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8일 토요일이었다. 기억력이 그다지 좋지 못한 나는 기억이 아닌 기록으로 기억한다. K와의 카톡 메시지를 더듬어 보니 그날이다. 수원역 카페에서 K를 만났다.
K의 형이 조울증이다. K가 일면식도 없던 나에게 쪽지를 보낸 것이 일 년 전 즈음이었다. K의 형이 조울증으로 입원했을 때였다.내가 네이버 조울증 카페에 쓴 조울증을 극복하고 잘 살아가고 있는 글을 읽었나 보다.
조울증에 대하여 글쓰기에 대하여 많이는 아니고 어쩌다 한 번 상담 요청이 들어온다. 다른 이유에서는 아니다. 20년 가까이 조울증으로 방황하다 극복하고 잘 살고 있는 나에게서 12번 떨어지고 13번째 브런치 작가가 된 나에게서 길을 찾는 사람이 있다.
나의 글을 읽고 나를 직접 만나고 싶어 하는분이 많이는 아니고 어쩌다 있다. 현재로서는 궁금해하시는 부분에 대하여 카카오톡이나 이메일로 답변을 드리는 게 원칙이다. 이 정도까지가 내가 작가로서 평소에 브런치나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아서이다. 일 년 전 K를 수원역에서 만났던 것은, K에게 조울증으로 입원한 형을 돕기 위해 나를 만나야 하는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 년 전 K를 만나고 아무 연락이 없었다. K의 형이 잘 지낸다는 의미다. 일 년 후 K에게서 다시 카톡이 왔다. K의 형이 재발을 했다는 의미다. K가 나를 다시 만나자고 한 것은 K의 형의 조울증 재발에 대해서 나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였다. K가 나를 만나 물어보고 싶었던 주제가 무엇이었는지 지금은 이미 잊어버려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그날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의 파편이 조각들로 일부 기억에 남아 있다.
K의 형은 약을 끊고 재발을 한 게 아니라 약을 먹으면서 재발했다. 약을 먹고 조절하고 관리하면서도 조울증이 재발할 수 있다. 날씨의 변화, 스트레스, 알 수 없는 이유 등으로 조울증이 재발할 수 있다. 그러나, 약을 먹을 때와 먹지 않을 때, 관리할 때와 관리하지 않을 때, 그 결과가 확연히 다르다. 약을 먹으면서 재발을 하면, 약의 증량만으로 입원 없이 외래로 증상을 조절할 수 있고, 입원을 하더라도 그 기간이 짧다. 조울증의 기운이 만땅으로 찼을 때 3개월 입원한다면, 약을 먹으며 재발할 경우 1개월 혹은 두세 주 이내로 입원할 수 있다.
사실 이번에 K의 형은 경과가 좋았다. 일 년 동안 아무 탈 없었다. 이번에 나빠지기 전에 본인도 좀 이상해지고 있다고 자각했고, 부모님과 지인도 알았다. 조금 안 좋아졌을 때 주치의에게 이야기해서 약을 증량하지 않았을 뿐이다. 현대의학은 근거 중심으로 진단을 통해 치료한다. 정신의학도 마찬가지다. 다만, 정신과의 진단은 X-ray CT MRI 찍어서 나오는 게 아니다. 환자의 말과 행동을 통해 진단하는 것이다. 이 말이 환자가 나 조금 이상해졌다고 약 증량해 달라고 의사가 약을 증량해 준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떻게 이상한지 주변에서 어떻게 걱정하는지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야지 그 대화를 통해 정신과 전문의가 환자의 상태에 대한 진단이 가능하다.
나와 같은 경우에는 정신병적인 문제가 없을 때는 내 이야기를 내 고민을 속속들이 주치의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내 상태가 괜찮을 때는 정신과 주치의와 어느 정도의 거리 유지가 필요하다. 나는 조울증을 관리하고 조절하며 극복하고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 심판관이 주치의이기도 하다. 나와 내 주변에서 나에게 정신병적인 문제가 있다고 느낄 때는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 주치의에게 이야기한다. 이를테면 마음속에 화가 조절이 안 되어 길거리에서 혼자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할 때이다. 다른 사람도 화나고 스트레스받으면 어쩌다 잠깐 그럴 수 있는데, 조울증이 있는 사람은 그 상태를 찍고 완전히 기분이 스코프를 벗어나서 조울증이 재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울증이 재발할 때 처음부터 약을 안 먹기보다, 조금 이상해지는 과정에서 약을 증량해서 기분을 정상 범위로 조절하는데 실패해서 상황이 악화가 되면 그때부터 환자는 약을 안 먹기 시작한다.
조울증이 있는 사람은 약을 먹다라도 평소와 조금 다르면 주치의에게 가서 이야기를 해서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약을 증량해야 한다. 그러면 학업 직장 사회생활을 중단하지 않고 외래로 조절도 가능하다. 아주 오래 동안 조울증을 앓다 보면 가까운 지인들은 느낌적인 느낌으로 바로 안다. 그때 평소 약 타러 다니는 병원에 가서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이야기해서 필요하면 약을 증량하여 조절하면 된다. 상태가 좋아지면 약을 다시 조절하면 된다. 나와 같은 경우에 내가 평소와 같지 않을 때 약을 증량하고, 괜찮아지면 평소 복용량으로 감량한다. 내가 그렇게 해달라지는 않고, 정신과 상담을 통해 나의 상태를 보고 주치의 선생님께서 알아서 해 주신다.
결혼하기 전에도 이미 상당히 호전되었지만, 내가 재발을 하지 않은 것은 아내 에미마랑 결혼하고부터다. 내가 아내 에미마랑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자주는 아니지만 어쩌다 재발을 했을 것이다. 아내 에미마가 가져다준 사랑과 행복 때문만은 아니고, 아내 에미마랑 산 이후 스트레스를 덜 받아서만은 아니고, 아내 에미마랑 이룬 가정 속에서 조울증이 관리되고 조절이 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아내 에미마가 꾸준히 약 먹도록 관리해 주고, 조금 이상해지면 병원에 보낸다. 조금 이상할 때 약을 증량해서 기운을 눌러 조울증이 재발까지 가지 않도록 한다. 여기서 조금 이상하다는 정도는 이미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는 상태다. 단순히 스트레스받는 정도는 아니다. 가만히 두면 그 지점을 찍고 뜨게 되니 센 약을 써서 누르는 것이다.
나는 사랑으로 조울증을 극복했다. 그러나 다른 조울증 환자에게 K의 형에게 결혼을 권하지 못한다. 나는 아주 예외적인 케이스다. 결혼 상대가 아내 에미마였다. 상대가 특별히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예외적인 성공이었다.
그래서 K에게 K의 형도 나처럼 좋은 사람 만날 수 있다고 말할 수 없었다. 희망고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과 결혼까지 가도 성공보다 실패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글 통해 모든 조울증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사랑과 결혼을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나는 사랑과 결혼이 인생의 전공필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교양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내가 사랑과 결혼을 하지 않는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닌, 나의 처지 때문에 사랑과 결혼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스무 살에 조울증에 걸려 스무 해를 미치광이로 살았다면, 마흔에 나를 이해하는 좋은 사람을 만날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정말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당신이 지금 괜찮아졌을지라도 너덜너덜한 당신과 사랑과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과 결혼을 포기하지도 말고, 사랑과 결혼에 목 매지도 말고, 내 정신 잘 챙기며 내 삶을 살다 보면, 나의 스토리를 다 알면서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좋은 사람을 만날 기회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