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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한 Mar 29. 2022

나는 남편의 꿈이 되었다

주말부부 남편의 직업은 뭘까?

우리는 주말부부다.

처음부터 주말부부가 될 생각은 없었다.

20대 시절, 방송가에서 만난 우리는 바쁜 나날로 데이트 다운 데이트 한 번을 못해봤지만, 서로에게 가장 친한 친구이자 연인이었다.


결혼할 때 즈음, 우리는 막 사회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한 때였다.

나는 제작사에서 월급을 받으며 안정적인 나날을 보내며 신혼 극초기를 보냈고, 2년간의 계약이 끝난 후 운 좋게도 웹드라마를 시작해 방송작가 생활 약 7~8년 만에 큰돈을 받게 됐다.


만년 로드 매니저일 것만 같던 남편도 승승장구하며 자리를 잡아갔다.

우린 그야말로 열정이 넘치는 부부였다.

신랑은 개인 사업자로 자신의 엔터를 차려보고 싶어 했고,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무언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남자, 망해도 날 굶기진 않겠지.'


그러다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코.로.나.바.이.러.스.

여기저기서 방송가가 휘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신랑은 직격탄을 맞고 말았다.

나 또한 백수 생활을 하고 있던 터라, 다시 구성작가의 길로 돌아가야 하나 수십 번을 고민하던 시절이었다.

이러다간 정말.., 집까지 팔아야 하나 싶었기에 수만 번을 고민했지만 참고 또 참았다.

내심 다시 일하길 바라는 남편의 마음이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꿋꿋하게 버텼다.


우린.., 빚조차 질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소속된 직장도, 뭣도 없었고, 가진 거라곤 전재산을 털어 넣은 집 한 채뿐이었다.

담보대출까지 받을 생각을 할 정도로, 우린 빈곤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큰돈을 벌어 꽁꽁 숨겨두었던 나의 통장은 그렇게 생활비로 탈탈 털려가고, 통장 잔고에 0원이 찍히는 것까지 보고 말았으니, 바닥까지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머님과 투자사업을 투잡으로 시작한 나의 남편은 결국, 본가가 있는 지방에서 사업을 하기 시작했고, 무언의 직업적 사명감을 가지고 있던 매니지먼트까지 떠나버렸다.


우여곡절 끝에 이젠 진정한 사업가가  남편의 은 대체 뭘까.., 고뇌하곤 한다.

소싯적에는 매니지먼트를 차리는 게 꿈이라고 말했던 남편이 이제 뚜렷이 이렇다 할 답을 하지 못하기에, 더욱 마음이 좋지 않았다.

매니저 시절보다 살림은 좋아졌지만, 나만 이기적으로 꿈을 좇는 건 아닌가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요즘은 누군가 신랑이 무얼 하냐 물으면 "그냥 사업해요." 하고 만다.

자잘한 사업 몇 가지를 하고 있는데, 이것저것 설명하는 일도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기에, 딱 한 가지만 대표로 꼽아 말하기도 한다.


지방에서 사업을 하며 주말 부부가 된 후로 불안 불안하지만 여전히 밥벌이는 하고 있던 나의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지인이 배달 사업을 하는데, 같이 해볼까 한단다.

일단 일을 배울 겸 시아버님의 모닝을 끌고 저녁에만 배달을 다니며 아르바이트 식으로 수당을 받기로 했단다. 그때 난 머리가 띵~ 하고 울리는 기분이 들었다.

"요즘 벌이가 시원찮아서 배달일을 하겠다는 건가?"


난 진지하게 남편에게 물었다.

"나 나가서 일 좀 할까?"

단기라도 구성작가 일을 다시 해볼까 싶었다.

예상대로 남편은 나를 말렸다. 돈이 없어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는 게 아니라, 사업 때문에 이 쪽 일을 배우려고 하는 거라고 말이다.


도대체 남편은 어떤 일을 하고 싶은 걸까?

또다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채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 내가 죄스럽고 미안해지며 혼자 고뇌에 빠져있을 때 즈음, 불현듯 지난날 남편의 말들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난 장항준 감독처럼 되는 게 꿈이야."

"돈은 내가 벌 테니까 넌 글만 써."


잊고 있었다.

내 남편의 꿈은 내조의 왕의 되는 것이었다.

남편은 내가 언젠가는 김은희 작가님처럼 유명한 작가가 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 믿음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건가?.., 망할..,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할 수가 없게 만드는 남자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남편의 꿈이 되어 있었다.


매니저였던 나의 남편은 누군가를 빛나게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게 아닐까? 하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이젠 그게 나라는 것을 인정하려 한다.

한때 연예인처럼 나도 챙겨줘 봐! 하며, 투덜거리던 나 자신을 돌아보며 사죄한다.

그 모든 순간이 연예인이라는 직업 정신보다, 나의 꿈이 곧 당신의 꿈이 되어가고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

사랑하는 나의 남편아, 지금쯤 오래된 모닝을 끌고 배달을 다니고 있을 님아.

그 꿈을 이뤄드리려 오늘도 글자를 끄적거리고 있습니다.

10년이 걸리든 20년이 걸리든 내조의 왕이 되고 싶다던 당신의 꿈을 기필코 이뤄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난 오늘까지만 미안해하고, 내일부턴 배달하는 당신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겠습니다.

미안하고 사랑합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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