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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다희 Dec 31. 2023

변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나'입니다

33한 프로젝트 <살아보니, 시간>을 읽고

일주일 전이네요. 지난 일요일에 '23년과 24년 사이'라는 제목으로 일기를 썼습니다. 지구와 달의 움직임에 따라 연(해)과 월이 나오고 그것을 표기하기 위해 쓴 숫자에 불과한 2023년 12월과 2024년 1월에 끝과 시작이라는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썼어요. 왠지 심도 있는 척 진지한 척하는데, 간단히 말해서 2023년 끝자락에 뒤늦게 발 동동 구르며 못다 한 무엇에 아쉬움을 붙잡으며 새롭게 시작하겠노라고 의식화하는데 지친 거죠. 


올해는 어떻게 보냈는가? 나는 잘 살았는가? 내가 이룬 성취는 무엇인가? 등등 생산성에 기반해서 내세울 결과물이 없다면 일 년 동안의 삶을 잘 못 산 게 아닐까 하는 의심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도 있었어요. 결과 성취보다는 그보다 주어진 상황에 집중하며 지금의 나에게 몰입하는 게 바람직한 일이라는 것을 한 해 나이를 먹으며 선명하게 느끼는 것도 있고요.



그런데 말만 쉽지 지금을 산다는 건 참 어려운 일 같습니다. 아무도 알 수 없는 미래라지만 우리 대부분은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에 미래를 미리 붙잡을 수 있다고 마음먹는데 익숙하니까요. 게다가 불쑥불쑥 끼어드는 두려움과 불안함을 이겨내야 하고요. 잘 살기 위해 배우며 몸에 익힌 살아가는 방식에 우리 스스로 발목을 붙잡는 격입니다.




2023년 12월 31일 오후 3시. 사람들로 꽉 찬 카페에 앉아 <살아 보니, 시간>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올해 환갑을 맞은 이권우, 이명현, 이정모와 물리학적 김상욱 그리고 과학 전문 기자 강양구 한자리에 앉아 시간에 관해 나눈 이야기를 엮은 책입니다. 제목에서도 아시다시피 이 책은 시간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우주, 생명, 문학, 권력 여러 관점으로 시간을 해석합니다.



시간은 숫자에 불과할 뿐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물리학자 김상욱은 말합니다. 이에 천문학자 이명현은 존재하는 것은 시간의 간격이라고 덧붙이죠. 지구가 태어난 지 46억 년이 되었지만 생명의 시간으로 간주한 것은 고작 5억 4,200만 년 전 밖에 되지 않았다군요. 그 기간 동안 생명의 시간은 진화와 소멸 다시 진화, 이 과정이 이루어졌다고 생물학자 이정모가 이야기합니다. 권력으로서 시간에서는 근대 이전에는 왕권과 지배력에 따라 달리 불린 반면 근대 이후, 철도가 생기면서 '같은 시간'을 언급할 수 있도록 표준시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는 거죠. '표준시'에 입각한 기준들로 우리는 시간의 압박을 받게 되는 것이고요. 문학의 시간에서는 시간은 앞으로만 흐른다는 근대 이후 인간에게 지배적이었던 인식을 비틀어버리는 소설을 언급해요. 그 예로 최진영의 단편 <홈 스위트 홈>에서 시간은 현재에서 미래로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발산한다는 구절을 인용하는데요. 발산한 시간은 사방으로 무한하게 퍼져나갔기 때문에 과거는 기억하거나 기억하지 못할 뿐 사라지지 않은 것이고, 미래는 아주 멀리 있어서 아직 모른다는 것뿐이라고 소설의 구절을 인용합니다. 이 부분에서 이명현 박사는 흐르는 시간과 다른 시간관을 소설에서 제시해 반가움을 표하기도 합니다. 



백색소음으로 가득 찬 카페에서 한 시간 동안 꼼짝 않고 책 한 권을 뚝딱 읽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을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떠오른 대로 적어 보았어요. 지금 이 순간 나, 지금을 기록하려고요. 제가 언급한 것 말고도 책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여럿 담겨 있습니다. 양자역학 이야기, 과학과 경제학 연관성, 종교 이야기도 언급해요. 다양한 관점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니 과학 이야기가 나와도 부담 없이 읽게 돼서 좋았습니다. 과학 책에 관한 나의 편견이 왕왕 무너지는 경험을 해본 셈이죠.



오늘은 2023년의 마지막이고 내일은 2024년의 시작. 그러나 이것은 숫자에 불과한 것이고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김상욱 물리학자의 말을 빌려 재언해 봅니다. 그러니 올해가 끝났다고 해서 아쉬워할 것도 없고, 새해가 왔다고 해서 시작을 알리는 함성에 애써 힘쓸 필요도 없고요. 새해라서 달라져야 하는 게 아니라 시간의 간격 속에 내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지켜봐야겠습니다. 변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나이니까요. 






이런 분들께 이 책을 권합니다


다양한 관점에서 시간을 이해하고 싶은 분

쉽고 재미있는 과학 이야기를 찾고 있는 분

책과 과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한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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