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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다희 Jul 12. 2024

알고 보면 더 매혹적인

유임주의 <클림트를 해부하다>를 읽고

과학책방에서 지난 반 년동안 책방지기로 일했다. 책방 일 중 좋았던 점 한 가지 꼽으라면 책 들이는 일을 빼놓을 수 없다. 매달 출간된 책들 가운데 선별한 신간을 주문하고, 배송된 책들을 입고하고 매대에 진열하는 일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보다 더 신나는 일이 있을까? 과알못인 책방지기에게 신간 탐험이란 과학 분야와 친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생물학에 관한 책은 그나마 익숙했다. 물리학, 양자역학, 유전학, 화학, 수학, 과학사, 인류 진화, 우주론, 다중우주, 외계생명체 등등 내가 읽어야 할까 (더 솔직하게는 읽으며 무슨 수를 써야 흥미를 느낄 수 있을까) 했던 주제의 책들을 정리할 때마다 생경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책들의 겉표지를 '최소한'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지날수록 생소함이 호기심을 변해갔다.


그 와중에 이 책의 만남은 조금 달랐다. 클림트라는 유명한 화가의 이름을 과학 신간에서 만날 줄이야. 그의 작품 세계를 해부한다니, 책의 저자는 누구인가? 미술사를 연구하는 사람인가? 저자는 클림트의 작품에 대해 무엇을 말할 것인가? 예술작품을 과학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조망한다니 읽기 전부터 책에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해부학자이자 의사인 저자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신경과학회에 참석했다가 1900년 초 지성 중심에 있던 빈 의과대학이 그 시대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술가들이 받은 영향 중에 클림트 그림에 숨겨진 해부학적 의미는 저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그러나 스치듯 묻어두었던 호기심은 한참 시간이 흐른 뒤, 한 미술관을 방문했다가 클림트의 <키스>와 <다나에> 작품을 보고 다시 떠올랐고 그 계기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19세기 황금빛 화가로 불리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 중 <키스>는 너무도 유명하다. 꽃이 만발한 초원 위에 황금빛 천으로 몸을 휘감고 진한 포옹을 하는 두 남녀가 입맞춤을 막 하려는 순간을 묘사한, 미술관 밖에서도 누구나 한번쯤은 봤을 정도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Gustav Klimt’s The Kiss (1908)



황금물결이 눈에 아른 거리도록 온통 금색으로 배경이 칠해져 있고, 황금색 도포를 몸에 휘감고 있는 남자와 여자는 한 몸처럼 꽃이 만발한 초원 위에 있다.  금빛이 가득한 그림에 넋을 빼앗긴 채 바라보고 있으면 황홀경에 빠져 묘연한 웃음을 머금고 눈 감고 있는 여성의 얼굴에 시선이 사로잡힌다. 값비싼 재료들로 화려하게 차려입은 듯 작품을 가득 메우고 있는 금빛의 항연은 아름다움 뿐 아니라 인간의 욕망 뒤에 숨겨진 관능미까지 불러온다. 사랑을 나누는 두 남녀 간의 야릇한 감정이 독자에게도 전해지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내가 늘 이 작품을 보면서 느꼈던 감상이었는데 <클림트를 해부하다>를 읽고 새롭게 알게 비밀이 있다.


남자의 망토 위에 그려진 검은색, 은색, 금색의 직사각형은 남성 성기 모양을 표현한 것으로 남근을 상징한다. 여자의 옷에 그려진 원형과 타원형의 문양들은 여성의 생식력을 의미하는 난자와 난포 세포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그림 배경을 채우려는 장식적인 요소로 크고 작은 도형을 반복적으로 그린 줄만 알았는데 남성성과 여성성을 상징한다니, 아름답게 펼쳐지는 욕망에 사람의 발생 초기의 모습을 예술적으로 녹여냈다.   



그림 50.  <키스>에서 발견되는 남성성 그리고 정자 (p.157)

 


클림트가 어렸을 때 묵도한 가족의 죽음으로 그가 평생토록 몰두한 작품 테마는 '삶과 죽음', 인간의 생로병사였다고 한다. <키스>는 생로병사 시리즈 중 한 작품이라는 것도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그의 그림에 새긴 생물학적 도상은 인류의 사고와 과학계 변곡점을 만든 다윈의 진화론과 그것을 독일에 적극적으로 퍼트린 에른스트 헤켈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클림트 자신은 과학계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빈에서 주커칸들 zuckerkandl 부부를 만나 매우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베르타 주커칸들은 언론인의 장녀로 태어나 빈 의대 해부학 교수인 에밀 주커칸들과 결혼한다. 베르타는 당시 유행하던 살롱을 운영하는, 요즘으로 치면 '인플루언서'였다. 이 살롱에는 의사, 예술가, 작가, 음악가, 철학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석했으며, 서로 여러 분야의 새로운 지식을 공유하고 소통했다. 클림트는 이 살롱의 주요 멤버였다.


이러한 인연으로 클림트는 어느 날, 의대 해부학 실습실을 방문했고 이를 계기로 1903년 주커칸들 교수가 진행하는 '예술인을 위한 해부학 강의를 듣게 된다. (중략) 당시 의학 연구를 주도하는 과학자로서 주커칸들 교수는 다윈의 진화론과 독일의 다윈이라 불린 헤켈 교수의 연구 내용을 소개하였다.


그는 특히, 헤켈 교수의 연구물 또는 책에서 다수의 조직적인 내용을 인용하였다. 클림트는 주커칸들 교수의 강의와, 그와의 교류를 통해 해부학, 발생학, 조직학에서 표출된 이미지에 깊은 인상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를 자신의 그림 속 중요한 재료로 사용하게 된다. (p.89~90)



책에서는 <키스> 말고도 클림트의 다른 작품에 숨겨진 코드를 친절하고 상세하게 쫒는다. 저자의 가이드에 맞춰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전과 다른 관점에서 클림트의 작품을 감상할 뿐 아니라 인간의 발생과 진화에 관련한 그림을 그린 예술가들과 발생에 관한 과학적 서사까지 알 수 있다. 예술가들이 그려낸 걸작을 하나하나 짚으며 알게 된 의학적 통찰과 재미와 감격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앞으로 클림트의 작품을 보느라 푹 빠져있다면, 황금빛 아래 펼쳐진 몽환적인 분위기 말고도 끝없이 이어지고 변주되는 인간의 생물학적 도상을 상징하는 사각형과 원형들의 향연에 빠져 있기 때문일 거다.   






이런 분들께 이 책을 권합니다


오스트리아 표현주의 작가 '구스타브 클림트'를 좋아하는 분

인간과 과학에 매혹되었던 예술가들이 궁금한 분

아는 만큼 보인다! 의 정수를 경험하고 싶은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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