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와디즈 메이커 데뷔기
지난여름, 언니와 함께 생애 첫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를 오픈해 간신히 성공했었다. 다행히 그 뒤론 각종 독립서점과 마켓에도 입점해 다양한 사람들의 손을 타고 널리 퍼지고 있으니, 길게 보면 '간신히'가 '꽤'로 바뀌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얼마 뒤 우연히 보게 된 <디자인&굿즈 기획전>을 통해 다시 크라우드 펀딩에 도전하게 되었다. 첫 번째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엔 둘이 아닌 혼자였고, 플랫폼이 텀블벅에서 와디즈로 바뀐 정도였다. 굿즈 제작은 이전에도 해봤던 터라 크게 힘들지 않을 것 같았고, 두 번째라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산이었다.
이제와 하는 얘기지만 첫 크라우드 펀딩을 준비하며 언니와 많이도 싸웠다. 이미 찍어둔 사진을 추려 엽서북을 만들고, 그중 쓸만한 오브제를 그려 스티커와 마스킹 테이프를 만드는 것뿐이었는데도 말이다. 거의 다 한 것 같은데 할 일은 여전히 남아있었고, 덕분에 네가 하니 내가 하니 말이 많았다.
이번엔 역할 분담을 놓고 왈가왈부할 일은 없었지만, 둘이 나눠하던 일을 혼자 하려니 당연히 공이 두 배로 들었다. 드로잉, 디자인, 샘플 제작은 물론이고 펀딩 페이지 작성에 리워드 설계, 각종 계약까지 혼자 하려니 퇴근 후에도 그대-로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날이 계속됐다. 마침 남편의 야근도 잦아져 우리의 취침 시간은 11시 반에서 12시 반, 그리고 1시로 점점 늦어졌다.
혼자 머리를 싸매고 있는 와중에도 속속 올라오는 팀 프로젝트들을 보니 마냥 부러웠다. 급한 대로 잠깐 쉬러 나온 남편을 불러 이건 어때? 저건 어때? 의견을 구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데 하물며 펀딩 준비야, 맞들면 아주 낫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이름만 다른 거 아니냐고. 하지만 둘 사이엔 그보다 큰 차이점이 있다. 일단 주력 분야가 다르다. 와디즈는 테크/가전 분야의 신제품이 많고, 텀블벅은 독립 출판, 공예품 등의 문화 상품이 많다. 서로 사용하는 용어도 다르다. 프로젝트를 만든 사람을 와디즈에서는 '메이커'라고 하고, 텀블벅에서는 '창작자'라고 한다. 추가로 지원을 할 때도 텀블벅은 '밀어주기'라고 하는 반면 와디즈는 '후원금 더하기'라고 해, 펀딩 페이지에서 '밀어주기'란 단어를 삭제해 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그 외에도 펀딩 준비를 하며 알게 된 두 가지 다른 점이 있다. 먼저 그림으로 만든 로고를 게재하고 '표고송이'라는 브랜드 이름을 사용할 수 있었던 텀블벅과는 달리 와디즈는 실명을 공개하고 얼굴이 나온 사진을 업로드해야 한다. 처음엔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펀딩을 미리 받는 입장에서 신뢰를 주기 위한 조치이기에 곧 납득이 갔다.
또 하나 인상적인 부분은 스토리 작성과 프로젝트 오픈에 담당자가 따로 배정된다는 것이다. 프로젝트 내용을 작성한 후 제출을 하면 배정된 담당자가 수정해야 할 부분을 체크해주고, 이를 보완해서 제출하면 승인이 된다. 스토리 작성과 리워드 설계가 끝나도 '요건 확인'이 완료된 것이지 이때 바로 프로젝트를 오픈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픈을 위한 점검을 하는 담당자가 다시 배정되고, 이후 '최종' 승인이 나면 드디어 프로젝트를 선보일 수 있게 된다.
새로운 플랫폼에서 혼자 준비를 한 것 외에 이번에 더 힘들었던 이유가 또 하나 있다. 바로 펀딩 제품이 MBTI 유형을 기반으로 한 캐릭터 굿즈이기 때문이다. 16가지나 되는 캐릭터를 탄생시키는 것도 창작의 고통이 따랐지만, 후에 제품화를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워낙 체크해야 할 그림이 많다 보니 뒤늦게 똑같은 MBTI 유형의 캐릭터가 두 개이고, 하나는 누락됐다는 걸 알게 되어 부랴부랴 다시 그렸다. 샘플을 만들 때는 분명 16개를 다 주문한 것 같았는데 한 개가 누락돼, 울며 겨자 먹기로 한 개만 추가 주문하느라 배송비가 배로 들기도 했다.
스토리를 작성할 땐 캐릭터와 그에 따른 MBTI 유형을 쉽게 인지할 수 있도록 매 그림마다 해당 유형을 일일이 적었는데, 알파벳을 하나만 다르게 적어도 단순 오타가 아니라 INTJ와 INFJ처럼 완전히 다른 유형이 되어버리는 특성상 더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게 되는 검수도 필수였다.
정말 눈알이 빠질 뻔 했...
그렇게 이미 해본 거란 생각에 자신만만하게 도전해 큰 코 다친 2개월의 중장정이 끝나고 드디어 프로젝트를 오픈했다.
메인에 걸린 사진을 보니 또 제품 사진을 찍느라 혼자 왼손엔 조명, 오른손엔 카메라를 들고 고군분투했던 기억이 떠올라 눈물이 앞을 가리... 지만 자식 같은 결과물이 세상에 나온 걸 보니 뿌듯하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또 엄청나게 어렵진 않았단 생각이 든다. (근데 펀딩은 이제 시작이고, 다 되면 제작하고 포장해서 배송도 해야 되는데?) 두 번째는 호락호락하지 않았지만 세 번째는... 괜찮지 않을까?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