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이 살아있다! 브리즈번 미술관 : QAG편

브리즈번에서 타우포까지 #5

by Dahl

*. 본 글은 <브리즈번에서 타우포까지> 시리즈로 연재 중입니다.

*. 이전 편


무심한 듯 시크하게 패드를 챙겨 들고 카페를 나왔다. 가만있어 보자, 어떻게 가야 되지? 구글맵으로 주소를 찍은 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미술관을 돌아다니려면 체력을 비축해둬야 했다.


누가 말했던가, 핸드폰이 있는 한 길을 찾는 것보단 길을 잃는 게 어렵다고. 나 또한 (3G가 터지는) 핸드폰 덕분에 어렵지 않게 미술관을 찾았다.



가장 먼저 다다른 곳은 바로 이 곳, QAG(퀸즐랜드 아트 갤러리, The Queensland Art Gallery) 을 열고 들어가니 두리번거리는 나를 보고, 제복을 입은 할아버지가 다가왔다. "저기에 가방을 맡기고 편히 구경해요."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보관소가 있었다. 지금은 무겁지 않도 곧 거추장스러운 짐이 될 터. 가방을 맡기고 핸드폰만 달랑 들고 구경에 나섰다. (플래시만 켜지 않으면 사진을 찍어도 된다.)



호주, 그 이전에



안으로 들어가자 예상치 못했던 작품이 날 반겼다.

안녕, 내가 바로 진짜 호주란다.

무의식 중에 호주, 영어권, 현대미술로 이어졌던 생각의 흐름이 와르르 무너졌다. 그래, 럽인 이전에 원주민이 었다. 리고 지금의 호주는 원래의 주인을 기억하고 있다.


투박하게 깎인 나무 조형물과 자연을 담은 단지가 보였다. 정교한 짜임새라던가, 복잡한 무늬 같은 건 없지만 절제된 색으로 큼직하게 그려 넣은 그림이 강렬했다.



조금 더 들어가니 입구에서 본 조형물을 닮은 회화작품 시리즈가 늘어서 있다. 한눈에 스토리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주인공은 혼자만 얼굴이 까만 남자다. 얼굴이 하얀 사람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손가락질을 받기도 하고, 웬일인지 팔을 다쳐 병원에 가기도 하고, 죄수복을 입고 감옥에 갇히기도 한다. 끝엔 여왕을 만나 악수를 나눈다.



미술 작품들 사이로 벤치가 놓여있었다. 어떤 곳엔 아예 없거나, 있어도 딱딱한 나무/플라스틱인 경우가 많은데... 꽤 푹신해 보였다. 덕분에 넓은 미술관 안을 둘러보다 잠시 쉬어갈 수도, 때론 원하는 작품 앞에 앉아 오래도록 감상할 수도 있다.


더 특별했던 건 그 옆에 놓인 스케치북과 연필. 간단히 셔터를 눌러 선명한 기록을 남길 수도 있지만, 원한다면 자신만의 선으로 하얀 종이 위에 그 순간을 담을 수 있도록 한 배려였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바라본 그 날의 작품을, 내 식대로 슥슥- 그리고 싹싹- 지우마음에 담아 갈 수 있도록.



그리고 지금


좁은 통로를 지나니 분리된 공간에 현대적인 작품들 늘어서 있었다. 호주 그 이전을 지나 지금의 호주를 말하는 듯, 훨씬 밝은 색으로 칠된 그림들이 눈에 띄었다.



다 한 추상화를 만났다.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게 되는. 장 밝은 흰 캔버스의 여백 위로 노랑과 주홍, 파랑 등의 빛깔이 밝은 느낌을 주는 그림이었다. 이제 막 어둠이 몰려오는 듯 짙은 색 물감에 쫓기는 것 보이기도 했지만, 흩뿌리듯 마무리한 작은 점들이 여전히 경쾌해 보였다.



사진처럼 선명한 그림도 있었다. 너무 생생해 인쇄된 게 아니란 걸 확인하려 한참을 더 들여다봤다. 한 남가 아이들이 고 놀 법한 토끼 튜브에 기대, 수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한없이 바라보고 있다. 마치 르키소스처럼.

제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걸까,
그 속에서 뭔가를 찾으려 하는 걸까.


<Bad dad>란 이름을 붙여놓은 게 재밌다.



다채로운 작품들을 구경하며 걷다 보니 또 다른 벤치가 나왔다. 이번엔 스케치북과 연필 대신, 까만 디지털 스크린이 있다.



뭔가 하고 들여다보니, 미술관에 있는 전시작품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갤러리가 펼쳐졌다. 한 번 더 선택하면 해당 작품 정보가 화면에 떴는데, 반투명한 검은 칸에 흰색 폰트로 쓰인 디자인이 참 모던했다. 처음 발을 들였을 때의 투박한 동그라미들과는 사뭇 다른, 단정한 네모들이었다.


그렇게 QAG엔 과거와 현재가 함께 있었다. 미술관에서의 한 걸음에 몇십 년의 역사를 지나온 듯했다.





아고, 여행기가 너무 늦어졌네요. 혹시 기다리셨다면 죄송합니다. 좀 더 분발하도록 할게요. 맛있는 거 많이 드시고, 즐거운 한가위 보내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