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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hl Jul 14. 2019

바야흐로 호모 라이터의 시대, 쓰기 전에 읽어야 한다

많이 쓰는 것만큼 중요한 '많이 읽기'

누군가 말했다. 지금은 호모 라이터(Homo writer)의 시대라고. 그만큼 글을 쓰는 사람이 많고, 쓴 글을 다른 이에게 공유하는 사람도 많다는 뜻이었다. 그래선지 요즘 '글을 잘 쓰는 법'이란 타이틀로 나오는 글도 많은데, 그들이 항상 하는 말이 바로 '많이 쓰라'다.


하지만 글계속 쓰는데 발전이 없어 그 나물에 그 밥 같고, 소재는 고갈돼 더 이상 쓸 말이 ? 읽은 것은 마나 되는지 살펴봐야 한다. 글쓰기 비법(?)을 소개하는 글엔 많이 쓰라는 말도 나오지만, 그와 함께 짝꿍처럼 이어지는 말이 있다. 바로 '많이 읽으라'다.  


고등학교는 과학고를 나오고, 대학교에서 컴퓨터학을 전공하며, 현재도 IT 회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뼛속부터 공대생인 것 같은 나지만,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 어쩌면 많이 읽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아직 브런치 구독자가 많은 것도 아니고, 내 이름으로 책을 것도 아니 '네가 뭘 안다고?'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이렇게 꾸준히 글을 쓰고 있고, 가끔은 정말 잘 썼다는 칭찬도 들으며, 100명이 넘는 사람이 내 글을 구독하고 있는 건 내게 큰 의미를 갖는다. 




초등학생 때까지 나는 그렇게 책을 좋아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엄마가 사주신 자연/과학 전집들은 동생과 집 만드는 놀이를 할 때 벽이나 기둥으로 활약했고, 그 벽과 기둥들을 본래의 목적인 책으로 읽을 때는 글보단 사진이나 그림을 보는데 더 열심이었다. 그러다 중학생이 을 때, 나보다 3살이 많아 고등학생이었던 언니 내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한 권을 다 읽으면 500원을 준다는 솔깃한 제안이었다. 당시 500원이면 특히나 고등학생이었던 언니에겐 꽤 큰 금액이었을 텐데... 언니는 내가 금방 포기할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언니의 예상과 달리 나는 곧 책 한 권을 다 읽고 500원을 받았다. 그때 읽은 책이 뭐였더라, 표지는 파랗고 뭔가 바다와 관련된 제목에, 고전도 아니지만 그렇게 유명한 현대소설도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책을 참 재밌게 읽었던 난 곧 독서의 재미에 빠졌고, 그만큼 언니의 돼지저금통은 홀쭉해져 갔다.


그러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됐는데, 다들 동아리나 소모임을 하나씩 하는 분위기라 나도 어딘가에 소속되어야 하는 황이었고, 그때 2순위 없는 1순위로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독서반이었다. 중학생 때도 분명 도서관이 있긴 했지만, 그곳은 소위 노는 아이들 선생님의 눈을 피해 모의 작당하는 데 쓰였고, 오래돼 너덜너덜해진 책들이 뒤죽박죽으로 책장에 꽂혀있었다.


그런데 그곳엔 내가 알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도서관이 있었다. 장르별로 나뉜 책들은 다시 가나다순으로 가지런히 정돈되어있었고, 밝은 조명과 낮은 책장들은 도서관을 더욱 아늑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엇보다도 도서관 그렇게 아늑한 곳으로 만드는 따뜻하고 밝은 사서 선생님이 계셨다. 곳에서 나는 중학생 때보다 훨씬 많은 책을 읽었고, 10권이 넘는 장편 <임꺽정>도 일독했다. 부에 치이다 보니 독서를 하는 시간이 휴식처럼 느껴졌고, 머리를 식힌다는 핑계로 자습시간에 몰래 책을 읽기도 했다.




아쉽게도 대학교에 들어가는 책을 읽는 시간이 확 줄었고, 교양과목 시험 때 마치 기억력 테스트처럼 외운걸 다 적던걸 빼면, 그다지 글많이 쓰진 않았다. 그러나 다행히 회사에 들어가니 다시 책이 눈에 들어왔고, 올해 1월 말엔 본격적으로 글쓰기 시작했다. 피터님이 이끄는 모임에 들어가 일주일에 최소 한 개 이상의 글을 쓰자-고 다짐하고, 꾸준히 글을 쓴 게 이제 5개월 정도가 됐다. 그동안 총 41개의 글을 썼으니 대충 한 달에 8, 일주일에 2개 정도의 글을 쓴 셈이다.


하지만 그동안 나는 내가 쓴 것보다 훨씬 많은 글을 읽었다. 1월은 차치하더라도 2월에 5권, 3월에 5권, 4월에 2권, 5월에 1권, 그리고 6월에 2권으로 총 15권의 책을 읽었고 각 책에 적어도 10개의 챕터가 있다고 생각하면, 내 글 150편에 달하는 글을 읽은 것이다. (사실은 더 많을 것이다. 대게 내 글은 일반 책의 한 챕터에도 못 미칠 정도로 짧으니까.) 거기다 내가 글을 쓰기 전에 읽었던 책을 더한다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쓰고, 읽으며, 활동의 범위 늘어났다. 처음엔 피터님의 1주일에 1회 글쓰기로 시작했으나, 이후 공심님의 똑독(똑똑하게 독서하기) 시작해 매달 한 권의 고전을 읽고 서로 감상을 나눈다. 그리고 회사에서 하는 '매일 기록하기'란 모임에도 들어가 일주일에 세 번 글을 쓰기로 약속했다. (다행히 아직은 벌금 2500원이 보증금에서 깎이는 일은 없었다.) 거기에 최근엔 보름님이 운영하는 매거진에도 공동 작가로 글을 쓰기로 했다.


그러다 보 매일 1편의 글을 써야 하는 지경이 됐지만 신기하게도 할 만하다. 처음엔 일주일에 한 개의 글을 쓰는 것도 힘들었는데, 이젠 거의 매일 한 편의 글을 발행할 수 있게 됐다. 모임을 하며 여러 사람의 글을 읽으니, 글을 풀어나가는 다양한 방식 배울 수 있고, 소재가 없을 땐 다른 작가가 쓴 소재로 다른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도 있다. '읽음'으로써 절로 '쓰기' 공부가 되고, 쓸거리도 생기는 것이다.


오늘 쓰는 건 충분히 했으니,
이만 읽으러 가봐야겠다.





*. 표지 사진 : https://unsplash.com/@aaronbu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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