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뇌병변장애와 함께한 엄마와 나의 특별한 시간들

by 다희사랑

새벽 7시의 준비 의식은 언제나 같았다. 엄마는 이미 일어나 내 재활 가방을 챙기고 계셨다. 물통, 수건, 갈아입을 옷, 그리고 간식까지. 마치 멀고 긴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꼼꼼하게. "오늘도 화이팅하자!" 엄마의 격려 속에 우리의 하루는 시작되었다.

뇌병변장애 중증인 내게 그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었다. 매일 아침 집 앞 정류장에서 505번 버스를 기다리며, 나는 세상과 조우하는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출근 시간의 붐비는 버스 안에서 엄마는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죄송합니다. 아이가 다리가 불편해서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꺼이 자리를 양보해주셨지만, 가끔은 못 들은 척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럴 때면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안고 서 계셨다. 후에 알게 된 엄마의 철학은 단순했다. "우리가 부탁하는 거니까, 안 해줘도 당연해."

40분간의 첫 번째 여행에서 창밖 풍경은 내게 세상을 읽는 교과서였다. 계절이 바뀌며 가로수의 색깔이 변했고, 새로운 건물들이 생겨났다. "저기 새 건물 생겼네." 엄마의 작은 발견들이 40분을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마법이었다.

환승 정류장에서의 20분은 때로 가장 시련의 시간이었다. 여름 땡볕과 겨울 매서운 바람 속에서 기다리는 시간. 어느 눈 내리는 겨울날, 버스가 30분 넘게 오지 않았을 때 편의점 아저씨의 "안에서 좀 기다리세요"라는 말은 작은 구원이었다. 그 따뜻함에 엄마는 몇 번이나 감사 인사를 드리셨고, 그 후로는 그 편의점에서 간식을 사곤 하셨다.

112번 버스는 상대적으로 평온한 공간이었다. 병원에 가시는 어르신들과 우리 같은 가족들로 이루어진 작은 공동체. 운전기사 아저씨는 우리를 기억하고 계셨다. "오늘도 재활 치료 가시는군요. 화이팅!" 그 인사에 담긴 진심이 매일 아침을 시작하는 힘이 되었다.

특별한 만남도 있었다. 손자의 재활 치료를 위해 같은 길을 다니시는 할머니. "아이들이 참 열심히 해요. 우리도 힘내야죠."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끼리 나누는 무언의 위로와 연대감. 그것은 장애를 가진 가족이 느끼는 특별한 유대감이었다.

장마철 폭우 속에서의 대모험도 잊을 수 없다. 환승 정류장에서 갑자기 쏟아진 비 앞에서 엄마는 가방으로 내 머리를 가리며, 본인은 온몸으로 비를 맞으셨다. 버스 안에서 "엄마 괜찮아?"라는 내 걱정에 "괜찮아, 엄마는 괜찮아. 우리 아가만 안 젖으면 돼"라고 웃으며 답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다.

계절의 변화와 함께 나도 조금씩 성장했다. 3년째 되던 봄, 보조기를 차고 조금씩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의 기쁨. 창밖으로 흩날리는 벚꽃을 보며 나는 처음으로 '돌봄을 받는 사람'에서 '돌봄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그것은 내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6년이라는 시간 동안 버스 노선도 바뀌고, 사람들도 바뀌었다. 505번 버스는 새 차량으로 교체되었고, 112번 버스 운전기사 아저씨는 다른 노선으로 옮기셨다. 마지막 날,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아이가 이렇게 잘 자라는 걸 보니까 저도 기뻐요"라는 아저씨의 인사는 우리 여행의 소중함을 확인해주었다.

재활원 졸업을 앞둔 날, "이제 이 길을 안 다녀도 되는구나"는 엄마의 말에는 기쁨과 아쉬움이 공존했다. 6년간 매일 다녔던 그 길, 버스 두 번을 갈아타며 함께했던 모든 순간들이 추억으로 자리잡는 순간이었다.

지금도 가끔 그 길을 지날 때면 자연스럽게 그 시절이 떠오른다. 뇌병변장애라는 현실과 마주하며 보낸 6년간의 여행에서 내가 배운 것은 단순한 재활 치료 그 이상이었다. 인내와 감사, 그리고 타인의 선의에 대한 믿음. 매일 "오늘도 무사히 도착했네"라고 하시던 엄마의 말처럼, 그 모든 여행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총 2,190일, 8,760번의 버스 승차. 그 긴 여행 끝에 나는 깨달았다. 장애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동반자라는 것을. 그리고 그 여행길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의 작은 친절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엄마와 함께한 그 길 위에서 나는 단순히 치료받는 아이가 아닌, 세상을 배워가는 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작가의 이전글장애인으로서 살아가는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