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꿈을 향하여...
하지만 이제 나도 그때처럼 비가 내리면 눈물을 흘리고 있어
내게 너무나도 소중한 네가 내 곁에 없다는 이유로
난 비와 함께 울고 있었던 거야
신승훈의 《그 후로 오랫동안》 중에서
내 브런치의 매일매일 쓰는 일기장과 같은 <최다함 다이어리> 매거진에 3일 만에 글을 올린다. 지금 나는 브런치에 <다함스토리> <최다함 다이어리> 두 개의 매거진을 올리고 있는데, 최근 며칠은 <다함스토리> 매거진에도 왕성하게 글을 올린 것도 아니었다. 브런치 활동을 안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동안 써왔던 글들을 일관성 있게 에디트하고, 문체를 바꾸었다.
지난번에 반말체를 존댓말로 바꾸었다가 다시 반말로 돌아왔다. 강조하는 문장을 파란색으로 굵게 표시했는데, 굵게는 표시하되 검은색으로 하기로 했다. 아주 중요한 키워드를 강조할 때만, 빨간 글씨를 쓴다. 문단마다 한 문장씩 강조하는 문장을 굵게 표시하였다가, 굵은 강조를 하지 말고 모든 문장을 보통의 굵기로 하려고 했으나, 그렇게 해보니 디지털 공간에서 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가독성과 집중도가 떨어지는 것 같아서, 문단마다 강조하는 문장은 굵게 표시하되, 검은색으로 표시하기로 했다. 내 브런치 글이 독자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일관된 양식과 형식을 찾고 있다.
같은 주제를 가지고 있는 단락이 시작할 때 구분선과 사진을 사용했었는데, 이 또한 없애볼까 했었다. 가장 단순함이 독자들에게 신뢰감을 주기도 하고, 필자 입장에서도 글 내용이 아니라 디자인에 관심을 가지다 보면, 글을 쓰는데 집중력과 속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변화를 주어 보았는데, 이런 시도가 디지털 공간에서 독자들이 글을 읽는데 가독성과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것 같아서, 원래 하던 대로 하기로 했다. 또한, 한 단락이 시작되는 부분에 인용구를 넣는 것도 없애 보려고 했는데, 이 또한 가독성 측면에서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원래 하던 대로 하기로 했다. 여러 가지 시도를 하면서, 일관된 나의 브런치 글쓰기 형식을 찾고 있다. <다함스토리> 매거진은 브런치북으로 만들어 책으로 출간할 예정이기 때문에, 모든 글을 일관된 형식으로 에디트를 했다. 반면에 <최다함 다이어리> 공간은 일기와 같은 공간이기 때문에, 이 전에 쓴 글들은 그냥 두기로 했다.
아버지 어머니께서 논산으로 귀농하셔서 왕대추농장을 하신다. 우리 농장의 주 작목이자 판매하는 작목은 왕대추이지만, 자투리 땅에다 옥수수도 심어 먹고, 배추도 심어 먹고, 무도 심어 먹고, 냉이도 심어 먹고, 호박도 심어 먹고, 코스모스도 키운다. 왕대추만 팔고, 다른 작물은 판매하지 않고 우리 가족이 먹고, 주변에 나누어 먹지만 말이다. 다른 매거진들이 최종적으로는 판매를 위한 초고이지만, <최다함 다이어리> 공간은 출판을 의도하지 않는 순수한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매일매일의 일기장과 같은 공간이다. 일기장과 다른 것이 하나 있다면, 일기장은 나 혼자 보라고 쓰는 공간이지만, 이 공간은 내가 보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브런치 독자들이 보라고 쓰는 일기장이다. 내가 보기 위해 쓰는 일기장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보라고 쓰는 일기장이다.
사랑해선 안 될게 너무 많아 그래서 더욱 슬퍼지는 것 같아
그중에서 가장 슬픈 건 날 사랑하지 않는 그대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 중에서
스물한 살에 군대에서 조울증에 걸렸다. 조울증으로 방황하다가 13년 반 만에 강원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했다. 나와 우리 가족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한 짝사랑이었던 첫사랑의 실패로 인한 상사병과, 군대에서의 부적응과 괴롭힘이, 조울증의 원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첫사랑이 해피엔딩이었다면 조울증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해피엔딩이란 첫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한정하는 것은 아니다. 첫사랑을 잊어버리고 다른 사랑을 찾았다거나, 사랑에 목숨 걸지 말고 내 길을 갔다던가, 그 모든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다. 내가 멋진 남자가 되어 첫사랑이었던 소녀가 내게 팔짱을 끼고 싶어 하는데, 내 곁에 더 예쁘고 착하고 스마트한 다른 여자가 팔짱을 끼고 "오빠" 한다던지 말이다. 군대에서 받은 정신적인 괴롭힘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스트레스를 넘지 않았더라면, 이 또한 조울증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둘 중의 하나만 나에게 왔더라며 나는 조울증 환자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소녀에 대한 상사병과 군대에서의 집단 이지메 두 개의 초대형 태풍이 만나 하나의 울트라 태풍이 되어 내 삶을 초토화되었다.
잠깐 초등학교에서 영어교사를 하다가, 조울증이 재발하여 동생 사업장 일을 하며, 평생 교직에 계시다가 정년퇴직하신 아버지와 귀농교육을 받고 왕대추농장을 했다. 어느 순간 나의 슬픈 사랑 에세이를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행복해지는 꿈을 꾸게 되었다. 농장에 코를 끼면 작가가 되지 못할 것 같아서, 국비지원으로 직업훈련받으면서 그동안 책 하나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서 전업작가로 살려고 출판편집디자인 과정을 공부했다. 하루 8시간씩 주 5일 수업을 받으며, 아침에 2시간 저녁에 2시간 강남역으로 출퇴근하면서, 책 한 권 분량의 양과 질의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오가는 전철 안에서 블로그에 글을 쓰기는 했지만, 출판 목적의 양과 질의 글은 생산되지 않았다. 출판 목적의 글을 디지털 상에서 쓰기 위해서는 브런치 작가가 되었어야 했는데, 그때는 아직 브런치 작가가 되기 전이었다. 2019년 12월부터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기 시작하여, 12번 떨어지고 13번째 붙었다. 올해 10월 5일에야 브런치 작가 합격통지 메일을 받았다. 10월 5일은 내가 장염과 맹장수술로 1주일 동안 병원에 입원하여 퇴원한 직후였다. 그때부터 11월 1일 마감하는 브런치북 출간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는데, 10월 한 달은 부모님 왕대추 수확을 도와드리기로 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글을 쓸 시간을 얻지 못했다. 그래도 1년 가까이 블로그를 하며,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면서, 쌓아 둔 글이 있었기 때문에, 그 글들을 편집해서 발행했다.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부모님 왕대추농장의 수확이 일찍 마무리되어, 2주 일 도와드리고 집에 내려와서 글쓰기에 전념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글쓰기에 열중하면 아내는 내가 무지개를 쫒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아내도 부모님도 내가 글 쓰는 것을 가까운 시일 내로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으로 인정해 주시는 것 같다.
작가가 되기 위해 시간을 벌기 위해 직업 훈련을 받았는데, 직업 훈련을 받다 보니 출판편집 디자인이 재미있었다. 바로 투입되어 성과를 낼 실력은 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인턴으로 어느 정도 일하고 1년 이상 경력을 쌓으면, 3년 정도 필드에서 경험을 쌓으면, 그쪽에서 평생직장으로 살 수 있겠다 싶었다. 실제로 구직활동을 해 보니 취업불가라는 현실을 깨달았다. 경력 무관이라고 하지만 1년에서 3년 사이 경력자를 우대하고, 신입 중에서는 일러스트레이터 포토샵 인디자인을 자유롭게 사용하여 바로 투입되어 결과를 낼 수 있는 인재를 우대하고, 예체능 계열을 우대한다고 쓰여 있는 것을 보니 미대생을 우대하고, 나이 제한은 없다지만 사장이나 팀장보다 나이가 많을 수 있는 사십 대 초반이 경력직도 아닌 신입으로 들어가기도 어렵고, 디자인 분야이니 아무래도 남성보다 여성을 우대할 테고, 길이 없었다. 일단 면접이라도 볼 수 있으면, 인턴 기회라도 생기면, 그 이후에는 길이 보일 것 같은데, 1차 면접 보러 오라는 통지 하나가 없다.
그래서 1인 출판사를 만들 꿈을 꾸었다. 내가 글을 쓰고, 편집을 하고, 디자인을 하고, 마케팅을 하고, 영업도 하고, 인쇄와 배본만 파주 출판단지에 계약해서 맡기는 것이다. 파주 인쇄소에 책 완성본을 PDF로 보내면, 인쇄소에서 책을 찍어서 물류창고인 배본사에 맡기면, 주문이 들어오면 배본사에서 직접 쏴 주는 것이다. 인쇄와 배본만 파주 출판단지에 맡기고, 나머지 모든 프로세스는 나 혼자 하는 것이다. 나 혼자 할 수 있는 분량만큼만 책을 만드는 것이다. 의미와 문학성이 있는 책 출판이 목적이 아니라, 돈이 되는 짭짤한 베스트셀러를 목적으로 말이다. 유명한 저자들을 발굴하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의 평범하지만 그 안에 비범한 스토리가 있는 사람들을 발굴해서 출판사의 에디팅과 마케팅의 힘으로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내는 그런 출판사를 기획했었다. 내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어 내는 출판사를 만들어, 다른 사람들의 책도 같이 베스트셀러를 목표로 찍어주는 출판사 말이다. 첫 책은 내 출판사가 아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를 통해 출간하려고 했다. 일 년에 10명을 대상으로 뽑아 10개의 출판사에서 각각 한 권씩 출간해 준다. 이 10권의 책에 들 책을 쓰기로 했다. 브런치 작가들 가운데서 쟁쟁한 사람들이 나올 것이다. 쓴다고 된다고 믿는 것은 지나친 긍정의 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반드시 이번 출판 프로젝트에 되어야 한다. 되지 않아도 나 스스로 책을 낼 것이지만 말이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의 당선 여부와 상관없이 1인 출판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당선되면 첫 번째 책은 브런치를 통해 출판하고 두 번째 책부터 내 출판사에서 찍는 것이고, 당선이 되지 않으면 POD 출판사 BOOKK나 내 출판사를 통해 첫 책부터 찍어 내는 것이다. POD로 초판을 써서 시장의 간을 보고, 내 출판사에서 바로 첫 책부터 찍어내는 것이다.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
당신이 떠나시던 그 밤에 이렇게 비가 왔어요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 중에서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아무리 우리 집 아파트에 사업자등록을 한 1인 출판사라도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내 책을 끊임없이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앞으로의 꿈은 달라질 수 있는데, 현재의 꿈은 출판사 사장이 아니라 내 책을 내는 작가인 것이다. 끊임없이 내 책을 찍어내기 위해 다른 사람들 책까지 같이 찍어주는 1인 출판사를 꿈꾸었던 것이다. 내 책을 내는 작가가 된다는 것이 전통적인 의미에서 종이책을 내서 먹고살겠다는 것은 아니다. 종이책도 내고, 전자책도 내고, 밀리의 서재나 윌라에도 팔고, 오디오북도 만들고, 구글 플레이 도서나 아마존에도 팔고, 가능한 여러 주요 언어로 번역하여 세계시장에 유통하고, YouTube 하고, TV 출연하고, 강의 다니고, 등등 수익구조를 다변화하겠다는 의미이다. 단순히 책을 쓰겠다는 것이 아니라, 책을 쓰고 그 책을 기반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팔겠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생각이 정리되고 바뀌었다. 1인 출판사 사장을 하면서, 끊임없이 내 책을 쓰고 책을 들고 이런저런 왕성한 활동을 하는 것도 불가능할뿐더러, 문제는 책을 찍어 마케팅하고 유통할 최소한의 자본이 없다는 것이다. 1인 출판사도 하기 나름인데, 혼자 해도 자본과 경험과 인맥이 있으면, 1인 출판사 사장은 가능성 있는 저자를 발굴하여 계약을 하고, 에디터 디자이너 마케터 교열 교정 모든 부분은 돈 주고 외주를 주면 된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돈 안 들이고, 내가 가져가는 몫을 늘리기 위해 나 혼자 해 보려고 했는데, 나 혼자 해도 책 한 권 낼 때마다 기본적인 자금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내가 현재 책 한 권 낼 돈도 없지만, 사실 1인 출판사로 책 한 권 내는 것은 다른 비지니스 초기 자금에 비해 돈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1권 1권 책을 낼 때마다 그 돈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첫 번째 책이 대박 나면, 첫 번째 책 수입으로 두 번째 책 내고, 두 번째 책으로 대박 나면 그 돈으로 세 번째 책을 내고 그럴 생각을 했던 것이다. 문제는 비지니스 관점에서 그 작은 돈이 내게 없다는 것이다. 첫 번째 문제는 내 관심은 작가가 되는 것이지 출판사 사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고, 두 번째 문제는 책 한 권 찍어낼 사업가 입장에서 그리 크지 않은 그 자본이 내게는 없다는 것이다. 자산은 '자본 + 부채'라고 하는데, 나는 부채도 제로지만, 자본도 제로이다. 고로 자산이 제로다. 그럼에도 나 개인의 경제구조의 장점이라면 장점은 부채가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소일하면서 지금까지 부모님 용돈 타서 살아왔다면, 조금만 더 버티면서 끊임없이 글을 써서 전업작가가 되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내가 책 써서 월 200만 원이나 150만 원 정도만 일단 벌었으면 좋겠다고 하면, 주변에서는 내 나이에 그 돈 벌어서 어떻게 사냐고 한다. 그러나 내가 그 돈을 평생 받으려고 이 짓을 하는 게 아니다. 지금 내가 하는 글쓰기 책 쓰기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콘텐츠 생산과 활동이 한 방 빵 터지면, 세금 떼고 1년에 1억 이상 벌 수도 있기 때문이다. 행운을 바라는 것은 아니고, 더 설명할 수는 없지만, 반드시 내가 성공할 수밖에 없는 공식이 내 머릿속에 있기 때문에, 나는 조금만 이렇게 버티면 된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 나는 아침 7시에 일어나, 밤 10시까지 거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하루 종일 글쓰기만 한다. 당장 한 푼도 돈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글을 쌓아두고 있다. 내 글이 재미있고 인상적이기는 한데, 베스트셀러가 될 만하지는 않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믿는다. 글이 쌓이고 쌓이면, 발전하고 진화한다. 또한 내 글은 완성본이 아니라, 초고이다. 안목 있는 출판사나 능력 있는 에디터가 딱 보고, 자신들이 가져가서 깎아 다듬고 기름칠하고 마케팅을 잘하여 판매하여 타산이 있겠다 싶으면, 그때부터 작가로서의 역사는 시작되는 것이다. 평생 작가로서 살 것인데, 메인 직업을 작가로 하겠다는 생각은 아니다. 지금은 한 푼도 돈은 들어오지 않지만, 하루 종일 글을 쓰니 내 직업이 전업작가이다. 다른 직업이 생기면 그 직업을 가지며 글을 쓸 수도 있다. 그 직업이 출판편집디자이너나 1인 출판사 사장은 아니라는 것을 최근 깨달았을 뿐이다. 작가로서의 삶과 그 직업으로서의 삶이 시너지를 발휘하는 직업을 찾으면 그 길을 갈 것이다.
하루의 두 개의 브런치 글을 발행하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최근에는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글쓰기에 올인하면서,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내 글 쓰는 속도가 느려서는 아니다. 나는 글을 빠르게 쓰는 편이고, 다작을 하는 편이다. 오랜 시간을 두면서 고치는 편이라기보다는, 한 번에 단숨에 글을 써야지 그 글이 더 미려하고 완벽하다. 그런데 문제는 브런치 작가 승인이 오랫동안 되지 않으면서, 기존에 쌓아 놓았던 글들을 발행하다 보니까, 일관성도 없고, 이 글과 저 글의 내용이 겹치고, 이런 일들이 발생했다. 시간을 두고 책을 낼 생각이면 나중에 책을 발행할 때 고치거나, 출판사에서 가져가서 에디터들이 수정해 가지고 와서 나랑 회의하면서 최종 결과를 만들면 되는데, 지금 당장 올해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공모에 당선될 만한 스케일의 작품을 내놓아야 하기 때문에 수정이 필요했다. 요 며칠은 새 글을 쓰는 것보다, 옛 글을 수정하는데 에너지를 쏟았다.
글은 평생 쓸 것이다. 글쓰기가 메인 잡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평생 글을 쓰며 살기 위해서, 글쓰기와 시너지를 이룰 수 있는 직업이 필요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은 아직 돈 한 푼 입금되는 것은 아니지만, 전업작가로 살기로 했다. 물론, 글 써서 돈 한 푼 안 번 것은 아니다. 네이버 블로그 이벤트에 당첨되어 200만 원 상금을 네이버 포인트로 받았다. 아내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블로그에 써서 연합뉴스 TV 작가에게 연락이 와서, 다큐멘터리 출연해서 방송 타고 출연료 받았다. 네이버 블로그에 1년 정도 글을 써서 애드포스트 27000원 정도의 수익을 창출하였다. 밀리의 서재 이벤트에 베르베르 베르나르 문학 살롱 참가 소감을 밀리의 서재 인스타그램 댓글로 잘 써서 '파라다이스 시티 1박 2일 숙박권'을 받았다. 큰 액수는 아니라 꾸준히 글을 써 오면서 작지만 의미 있는 성과들을 만들어 냈다. 아직까지 글쓰기로 의미 있는 돈을 번 것은 아니지만, 내가 글을 써서 돈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만들어 왔다. 그래서 지금은 부모님과 아내도 예전과는 태도가 달라지셔서, 내가 글 쓰는 활동에 대해 미래를 향해 가능성 있는 경제활동으로 인정해 주신다. 이번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당선이 될 수도 있는데, 당선이 되든 되지 않든 나는 내 책을 꾸준히 출간할 것이다. 나의 첫 직업이 초등학교 영어교사였고, 두 번째 직업이 아직 돈을 벌고 있지는 않지만 작가라면, 세 번째 직업을 만날 때까지 나는 전업작가로서 활동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