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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다희 Aug 09. 2024

누가 이곳까지 오겠어

삼청동 끝자락에 있는 과학책방 갈다에서

일일 아르바이트하러 책방에 왔다. 외부 행사 일과 책방 영업일이 겹치는 관계로 오늘만 책방 지킴이를 해달라는 지원 요청을 받고 망설임 없이 수락했다. 늘(!) 그렇듯 삼청동 끝자락에 있는 책방은 오늘도 고요하다. 점심때쯤 휴가 날을 틈타 인천에서부터 구경 왔다는 젊은 부부 손님 외에는 파리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숨이 턱 막히고 가만히만 있어도 땀샘이 만개하는 이 무더위 속에 이곳(삼청동 끝)까지 오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책방 캘린더를 보아하니 내일은 북토크 행사가 있다.

다행이다. 오늘과 다르게 내일은 책방이 북적북적하겠다.





출근했을 때, 주문한 책들이 책방에 잔뜩 쌓여있었다. 택배 언박싱을 하는 것처럼 포장을 벗기고 도착한 도서들을 하나씩 살펴보는 것은 설레는 일중 하나다. 파손된 도서인지 확인한 후에 납품서 목록과 비교해 가며 도서를 매입했다. 얼추 책 표지만 봐도 신간인지 재주문 책인지 감이 온다.


올해 초 책 입고했을 때는 신간 구별도 어려웠고 생소한 분야도 많아서 책 제목을 헷갈리기까지 했는데, 반년이라는 시간 동안 어깨너머로 눈으로 읽고 매만지면서 과학 책들과 친해졌다. 친해졌다는 표현보다 좀 더 근사한 단어를 떠올려보지만 지금의 내 수준에서 이보다 더 적확한 표현은 없는 것 같다. 과학을 좋아해요!라고 하기에는 모르는 게 많아서 과분한 것 같고, 관심이 생겼어요!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하다. 과학 책 읽기 모임에 열심히 참여도 했고 조만간 모임을 열 계획도 준비 중이니, 관심보다는 애정이 담긴 말을 쓰고 싶었다. 고심 끝에 떠올린 단어가 고작 '친해졌다'인 게 아쉽지만 이보다 명쾌하고 직관적인 표현이 있을까.


서서히 배우고 하나씩 알아가면서 모르는 게 계속 생긴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설명하려니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지식의 파편들이 머릿속에만 둥둥 떠다닌다. 살아가는데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도 종종 한다. 중고등학교 물리, 화학, 수학 시간으로 돌아간 기분도 든다. 종종 나를 괴롭히는 부정적인 감정들, 그 감정 자체에는 아무 잘못도 없다고 말하는 뇌과학자들의 친절한 설명에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 든다. 얕고 넓게 알아가는 중이지만 이 과정에서도 이해, 공감, 놀람, 배신, 허무 등등 경험하고 있다. 인간을 포함해서 세상 돌아가는 원리를 조목조목 알아가는 경험은 낯설고 반갑다.





때마침 젊은 남자분 손님, 한 분이 책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 손님은 책을 살 것 인가? 

제발 사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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