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나 #5 - 고양이와 베란다
재택근무를 시작한 지 어느덧 다섯 달이 다 되어간다. 2월 말에 시작한 재택근무는 신천지발, 이태원 클럽발, 쿠팡 물류센터발 연속적인 집단 감염에 의해 끝날 듯 끝나지 않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어딜 가든 마스크를 껴야 하는 일상이, 아는 사람과도 거리를 둬야 하는 현실이 답답하다.
다행히 회사에서 재택근무를 결정하며 생긴 좋은 점도 있다. 집에서 마스크를 끼지 않은 채 일할 수 있고, 출퇴근 시간 꽉 막힌 도로에서 잔 브레이크를 밟을 일이 없다. 가장 좋은 점은 아이들과 하루 종일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거다.
통근 시간을 고려해 일찍 일어날 필요도, 칭얼대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바로 씻으러 갈 필요도 없다. 무엇보다 더 이상 아침마다 했던 아이들과의 가슴 아픈 이별을 하지 않아도 된다.
평소와 같이 아침 10시에 업무를 시작하기 위해 해야 하는 건 딱 하나다. 바로 10시 전에 일어나기. 물론 10시 이후에 일어나는 것도 문제는 없다. 재택근무 중에도 자율 출퇴근제는 유효하니까.
단, 눈을 채 뜨기도 전에 안방으로 총총-걸어와 침대맡에 자리를 잡는 아이들을 위해 먼저 미리 삶아둔 닭가슴살을 꺼내 잘게 찢어 데워줘야 한다. 득달같이 달려오는 재이와 달리 닭가슴살엔 영 관심이 없는 와니를 위해 코 앞에 그릇을 갖다 두고 잘 먹는지 확인하는 것도 필수다.
적당히 먹을 즈음 사료 그릇까지 채워주면 출근 준비 끝! 시간이 남으면 집사의 아침도 챙긴다. 냉장고에서 사과즙과 요거트를 꺼내와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켠다. 업무 시작이다.
메일함과 메신저를 확인하고 급한 일들을 먼저 처리한다. 간밤에도 많은 사람이 말을 걸어왔구나. 한숨 돌리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싸-한 느낌에 주위를 둘러보면 어느새 그릇을 깔끔하게 비우고 앉아 나를 쳐다보고 있는 아이들이 보인다. '오구구, 미안~' 미쳐 아이들을 쓰다듬어주지 못한 걸 깨닫고 머리며 엉덩이며 각자 원하는 부위를 잔뜩 만져준 후 베란다 문을 연다.
날이 제법 따뜻해져 베란다 문을 열어놔도 거실에 앉아 일을 할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침저녁엔 꽤 쌀쌀해, 환기나 시킬까-하고 문을 살짝 열었다가도 곧 다시 닫아야만 했다. 아이들은 아랑곳 않고 문이 열리자마자 슝- 튀어나가곤 했지만.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으면, 어느새 아이들은 밖으로 나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창 너머 바깥 풍경을 바라보기도 하고, 햇살이 자리한 바닥에 누워 뒹굴기도 한다. 거실과 베란다 사이의 커튼에 비친 서로의 실루엣을 보고 때아닌 추격전을 벌이기도 한다. 마치 보모와 같달까. 베란다는 업무를 봐야 하는 나 대신 팔색조 같은 매력으로 아이들을 사로잡는다.
얼마 전엔 나도 베란다를 즐길 요량으로 빈백을 하나 샀다. 점심시간에 얼른 밥을 먹고 그 위에 누워있으면 아이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재이는 옆구리에, 와니는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고, 나는 커피를 마시거나 책을 읽으며 휴식을 취한다. 따스한 햇살이 창으로 들어와 온 몸을 감싸고, 아이들은 딱 붙어 새근새근- 달달한 숨을 뱉는다.
여기가 바로 천국이다!
평일 낮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인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