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나 #4
얼마 전 어느 유튜브에서 고양이를 부르는 마법진을 보게 되었다. 짐살라빔빔- 소환술이 절로 나올 것 같은 그림이 그려진 매트였다. 하지만 마법진은 디자인일 뿐, 뭐든 바닥에 깔아만 두면 그 위에 앉는 고양이의 습성을 이용한 제품인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유행했던 테이프가 생각났다. 바닥에 테이프로 사각형이든, 동그라미든 적당한 도형을 그려놓으면 고양이가 그 안으로 쏙 들어간다는. 주말이라 시간도 많겠다, 얼마 전 사은품으로 받은 형광색 마스킹 테이프를 꺼내 바로 시도해봤다.
그리고 보기 좋게 실패했다. 모양이 문제였을까, 크기가 문제였을까? 그도 아니면 테이프의 색깔이 문제였을까?(너무 형광이었나?) 곧 애초에 테이프가 필요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겐 아빠 다리,
아니 엄마 다리가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였을까. 평소처럼 소파에 아빠 다리를 하고 앉아있던 어느 날. (나는 입식 의자에 앉을 때도 종종 책상다리, 일명 아빠 다리를 하고 앉아있길 좋아한다.) 와니가 옆으로 올라와 나를 지긋이 쳐다봤다. 어쩐지 그게 자리를 내어달란 뜻인 것 같아 양발을 앞으로 밀어 마름모를 만들었고, 와니가 그 안으로 쏙 들어왔다. 이리저리 작은 몸을 돌리며 자리를 잡더니,
곧 내 발목을 배고 잠이 들었다.
이후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으면 으레 와니가 올라올 준비를 했고, 그럼 나도 자연스레 다리를 움직여 그를 맞이했다. 나중엔 깊이 잠든 와니를 깨우지 못하다 다리가 저려 도저히 못 참을 즈음에야 살살 몸을 움직여 빠져나오곤 했다. 엉덩이가 뻐근-하고 가끔은 골반에서 우두둑 소리가 나긴 하지만 그쯤이야. 내 품에서 천사처럼 잠들어있는 와니를 보고 있자면 절로 힐링이 되니 놓칠 수 없는 일상이다.
하지만 재이는 예외였다. 와니가 워낙 애교가 많기도 하지만, 그에 비하면 살짝 시크한 재이는 다리품에 들어오질 않았다. 바닥을 통통-치며 들어와 보라고 해도 그저 날 바라만 볼뿐, 좀 있다 다시 고개를 획 돌리고 가기 일쑤였다.
그런데...!
세월이 흐른 탓일까, 집이 조금 넓어진 탓일까?(집 따라 소파도 커졌다.) 이사하고 얼마 안 있어 다시 마름모를 만들어놓고는, 소파 주변을 서성대는 재이에게 '들어와~'라며 손짓을 했다. 그랬더니 재이가 정말 들어와 앉는 거다! 사실 옆에 남편이 있어 실패하면 좀 창피하겠다-생각하고 있었는데 스스로도 놀랐던 순간이다.
처음이 힘들지 두 번째부턴 쉽다고, 그 후론 재이도 곧잘 내 다리품으로 들어온다. 심지어 와니와 달리 배는 허용하지 않던 그녀가 이제는 배를 만져도 달아나지 않고 조금 뒤척이다 다시 잠을 청한다. 신기해서 양치질을 시도해보기도 했다. 한참 자다 살짝 깨 비몽사몽 할 때 해봤더니, 고양이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양치질을 시킨 후에도 다시 자리를 잡고 자는 거다! 정말 신기했다.
내 다리가 그 자체로 마약 방석이었다니!
다만 안 좋은 점은 재이가 이미 엄마 다리를 차지하고 있다 보니, 이젠 와니가 잘 오질 않는다는 거다. 아이들에게 어떤 사이클이 있는 건지 요즘은 오히려 재이가 자주 와 앉을 틈을 찾고, 와니는 홀연히 소파 가장자리로 가 자리를 잡는다.
다행히 가끔은 재이가 자리를 잡고 누웠는데, 그 옆으로 와니도 와서 제 자리도 달라고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경우가 있다. 그때 다리를 좀 더 벌려 자리를 만들어주면 둘이 나란히 누워 자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사진을 오십 장쯤 찍어줘야 하는 날이다.
품 안의 고양이는 두 배가 되지만 힐링은 그 배로 네 배가 되는 귀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