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3박 4일 발리 여행기
엄마와의 여행 마지막 날, 발리에서의 시간이 24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마지막 날 여정은 더욱 여유로웠다. 5시간도 못 자고 래프팅을 타러 갔던 첫째 날의 기억은 아스라이 멀어졌고, 우리는 아침을 느긋하게 먹고 산책에 나섰다. 호텔 수영장에서 조금만 더 걸으면 해변이 나오는데, 실망스러웠던 빠당빠당 비치보다 훨씬 넓고 한적해서 엄마와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기에 좋았다. 날이 조금 더 따뜻했더라면 여기에 자리를 잡고 물놀이를 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침엔 제법 쌀쌀했던 터라 그저 해변가를 따라 걸었다. 한 손엔 고프로를 들고 열심히 엄마의 뒤를 쫓으며 엄마를, 때론 우리를 번갈아 영상에 담으니 그 또한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해변을 따라 정처 없이 걷다 보니 연달아 나타나던 호텔들 너머로 공원이 나타났다. 엄마는 좋아하는 꽃들을 발견하곤 또 연신 코를 대고 냄새를 맡으며 이름이 뭘까 궁금해하고 유심히 그 아름다운 모양을 살폈다. 한국의 꽃들과 비슷한 것도 있었지만, 독특한 모양의 꽃도 많아 나도 신기해하며 연신 핸드폰을 들었다.
그랜드 하얏트 발리
역시나 엄마는 어제의 워터 슬라이드를 또 타고 싶어 했고, 주변을 한 바퀴 다 돈 우리는 다시 호텔 수영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아뿔싸, 분명히 브로셔에서 봤는데... 오늘부터 워터 슬라이드가 정비에 들어간다는 걸 분명히 읽었는데... 그걸 잊어버리고 있었다. 엄마는 그럴 줄 알았으면 어제 더 많이 탔을 거라며 아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우리는 물놀이용으로 옷도 다 갖춰 입고 나온 터였기에 그냥 물에서 좀 놀다 가기로 했다.
엄마의 포토타임도 빠질 수 없었다. 다채로운 포즈를 취하며 활짝 웃는 엄마의 모습은 마치 10대 소녀 같았고, 직접 꽃잎을 모아 사진을 연출하는 모습에선 엄청난 열정과 감각도 엿볼 수 있었다.
풀 바(pool bar)에서 알코올이 살짝 들어간 망고 주스(?)도 하나 시켜, 썬베드에 누워 엄마 한 입 나 한 입 나눠 마셨다. 엄마는 주스가 20달러라는 말에 깜짝 놀랐지만, 나는 평소에도 밥보다 비싼 음료수를 자주 마셨던 게 떠올라 마음이 살짝 무거워졌다.
그렇게 미니 호캉스를 즐기고 다시 숙소에 들어가서는 여기저기 널어놨던 짐을 다시 캐리어에 꾹꾹 눌러 담아 가지고 나왔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에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도 호텔 이곳저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마치 자연 속에 있는 듯 울창한 푸른 잎과 회색인 듯 상아 색인 듯 나무 사이사이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조각상들이 자꾸 무거운 발길을 멈추게 했다.
몽키 포레스트
마지막 날의 일정은 몽키 포레스트와 우붓 재래시장 방문, 그리고 발리 전통 마사지 체험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일정 내내 익숙하게 먹었던 뷔페식 식사를 마치고, 먼저 몽키 포레스트로 이동했다.
동물을 워낙 좋아하기에 가장 기대되는 코스 중 하나였다. 울창하게 드리운 열대나무들 때문인지 흐릿한 날씨 때문인지 다소 습하고 어두운 분위기였지만, 갇힌 동물원이 아닌 자연 숲 속의 원숭이들을 만날 수 있단 생각에 가슴이 설렜다.
이모티콘을 닮은 익살스러운 원숭이 조형물들을 지나 좀 걸었더니 정말 원숭이들이 많이 보였다. 대부분 삼삼오오 모여있었는데, 특히나 원숭이들이 엄마에게 관심을 많이 보여서 신기했다. 어느 원숭이는 엄마 발 위에 앉아버리기도 하고, 어느 원숭이는 엄마의 가방에 매달리기도 하고, 심지어 어떤 녀석은... 엄마의 가슴을 만지기도 했다! 엄만 줄 알았나? 잠시 당황했지만 그 상황 자체가 너무 웃겨서 곧 엄마랑 신나게 웃어버렸다.
계속 길을 따라 걷는데 따로 떨어져 나온 아기 원숭이가 눈에 들어왔다. 급식소인지 한편에 마련된 넓은 공간에 먹을 것들이 있어 여러 원숭이들이 한데 모여 밥을 먹고 있었는데, 그 옆에 조그마한 원숭이가 무리와 떨어져 혼자 앉아있는 모습이 왠지 불안해 보였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아이와 갓난아기까지 원숭이 가족이 한데 모여 앉은 모습은 사람과 똑 닮아 신기하면서도 참 따뜻했다. 원숭이들은 따로 또 같이, 먹거나 장난을 치거나 하면서 모두 제각각의 모습으로 숲 속의 삶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를 의식하지 않거나 때로는 먼저 장난을 치는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우붓 재래시장
곧 비가 오는 바람에 잠시 매표소에서 비가 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우붓 재래시장으로 향했다. 여행을 오기 전부터 '발리에서 사야 할 것들' 리스트에 적어놨던 것들을 실제로 보고 사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여행지에 가면 무조건 깎아라! 반 이상은 깎아야 손해를 안 본다! 는 말이 떠올라 일단 계속 흥정을 했다. 그러나 우산을 들고 좁은 골목길을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다 그게 그것인 것 같고 금세 진이 빠져버렸다.
결정적으로 한국에 돌아가서도 이걸 잘 쓸 수 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답은 '아니올시다'였고, 결국 빈손으로 시장을 나와 저녁을 먹으러 갔다.
마지막 저녁 메뉴는 삼겹살이었다. 발리에서 삼겹살 무한 리필 식당에 가게 될 줄이야! 단체여행의 주 고객이 어르신들이기도 하고, 여럿의 입맛에 맞춰야 하다 보니 이번 여행에선 한식을 참 많이도 먹었다. 타지에서 먹는 삼겹살의 맛은 한국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부추전도 열심히 집어먹으며 배를 든든히 채울 수 있었다.
발리 덴파사르 웅우라 라이 국제공항
그리고 매우 실망스러운 마사지를 받고(마사지에 관한 이야기는 따로 적으려고 한다) 공항으로 향했다.
우붓 시장에서 아무것도 사지 못한 우리는 생각보다 크고 깔끔한 덴파사르 공항 면세점에서 열심히 발품을 팔아, 온 가족을 위한 선물을 하나씩 구입했다. 그런데 계산을 하려고 보니 카드가 안된단다. 그래서 달러를 내려니 거스름돈은 루피아로만 줄 수 있단다. 원래 그렇다고 하거니와 달리 선택의 여지도 없었던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달러를 주고, 단위가 무지하게 큰 인도네시아 루피아를 받게 되었다.
그렇게 수많은 사진과 영상 그리고 37만 5천 루피아를 남기며 우리의 여행은 끝이 났다. 사지 못한 라탄 백과 나무 도마, 그리고 좋기보단 찝찝했던 전통 마사지가 떠올라 마무리가 아쉽기도 하지만, 이렇게 글을 쓰며 사진과 영상을 다시 보니 쨍하니 맑았던 날씨와 여유로웠던 나날들, 그리고 해맑았던 엄마의 미소 등 좋았던 일들이 훨씬 많았다.
엄마, 또 여행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