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월급쟁이다. 말 그대로 한 달 벌어 한 달 산다. 예기치 못한 지출이 생기는 달은 일상의 지출을 줄이다 못해 '냉장고 파 먹기' 모드로 들어간다.
올해 초 처갓집 네팔에 가서 한 달 조금 넘게 지내다 왔다. 2월에 근무 일수가 한 주 빠지니 안 그래도 많지 않은 월급에 한 주 분이 빠지니 3월 우리 집 경제는 어질하다. 이런 아슬아슬한 달에 네팔인 친구의 딸 생일파티를 하고, 교회 권사님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고, 부모님과 고모들이 백세를 바라보시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제주도에 가셨다. 이 달 재정이 빠듯하다고 가까운 지인의 경조사를 지나갈 수 없고, 부모님께서 할아버지 모시고 할아버지 생전에 마지막이 될 제주도 여행 가시는데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다.
사실 월급의 한 주 분 빠져도 살면 사는데, 이번 달에는 특별 지출이 겹쳐 아찔하다. 이런 때는 냉장고를 파 먹는다.
올해 초 네팔에 갔다. 아내 에미마가 가족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아들 요한이가 외가 식구들의 사랑을 받는 동안, 나는 글을 써서 책을 내려했다. 네팔에 들어갈 때 생각은 네팔에 나올 때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전업작가로 살 수 있는 양질의 책 한 두 권을 쓰고 입국해 바로 회사 사표를 내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게 내 생각 대로 되지 않았다.
지금은 낮에는 회사에 다니고, 밤과 주말에는 아내와 에미마랑 아들 요한이랑 시간을 보내고, 출퇴근 길 넷플릭스 유튜브 밀리의서재를 보며 놀다가 잠깐 짬이 나며 브런치 앱을 열어 글을 쓴다.
네팔에서 돌아온 이후 더 이상 스트레스받지 않고 일상을 살고 있는데,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글쓰기의 동력은 방전되었다. 글쓰기를 놓은 것은 아니지만, 글쓰기를 위한 시간을 먼저 떼어 놓기보다 자투리 시간에 글감이 떠오르면 글을 쓴다.
새로운 오늘의 글감이 떠 오르지 않을 때, 글의 신이 나를 떠나 더 이상 글이 나를 찾아오지 않을 때, 나의 마음속 글쓰기의 냉장고 문을 열어 냉장고를 파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