도 재미있게 했었더라면, 좋은 교사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더 이상 안철수의 정치적 지지자가 아니고 앞으로도 아닐 것이지만, 여전히 안철수가 개인적으로 선량하고 좋은 사람이라고는 생각한다. 대통령 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대한민국의 유력 정치인 가운데 하나로서 좋은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 좋은 것뿐만 아니더라도, 정치공학적인 측면에서도 독일로 일종의 정치 유학 다녀온 후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달라졌다고 본다. 다만, 대통령 되면 잘할 사람과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다르다는 것이다. 대통령 되면 잘할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게 쉬운 것은 아닌 것 같다. 옛 우상이자 주군이었던 안철수에게 한 마디 하고 싶다면, 이상을 실현하고 싶다면, 이상 보다 현실에서 집권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론을 펼치기 이전에 현실 속에서 집권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여, 집권 이후 자신의 정치철학을 펼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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