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무대 앞에서

by 다희사랑


글을 좋아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연필을 손에 쥐는 법을 배운 그 순간부터 나는 글쓰기가 좋았다. 학교 다닐 적, 선생님이 일기장을 걷어 읽어보시고는 늘 내 것을 먼저 펼치셨다. "이 아이는 마음이 글에 그대로 담긴다"고 하셨던 그 말이 오래도록 귓가에 남았다. 그 말 한마디가 나를 글쓰기의 세계로 더 깊이 끌어당겼는지도 모른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나는 글을 놓지 않았다. 전공 수업이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에도, 도서관 한켠에 혼자 앉아서도, 나는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일상의 작은 풍경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의 각도 같은 것들. 세상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마다 나는 노트를 꺼내 받아 적었다.

그러나 현실은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나를 흔들었다.

집안 형편이 기울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한숨 소리가 밤마다 얇은 벽을 넘어왔다. 나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휴학 신청서에 도장을 찍는 날, 나는 학교 정문을 나서며 뒤를 한 번 돌아봤다.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취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단순하게 들리지만, 내게 그 결심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나는 몸이 불편하다. 태어날 때부터 그랬거나, 혹은 살아오는 어느 순간부터 그랬거나, 어쨌든 내 몸은 세상이 설계한 속도와 방식을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이력서를 내밀면 상대방의 눈이 잠깐 흔들리는 것을 나는 알아챌 수 있었다. 그 눈빛에는 여러 가지가 담겨 있었다. 연민, 당혹감, 때로는 노골적인 거절. 문을 두드릴수록 마음 한쪽이 조금씩 닳아갔다.

그래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멈추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멈추는 순간 그 자리에서 굳어버릴 것 같았다. 포기라는 단어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내 몸이 허락하는 일, 그러면서도 내 마음이 살아있을 수 있는 일.

그러던 어느 날, 우연처럼 장애인 문화예술 단체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문화예술이라니. 그림을 그리거나 악기를 연주하거나 무대 위에 서는 일들이 내 현실과 얼마나 닿아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호기심이 발걸음을 이끌었다. 직접 가보기로 했다. 그냥 구경이나 해보자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처음 그곳의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공간은 생각보다 환했다. 크지 않았지만 벽에는 색깔이 가득했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여러 겹으로 섞여 있었다. 누군가는 대사를 중얼거리며 걷고 있었고, 누군가는 종이 위에 무언가를 열심히 받아 적고 있었다. 휠체어를 탄 사람도 있었고, 지팡이를 짚은 사람도 있었고, 겉으로는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가 저마다의 몸을 이끌고 이 자리에 와 있었다.

나는 그날 조용히 한켠에 앉아서 오전 열 시부터 오후 여섯 시까지의 시간을 함께 흘려보냈다.

오전에는 발성 연습이 있었다. 목소리를 모아서 내뿜는 연습, 몸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연습, 서로의 눈을 보며 짧은 대사를 주고받는 연습. 처음에는 어색했다. 내 몸이 그런 방식으로 쓰인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사는 서두르지 않았다. 각자의 속도를 존중했고, 틀려도 웃으며 다시 해보자고 했다. 그 분위기 안에서 사람들은 천천히 열렸다.

점심을 먹고 난 오후에는 즉흥 연기 시간이 있었다. 주어진 상황에 맞게 즉석에서 몸과 말을 써보는 시간이었다. 나는 직접 무대에 서지는 않고 참관만 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어딘가가 두근거렸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무대 위에서 당당하게 서 있었다. 넘어질 것 같은 균형 속에서도 그들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 눈빛이 나를 향해 무언가를 말하는 것 같았다.

*너도 할 수 있어. 여기 이런 자리가 있어.*

늦은 오후에는 글쓰기 시간이 있었다. 오늘 자신이 느낀 것을 자유롭게 써보라는 시간이었다. 그 순간, 나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감각이 손끝으로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연필을 쥐자 손이 먼저 기억했다. 일기장을 펼치던 그 어린 시절의 손이, 대학 도서관 한켠에서 세상을 받아 적던 그 손이, 다시 살아났다.

나는 그날 있었던 일들을 적었다. 환한 공간, 여러 겹의 목소리, 무대 위의 눈빛. 그리고 마지막에 이 한 줄을 덧붙였다.

*나는 오늘 처음으로, 내가 있어도 되는 자리를 본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평소와 달랐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오히려 가벼웠다. 취업에 실패할 때마다 쌓였던 무게 같은 것이 조금 걷혀 있었다. 세상이 나를 위해 만들어놓지 않은 것 같아도, 이 세상 어딘가에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한 자리가 있다는 것. 그것을 오늘 눈으로 확인했다.

나는 글을 좋아한다. 그리고 이제, 글 너머의 무대에 대해서도 조금씩 알아가고 싶어졌다. 처음으로 장애인 극단이라는 세계의 문 앞에 서서, 나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설렘을 다시 만났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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