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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Nov 22. 2020

다단계가 아닌 다단계는, '착한' 다단계인가?

내 인생에 태클을 걸지 마!

"며느리 생일 축하 며칠 앞당겨서 샤브샤브 먹으러 갈까?"


지난주 일요일 11월 15일 저녁이었다. 아내 에미마 생일은 18일인데, 부모님께서는 16일 월요일에 논산 시골집에 내려가셔서, 생일인 수요일에는 동생 바다 가족과 식사를 하기로 했고, 15일 일요일 저녁에 저녁식사를 부모님께서 사주셨다. 화서역 먹거리촌에서 샤브샤브를 먹기로 했다.


식당광고 카피 - "지나치면 남의 집 / 들어오심 손님 집"


지나치면 남의 집
들어오심 손님 집


샤브샤브 식당 전면 유리창에 광고 카피가 재미있었다. 지나치면 '남의' 집이고, 들어오심 '손님' 집이란다. 예전에도 교회 집사님 부부와 우리 가족이 식사하러 와본 기억이 있는데, 오랜 기간 안 오는 동안에 내부 인테리어를 새롭게 리뉴얼하였다.


반찬과 샤브샤브가 무한리필인 식당이었다. 처음에 주는 수육만 빼고 다른 모든 것은 리필이 가능한 식당이었다. 무한리필이라고 해도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양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생각만큼 많이 먹지 못한다. 많이 먹어도 손해 나지 않을 만큼 가격을 받을 테고 말이다. 또 이런 식당일수록 박리다매일 수 있다. 무한리필 고깃집에 고기 등 식자재가 질이 낮다기도 하는데, 이 식당은 그런 싸구려 식당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무한리필로 식당을 운영하기 위해 식재료의 질을 낮추면, 손님이 귀신 같이 알고 떨어진다. 손님은 질 좋고 싼 식당을 원하지, 싸고 질 낮은 식당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내 에미마와 동생 아들 다솔이


"다함아, 기억나? 안양에서 아파트 분양받아 이사 가기 전 얼마 동안 의왕의 오전동에 살았었던 것?"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부모님께서 부부교사 셨을 때 백령도로 발령받아 온 가족이 백령도에서 살다 나와서, 분양받은 평촌의 아파트에 입주하기 전까지, 안양 호계동의 오래된 아파트에 살았었다. 말이 아파트지 엘리베이터 없는 5층짜리에, 썩을 대로 썩은 아파트였다. 썩은 아파트에서 살면서도 평촌 아파트 37평에 입주할 생각에 우리는 행복했었다.


호계동 아파트에서 나와야 하는 시기와, 평촌 신도시 아파트로 입주하는 시가가 붕 뜨게 되었다. 집을 새로 빌리기에는 짧은 시간이었고, 그렇다고 어디 짧게 방을 빌려서 살기에는 긴 시간이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2~3개월 정도였을 것이다. 아버지께서 아시는 선생님께서 남편이 돈을 많이 버셔서 부자가 되셨는데, 남편이 정치한다고 그 돈을 다 까먹으셨다. 그 선생님 건물의 오피스 쪽방에서 잠시 살았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도 남편의 선거 사무소였는지도 모른다. 원룸이나 오피스텔이 아니라, 그냥 사무실에 딸린 방 하나에서 살았다.


그때 기억을 기록하다 보니 그 시절 에피소드 하나가 생각이 났다. 의왕시 오전동에 살 때는 안양의 중학교가 멀었는데 단 한 번도 지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범계역 10분 거리 평촌고 코 앞에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평촌고에 입학했는데, 코 앞의 학교를 매일 지각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고, 상당수의 사람들이 그렇다고 한다.


"네. 기억나요."

"그때 우리가 오전동에 사무실에서 살던 때 그 선생님 기억나?"

"글쎄요. 살았던 것은 기억나는데, 그 선생님을 제가 보았는지는 기억이 안 나요."

"아마도, 여러 본 그 선생님을 뵈었을 거야."

"저는 잘 기억이 안 나요."

"그 선생님하고 얼마 전에 전화를 했는데, 너희 부부랑 만나보고 싶어 하셔. 아들이 마흔 중반을 훌쩍 넘긴 총각인데. 그 선생님이 남편이 정치한다고 쫄딱 망했는데, 하나님의 축복으로 다시 돈 많이 벌어서, 자기 집도 사시고, 아들에게 집도 사 주고 차도 사 주셨대. 아들이 마흔 중반인데 네팔의 에미마 친구 중에서 한국 남자랑 결혼해서 한국 여자랑 살고 싶은 자매가 있는지도 궁금하고..."


'에미마니까, 날 사랑하지. 국제결혼 중간에서 함부로 소개해 주면 난감해질 수 있는데. 나이도 마흔 중반이면, 솔직히 어려울 텐데...'


입 밖으로는 내뱉지 않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그 선생님께서 너희 부부를 한 번 만나보고 싶으시대."


여기까지 듣고서 나는 그 선생님께서 아들 결혼 문제로 우리 부부를 한 번 보러 오시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나는 아내가 사랑으로 어려운 결단을 내려 준 것이고, 그 아들 나이는 결혼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데 우리를 만나신다고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입장을 정리했다. 그 선생님께 어떠한 확답도 들이지 말고, 그냥 그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궁금하신 것만 대답해 드리자고 생각을 했었다.


아버지께 카카오톡이 왔다. 그 선생님 전화번호를 주시더니, 이 번호로 전화가 올 것이라고 했다. 그날 밤 전화가 오지는 않았다.


다음 날 모르는 전화가 오다가 끊겼다. 내 스마트폰에는 스팸 피싱 방지 앱이 깔려 있는데, 그 앱으로 스팸이나 광고성으로 뜨지 않는 전화번호였다. 어제 그 선생님 전화인가 하고 카톡의 전화번호로 맞추어 보니 그 전화였다. 그래서 내가 전화를 돌려 통화를 했다.


"언제 시간 돼요?"

"저희는 언제든지 편한데요. 언제가 좋으세요?"

"내일 5시 어때요?"

"좋은데요"

"제가 집으로 갈게요."


그렇게 해서 우리 집에 오셨다. 나는 아들 이야기를 할 줄 알았는데, 그 이야기는 꺼내 놓지도 않으셨다. 모 네트워킹 마케팅에 대하여 이야기 하기 시작하시더니, 시종 내내 그 이야기만 하셨다. 아들 결혼 때문에 우리를 만나러 오신 게 아니라, 네트워크 마케팅 다단계 사업에 우리를 끌어 드리러 오신 것이었다.


"우리 기업은요. 다단계로 등록이 되어있지만, 다단계 회사가 아니에요. 직접 판매이기 때문에 법으로 다단계로 되어 있는 것이지, 다단계가 아니에요."


'다단계가 아닌 다단계 회사'가 그 회사였다.


"우리 회장님은요. 세상에 그러신 분이 없어요. 우리 회사는요. 전 세계에 진출하고 있어요. 글로벌 기업들이 돈을 벌면요, 전부 그 사주에게 돈이 가는데요. 우리 회사는요, 구성원들이 돈을 벌 수 있는 구조예요. 우리 회장님은요. 돈 벌어서 동남아 아프리카에 우물 파 주고요. 학교 세워 주고요."


내가 이미 알고 있는 회사였다. 다단계에도 착한 다단계가 있다면 그 회사가 착한 다단계다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는 아직까지 모든 다단계는 나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나쁘든 좋든 내가 손해 안 보고, 타인에게 손해를 안 끼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다단계는 나와 내 주변의 지인들이 필요한 물건을 그 회사에서 구매하면, 나에게 어느 정도 수입이 들어오는 구조이다. 무리해서 내가 사거나 지인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필요한 물건을 그 네트워크 마케팅에서 구입한다면 이론상으로는 피해 볼 것은 없다. 또한, 회장님에 대해 우상시하는 것도, 회장이 존경받고 구성원이 찬양할 만하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거 안 하셔도 되는데요, 꼭 공부하시고 해 보셔야 돼요."


안 해도 되는데, 누구든지 꼭 해야 된다는 논리의 모순은 다른 사업들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모순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분의 간절함이구나,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신감이구나 생각했다. 본인의 실적을 위해서라도 본인의 일을 열심히 하는구나 생각했다.


문제는, 내가 그 일에 아무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내 관심은 이미 다른 데에 있었다.


"저는요. 다단계 마케팅은 안 하고요."

"우리 회사는요, 다단계 마케팅으로 등록이 되어 있지만, 다단계 마케팅이 아니고요."


"어찌하였든, 저는 다른 것을 준비하는 게 있고요. 이런 일에 큰 관심이 없고요. 아내랑 한 번 이야기해 봐서요. 아내가 재미있어하면 아내가 원하면 한 번 해보라고 할게요. 아내랑 상의를 해 볼게요."


한다는 말이 아니라, 정중한 거절이었다. 아내가 원한다면 이 일을 하면서 의미를 찾는 것도 좋지만, 그것은 아내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내가 그 일을 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하고 싶으면 그 일 하면서 시간도 보내고, 네트워크 마케팅을 온라인으로 강의도 듣고, 그것을 통해서 사람도 만나고 경제관념도 배우고 하면 좋을 것 같았다. 배우는 것보다도, 시간에 의미를 느껴서 그게 아내의 삶을 더 행복하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아내가 그 다단계를 하기를 바란 것은 아니고, 그분에 대한 정중한 거절이었다.


센스가 없는 것이신지, 아니면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그분은 자신에 일에 열심이신지, 그 이후로 매일 같이 카톡 하나씩 온다. 매일은 아니고 매일 같이 온다. 줌 강의나 유튜브 LIVE 방송에 들어오라는 링크이다. 일부러 피한 게 아니라, 실제로 그 시간에 아내와 여러 가지 할 일들이 있었다. 외부에 나와 있어서 참석할 수가 없었다.


아들 이야기는 신발장에서 신을 신으시면서 한 마디 하셨는데, 아들 이야기를 하러 오신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를 만나기 위한 미끼이고, 네트워크 마케팅 다단계에 우리를 포섭하기로 하셨다. 다단계가 아닌 '착한' 다단계에 우리르 포섭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그 선생님 왔다 가셨는데요. 아들 결혼 때문이 아니라, 다단계 때문에 오셨는데요."

"그래. 여차 저차 만나고 싶으셨던 것 같아. 네트워크 마케팅 강의도 한 번 잘 들어봐."


아버지 어머니께서도 아마도 아들 때문에 우릴 만나러 오신 게 아니라, 네트워크 마케팅에 우리를 포섭하시기 위해 그 선생님께서 오시는 것이란 사실을 잘 알고 계셨던 것 같다. 부모님 특히 아버지는 그 사업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셨고, 나는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라는 개통령 강형욱의 말처럼 나는 세상에 좋은 다단계는 없다.'라는 게 소신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내가 다단계라면 학을 떼는 것을 아시니까, 다단계 이야기는 안 하시고 다른 이야기를 하신 것이었다.


그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대단히 피곤해지면서, 또 한편으로는 '착한' 다단계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나는 내 인생에서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일이 있다. 부모님도 이미 다 알고 계시는데, 부모님은 지금 당장 내게 현실적인 돈벌이를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벌이신다. 특히 아버지께서 그러신다. 그런데 내가 보는 관점에서는, 돈도 되지 않고, 안정성도 없고, 비전도 없고, 건전하지도 않다. 다 떠나서, 내가 관심이 없다.


가난해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는 생각을 내 생각이 수렴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내 평생 가난하게 살겠다는 것이 아니다. 뭘 해도 나는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금 내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을 어차피 찾을 수 없다. 다른 뭘 해도 말이다. 이런저런 일을 해 보고 내가 얻은 결론이다. 어차피 냉철하게 보았을 때, 가난하고 직업이 없기는 똑같은데, 지금은 주변의 도움받으면서, 글쓰기와 책 쓰기에 내 모든 에너지를 쏟아서, 작가로서 살겠다는 쪽으로 생각을 모으고 있다.


작가가 되기 전까지, 출판편집디자인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할까, 출판사에 들어가서 북디자이너로 일할까, 등등의 모든 생각을 해 보았는데, 결론은 취업불가라는 현실이었다. 내 책을 내는 1인 출판사를 만들까 했었는데, 이 또한 창업 불가라는 현실만을 깨달았을 뿐이다. 뛰어들어 보지는 않았지만, 계산기 두드려 보면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계산기 두드려 봐서 타산이 안 나올 뿐 아니라 대규모의 감당 못할 적자가 예상되는데 들어가는 것은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것이다.


나는 아무 계획 없이 꿈만 꾸는 몽상가도 아니다. 내 머릿속에 이미 플랜이 있다. 그리고 그 플랜들을 구체화시켜 가면서, 꿈을 현실로 만들어 가고 있다. 내 눈에 보이는 미래가 다른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작지만 수많은 결과를 보여 주어도, 그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여기 와서 이거 해 봐라고 유혹한다. 나는 글쓰기에 모든 것을 걸었다고 이야기하면, '그래 너 글쓰기에 재능 있고, 그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이제 인정하는데. 글쓰기를 하기 위해서도 경험이 필요한 거야. 여기 와서 이런 경험을 해 봐.'라고 자꾸 당긴다.


내가 돈을 벌고 싶지 않아서 안 버는 것도 아니고, 20대 30대 결정적일 때를 조울증을 관리를 잘못해 방황하느라 사회생활 경제생활을 하지 못해서 못 버는 것이고, 어차피 내가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다. 여기 와서 이거 해봐 해도 이제 내가 안 가는 것은, 그 일을 해도 어차피 주 5일 8시간 규칙적으로 일하고 최저임금이라도 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차피 불확실성과 용돈 받아서 생활하는 삶은 지금과 똑같은 것이다.


아버지 왕대추 농장에서 왕대추 농사를 하거나, 친구가 한 명도 없는데 다단계가 아닌 다단계를 한다는 게, 어차피 비현실적인 것은 마찬가지인 것이다. 내가 글쓰기와 책 쓰기에 미쳐 있는 것은, 인생 쉬엄쉬엄 내가 하고 싶은 글이나 쓰고 살지 그런 생각 때문이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얼마 동안의 시간만 집중적으로 이 일에 투자하면, 내 돈 내가 벌어 나와 아내 입에 풀 칠 하고 자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고, 더 나아가 가장 빨리 경제적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해서 이다.


집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들 때까지, 네이버 VIBE로 음악을 들으면서, 네이버 블로그에 자유로운 나의 생각을 쓰고, 브런치에 책을 쓰기 위한 출간 목적의 글들을 써가는 게, 내가 생존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내 계산기에는 그 결과값이 나오기 때문이다.


가난이 비참한 것은, 가난 그 자체 때문이 아니다. 가난해도 자유로울 수 있다. 문제는, 가난한 사람이 자유롭게 자기 삶을 살려고 하면, '어이, 이리 와서 이거 해서 이 열매 따 먹어.'라고 유혹해 온다는 것이다. 나는 아무 유혹도 못 느끼는데 말이다. 내가 느끼는 유혹은 그 열매에 대한 유혹이 아니라, 그 열매를 따는 척 열심히 뭔가를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내 인생의 태클을 걸지 않겠지 하는 유혹이다.


가난은 그 자체로 비참하다. 그런데 그 가난 자체의 비참함도 마음먹기에 따라 초월할 수 있는데, 내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리 와서 이것 따 먹어봐' 하고 나를 끌고 가려는 것 때문에, 내 인생의 속도에 저항을 받는 것이 비참하다. 지금은 끝이 보이지 않아도, 한 고개만 넘어도 정상이 보일 것 같은데, 자꾸 여기 와서 '이것 따 먹으면서 살아.'라는 조심스러운 제안들이 나를 피곤하게 한다.


"그냥 한 번 들어는 봐. 싫으면 할 수 없지만. 어쨌든 한 번 들어봐."


나를 생각해서 하시는 말씀인 것은 알겠는데, 왜 나는 지금 내 갈 길을 향해서 앞만 보고 직진을 하고 있는데, 저쪽 이야기를 왜 한 번 들어 보아야 하는지, 이해는 하는데 속에서 분노가 일어난다. 이 분노는 사람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상황에 대한 분노이다. 진성의 트로트 <내 인생에 태클을 걸지 마>가 생각나는 밤이다. 가수 진성도 이 노래도 잘 모르지만, <내 인생에 태클을 걸지 마>라는 제목과 클라이맥스가 내 마음에 깊어 새겨져 있다.


진성의 <내 인생에 태클을 걸지 마>
어떻게 살았냐고 묻지를 마라
이리저리 살았을 거라 착각도 마라
그래 한 때 삶의 무개 견디지 못해
긴 긴 세월 방황 속에 청춘을 묻었다

어허허 어허허

속절없는 세월 탓해서 무얼 해
되돌릴 수 없는 인생인 것을
지금부터 뛰어 앞만 보고 뛰어
내 인생에 태클을 걸지 마

어떻게 살았냐고 묻지를 마라
이리저리 살았을 거라 착각도 마라
그래 한 때 삶의 무개 견디지 못해
긴 긴 세월 방황 속에 청춘을 묻었다

어허허 어허허

속절없는 세월 탓해서 무얼 해
되돌릴 수 없는 인생인 것을
지금부터 뛰어 앞만 보고 뛰어
내 인생에 태클을 걸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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