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다희 Oct 21. 2023

미로 속에 있는 O

고개를 들고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바라봤다. 이 순간 머릿속 잡념들이 사라진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질문을 잠시 내려놓고 숨 쉬고 듣고 보는 것에 집중한다. 




사람마다 누구나 시련을 겪는다. 내가 겪는 시련은 일의 배신, 앞으로의 삶에 대한 막막함이었다. 앞으로 더 큰 시련이 닥쳐서 지금 내가 어렵다고요! 두발 동동 구르는 내가 그때가 좋았다며 콧방귀를 뀔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그때 일이고 일단 우선 먼저! 지금 이 고비를 잘 넘겨야 하지 않겠는가. 


도대체 몇 고비를 더 넘겨야 할지 가늠할 수 없는 게 인생이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행복을 좇는 걸 보면 사는 게 고통이다는 말은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사실 같다. 얼마 전 칼럼 기사를 읽다가 김범 작가의 <친숙한 고통>이라는 제목에 미로 그림을 본 적이 있다. 미로가 꼭 우리의 삶의 행로 같고 그 행로를 걷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하게 마주치게 되는 가로막힌 벽이 고통 같았다. 이 가로막혀 돌아가야 하는 벽들은 친숙하게 느껴질 정도 너무 많다. 


인생의 미로에서 갇혀 있는 우리는 어디쯤 있는지 각자의 좌표를 알기 어렵다. 좌표를 알려 줄 삶의 지도는 없는데, 우리는 그 지도를 따라 잘 살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나의 진로 역시 내가 찍은 좌표대로 잘 가고 있으니 이대로만 따라가면 돼 라는 착각 속에 있다가 막힌 벽에 마주한 것이다. 


내가 100세까지 살 수 있는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숫자로만 보면 나는 아직 인생 반도 살지 못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벽들을 만날지 모르는 일. 그때마다 막힌 벽에 당황하고 두발 동동 거릴 텐가? 칼럼에서 읽은 '인간은 때로 삶 전체를 조감하고 싶어 한다'는 김영민 교수님의 말처럼, 나는 지금 내 삶을 멀리서 내려다보고 싶은지 모르겠다. 


어찌 됐든 미로 속에 있는 우리는 끝까지 가봐야 끝을 알 수 있다. 막힌 벽, 높은 벽, 긴 벽 수많은 나를 방해하는 장애물을 만나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주저앉지 말자. 조금만 더 걸어가면 곧 열린 길을 만날 것이라는 희망만 버리지 말고, 그 길을 가보자. 그 길이 아니면 또 다른 길로 가보자. 


이전 16화 미친 것처럼 계속 쓸 수밖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