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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Apr 04. 2023

J에게

J 스치는 바람에
J 그대 모습 보이면
난 오늘도 조용히
(중략)
난 이 밤도 쓸쓸히
쓸쓸히 걷고 있네
이선희, 《J에게》


출근길 전철이었다. 배가 아파 중간에 두 번 내려 역사 화장실에 갔다 다시 탔다. 출근 시간이 좀 늦어지더라도 급한 일부터다. 똥을 참아 급똥이 되면 대형사고가 일어난다. 그날은 답이 없다. 집에서 일찍 나와 전철역으로 가는 버스를 바로 타, 오늘은 일찍 출근해 여유를 누리나 싶었는데, 도루묵이 되었다.


J에게서 카톡이 왔다. J의 번호가 내 폰에 저장되어 있지 않고, J는 내 카톡에 등록되어 있지도 않다. 닉네임만 보아도 누군지 짐작은 가는 달갑지 않은 인물이다. 나는 J에게 아무 관심이 없는데, J는 나에게 관심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에게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 너머스떼
- 네
- 선쩌이 후누훈처?
- 무슨 말씀인지는 아는데. 저는 한국사람입니다.
- 넵!!!


출근길 J와 나눈 카톡 대화의 전부다. 나에게 뜬금없는 네팔어 카톡을 보낸 이 인물은 한국인이다. J도 내가 한국인인 줄 안다. 내가 네팔인 남편인 것을 알고 네팔어로 말을 거는 것이다. 나에게만 그런 것은 아니고, 외국인이 지나가면 모르는 사람에게 그 나라 말로 말을 거는 인물이다. 이 인물은 주로 인터넷 특별히 페이스북에 출몰하며, 페이스북에서 한국에 는 외국인들에게 말을 건다. 그중에서도 외국인 여성에게 말을 건다.



예전에 우리 부부가 연합뉴스 TV 다큐멘터리에 출연했었다. 거기서 우리 부부를 보고 어떻게 찾았는지 내 네이버 블로그에 댓글을 달며 내 이메일 주소를 물었던 것 같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글로 도움을 요청하면 글로 도움을 드리기 때문에, 이메일을 주면 내가 할 수 있는 도움은 이메일로 드린다. 이메일 읽고 이메일 쓰는 딱 그 정도다. 그게 딱 내 깜냥이다.


나에게 이메일 보내면서, 아내 에미마의 연락처를 알려 달라는 것이다. 할 말 있으면 나한테 하라고 했다. 그리고 지나서 블로그에 한국 거주 네팔인 친구 부부가 우리 집에 놀러 온글을 올렸더니 그 친구들 연락처 알려 달라고 했다. 이상한 사람 한 사람 때문에 영향을 받고 싶지는 않았지만, 일단 글은 남기고 네팔인 친구 사진은 내렸다. 할 말 있으면 나에게 말하고, 내 네팔인 친구들에게 관심 꺼 달라고 했다. 외국인 친구가 필요하면 가까운 외국인 예배를 하는 교회가거나 외국인 복지센터에 가서 알아보라고 했다.


좋은 사람도 아니지만, 나쁜 사람도 아니다. 그냥 이상한 사람이다. 네이버에 의뢰하여 그 사람의 뒷조사를 해 보았다. 네이버 검색을 해 보았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내 유머 코드를 이해 못 하고, 웃고 넘어갈 타이밍에, 니가 뭔데 뒷조사를 하고 나오면 안 된다.


나는 전에 몰랐던 사람인데, 아는 사람은 아는 나름 화제인물이다. 20개 이상의 언어를 한다는 사람이다. 검정고시 출신에, 특별히 하는 일은 없고, 네이버 지식인 절대신이며, 인터넷 방송을 하며, 거리에서 외국인 붙잡고 말 걸고, 몇 년도 몇 월 몇 일이 무슨 요일인지 외우고, 더하기 빼기 나누기 곱하기가 암산으로 가능한 인물이다. 본인과 J의 지지자들은 J가 IQ가 낮지 않기에 서번트 증후군이 아니라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게 서번트 증후군이다. 서번트 증후군은 지능이 한 방면으로만 뻗어 나간 사람이다. 일반적으로는 지능이 낮은 이에게 신의 은총처럼 서번트가 오지만, 보통 사람도 한쪽으로만 지능이 발달하면 서번트가 올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내가 보는 그의 일반 지능은 경계선에서 애매한 수준이기도 하다.


미디어를 통해서만 J를 아는 이들은, 어려운 환경에서 대단한 능력이고 안타깝다고만 생각한다. J를 전혀 모르던 나는, 갑자기 나에게 연락해서 내 아내 연락처를 달라고 하는 인물이기에, J를 곱게 볼 수 없다. 내 블로그 읽고 내 집에 놀러 온 내 네팔인 친구들 연락처를 달라고 하는 인물이기에 J를 곱게 볼 수 없다.


어떻게 보자면 우리 주변에 재능을 썩히는 소외된 이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원수도 아니지만 내 이웃은 아니다. 그저 나 알바 아닌 모르는 사람이다.


물론, J는 그냥 외국인과 그 나라 언어로 대화하고 싶어서이다. 그렇다고 모르는 여자에게 말 걸고 메시지 보내는 아저씨가 정상은 아니다. 이상한 사람이다. 나도 한때 아주 이상한 사람이었던 장본인이었지만, 이상한 것은 이상한 것이고, J도 평범하게 살기를 바란다.


내 아내 에미마를 예로 들자면, 자기 페이스북에 "전국 노래자랑에 나오셔서 마지막으로 노래 부르신 수원 사시는 네팔에서 오신 에미마 씨 계시면 친추 부탁합니다." 이런 글을 날이면 날마다 올리는 인물이다.


뭐 그렇다고 위협적인 인물은 전혀 아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아무런 위협이 안 되는 인물이다. J의 페이스북을 보는 이도 없고,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은 J에게 아무 관심이 없다. 한국인들에게야 20개 국어를 한다는 J가 창경원 원숭이처럼 신기한 것이지,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은 아무도 J에게 관심 없다.


J형, 내가 남 이야기 같지 않아서
한 마디 하는데.
J형, 그렇게 살지 말아.
정신 좀 챙기고 살아.
나간 정신 돌아오는 게
내 맘 같지 않은 것
내 잘 아는데.
내가 내 정신 안 차리면
누가 내 정신 차려주겠어?
남 탓, 세상 탓, 환경 탓 해 봐야
뭐 세상이 달라지나?
J형, 하늘에 별을 따려는
되도 않는 헛 꿈꾸지 마시고
그냥 J형 정신이나 잘 붙드시고
상식적으로 삽시다
남의 마누라 궁금해하지 마시고
남의 친구 궁금해하지 마시고

J형, 내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아서
하는 말이니 혹시 어디서 보더라도
노여워하지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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