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러포즈 뒷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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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눈물을 쏟고 나니 다음 순서가 남아 있었다.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그가 준비한 동영상을 시청할 차례였다. 낮부터 혼자 베란다의 화분을 옮기고, 수십 개의 초를 배치하느라 분주했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아직 불을 켜지 않아 어두운 거실에서 유난히 밝은 스크린을 보고 있자니 생경했다. 바로 옆에 있는 그와 TV 화면 속의 그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메이킹 필름인 줄 알았던 영상은 '애기야'로 시작해, '사랑해'로 끝나는 편지로 마무리되었다. 화려한 조명이 감싸주지 않은 탓인지 화면 속 그의 얼굴은 딱딱하다 못해 까맸다. 직접 얼굴을 마주한 것도 아니고, 표정 없는 카메라에 대고 혼자 하는 말인데도 한 자 한 자 입을 떼는 게 힘들어 보였다.
진심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영상이 끝나고 여운이 남아 그대로 앉아있는데, 그가 다시 내 손을 잡아끌었다. 마지막 순서가 남아있었던 것이다. 나도 좋아하긴 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알록달록한 케이크가 식탁에 놓여있었다. 역시 특별한 날엔 케이크가 빠질 수 없지! 자리에 앉자 그가 케이크를 잘라 앞접시에 덜어주고 와인도 잔에 따라주었다. 턱시도를 입고 와인을 따르는 모습이 웨이터 같아 웃음이 났다. 그렇게 울다 웃으며 부른 배를 두드리는 행복한 밤이었다.
다음날 아침, 그가 준 목걸이를 다시 찬찬히 봤다. 그동안 회사-집-회사-집 하느라 시간도 없었을 텐데 언제 다 고르고 샀는지, 그동안 남몰래 고민하고 바빴을 생각을 하니 다시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비싼 브랜드의 것이라니...!
예전에 지나가는 말로, 반지는 있으니(이미 결혼반지도 맞춘 상태였다) 목걸이나 사달라고 한 적이 있다. 막연히 몇 십만 원 정도면 살만할 목걸이를 생각했다. 씻을 때나 잘 때도 굳이 빼지 않고 계속 차고 다녀도 될 정도로, 관리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만한.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적어도 18K 금이어야 할 것. 금속 알레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준 건 내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0이 하나 더 붙어있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디자인이 조금 올드해 보인다는 것. 목걸이라면 하트나 별, 아니면 그냥 동그란 펜던트가 달린 심플한 디자인을 생각했는데, 그의 선택은 피라미드를 연상시키는 삼각 펜던트였다. 찾아보니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배우 김희애가 착용한 귀걸이와 같은 라인의 것이었다. 극 중 김희애는 40대였는데, 역시 대상 연령층은 좀 높은 게 아닐까.
그래도 그가 고심해서 골랐을 생각에 잘 매치해 보기로 했다. 티셔츠에 청바지, 혹은 블랙 앤 화이트로 심플하게 입을 때 슬쩍 걸어주니 너무 튀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포인트가 돼 퍽 어울렸다. 거울에 비춰보니 그 많은 0이 괜히 붙은 건 아닌지, 펜던트뿐 아니라 체인도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게 뭔가 색다른 공법으로 가공을 한 것 같았다.
결혼식 일주일 전, 또 다른 청첩장 모임을 위해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랜 친구들이라 편한 게 입고 나갈 생각이었지만, 종종 프러포즈는 받았냐고 묻던 게 생각나 무심한 듯 목걸이를 걸치고 갈 작정이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드레스룸 서랍장 위에 올려둔 상자를 여는데... 없었다!
목걸이가 없었다!
다른 데 뒀나? 싶어 기존에 쓰던 보석함도 열어보고, 자주 쓰는 가방, 겉옷 주머니까지 다 찾아봤다. 하지만 없었다. 그러는 사이 약속 시간이 다가왔고, 어쩔 수 없이 그냥 나가는 길에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아, 드레스 셀렉! 며칠 전 본식 드레스를 고르러 샵에 갔는데, 그때 목걸이를 차고 가서 귀걸이와 함께 빼 그에게 맡겼던 게 기억났다.
그에게 얼른 카톡을 보내 이따 집에 오면 바지 주머니 좀 찾아보라고 일렀다. 목걸이가 없어졌는데 그때인 것 같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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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Photo by Atul Vinayak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