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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다희 Feb 21. 2024

우주의 신비로운 균형을 찾아서

존 밴빌 <케플러>를 읽고

요하네스 케플러. 우주의 중심에는 태양이 있고 그 주변으로 지구와 다른 행성들이 돈다고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발판으로 우주의 질서를 밝히는데 평생을 바친 17세기 독일 천문학자이다. 비슷한 시기에 지동설을 주장한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갈릴레오와 동시대 인물이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기존 진리를 반박하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과 가톨릭교의 대립으로 뭇매를 맞았던 과학 혁명의 학자들인데, 나는 케플러라는 과학자가 있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알았다.  중고등학교 과학시간에 분명 한번쯤은 들어봤을 인물일 테지만 내 기억에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렇다 보니, 천문학을 좋아하거나, 케플러의 업적과 학문적 성과를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읽게 된 게 아니다. 순전히 400년 전 실존했던 과학자의 인생을 현존하는 소설가는 어떻게 이야기를 지었을까가 궁금해서 이 책을 택한 것이었고, 유럽의 문학상을 여럿 거머쥔 아일랜드 소설가의 작품과 문장을 읽어보고 싶기도 했다.





시대를 거르는 한 과학자의 이야기는 얼추 예상됐다. 신 중심의 세계관이 지배하던 시대에 그것이 잘못됐다고 주장하는 지식인이 당대 기득권 층에 환영받을 리가 없다. 천제 탐구에 대한 지치지 않는 열정과 우주 질서를 밝혀내겠다는 케플러의 의지는 번번이 삶의 현실적인 문제와 부딪친다. 행복하지 않은 결혼 생활, 궁핍한 학자의 생계 걱정, 돈 때문에 할 수밖에 없었던 교사 일과 점성술사 직업은 그의 연구자적 삶에 고달픔이었다. 그럼에도 케플러는 삶이 순탄치 않을수록 천문학 연구에 깊이 몰입한다. 



케플러는 우주의 조화를 지배하는 영원불변의 법칙을 좇고 있었다. 그건 마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뒤엉킨 덤불을 헤치며 전설의 사냥감을 향해 살금살금 다가가는 것과도 같았다. 아주 은밀하게 움직이는 사냥꾼만이 목표물을 정확하게 겨냥할 기회를 얻는 법, 무기라고는 아직 불완전하 계산과 미완성의 공식뿐이고, 더군다나 가장 노릇과 책임, 빌어먹을 가정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종을 번갈아 울려대며 소리치고 날뛰는 광대들에게 에워싸여 있는데 어떻게 그런 기회를 노린단 말인가? 그러나 딱 한 번, 아주 잠깐이나마 그 전설의 새를 본 적이 있다. 기껏해야 작은 점에 불과했지만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그것을 보았단 말이다. 섬광 같은 그 짧은 순간을 그는 결코 잊을 수 없었다. (p.43)



지금처럼 슈퍼컴퓨터가 있는 시절도 아닌 그때, 자신이 개발한 관측 도구로 수 억 광년 멀리 떨어진 행성을 관찰했다. 행성의 움직임과 크기를 관찰하며 궤도의 법칙을 알아내기 위해 매일 밤 관측한 것들을 종이 위에 연필로 그렸을 케플러를 상상하면 숭고함 같은 뜨거운 기운이 마음속에서 올라와 울컥한다.



소설에는 케플러 남기고 간, 뉴턴 같은 후대의 과학자들에게 영향을 준 저서들이 나온다. 그가 발견한 법칙을 알아내는 과정도 그리는데 이 부분에 관해서 내가 얼마만큼 이해했는가에 답변은 매우 망설일 만큼 자신이 없다. 케플러가 얼마나 위대한 과학자였는가를 알고 싶어서 펼친 책이 아니므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호기롭게 읽어 내려갔다. 대신 문명의 전환이 일어나는 시기, 혼돈의 과정을 버텨내는 한 인물이 지닌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지점에서는 자주 멈칫했다. 어디까지가 허구고 실제인가를 의심할 만큼 존 밴빌의 문장은 정교했다.


수정은 지구를 모방해서 만들고 나뭇잎과 꽃의 배치는 행성의 배치를 따르며 인간의 창의적 활동은 인간을 모방하지요. 이 모든 활동이 아이들의 놀이처럼 계획 없이, 목적 없이, 그저 내면의 충동에서, 단순한 기쁨에서 나오는 겁니다. 그리고 사색하는 영혼은 자신이 창조하는 대상 속에서 다시 스스로를 발견하고 깨닫지요. 그렇습니다, 뢰슬린, 모든 것이 놀이입니다. (p.271-272)



관심 없던 분야의 책들을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지식의 기쁨도 있지만, 그동안 얼마나 한쪽 편에서만 기대어 책을 읽으려고 했는지 깊이 깨닫게 된다. 세상에는 모르는 것들도 많고, 과거에 알았던들 그 기억은 서서히 멀어지고 다시 알게 되었을 때는 생전 처음 알게 된 것처럼 새로운 이야기들이 넘친다. 책이란 글이란 마르지 않는 샘처럼 끊임없이 우리를 환기시켜준다. 고로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좋다.






이런 분들께 이 책을 권합니다


근대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의 삶 이야기가 궁금한 분

갈등과 혼돈의 시기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이를 엿보고 싶은 분




*사진: UnsplashNASA Hubble Space Telesc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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