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해선 나를 막을 수 없다

브리즈번에서 타우포까지 #0

by Dahl

지난 여름, 3년 다닌 첫 직장을 그만두고 이직을 하게 됐다. 새 회사에 출근하기까지 약 3주 정도의 시간이 생겼고, 묻고 따질 것도 없이 여행을 가기로 했다.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부터, 이직을 하며 생길 긴 휴일 동안의 여행은 로망이자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다.


대체 가능한 작은 톱니바퀴에 불과한 직장인이라는데, 휴가를 내는 건 왜 이리 어려운지. 이 흔치 않은 기회를 활용하기 위해, 다시 출퇴근을 하게 되면 가기 힘들 먼 곳에 가기로 했다.


당시엔 여행 계획을 짜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돌아다니는 관광여행에 살짝 지쳐있었다. 그래서 요즘 유행하는 '한달살이'처럼 잠시나마 원래 그곳에 사는 사람인 듯, 이국땅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일본, 중국, 캄보디아, 베트남, 대만, 태국, 싱가포르 그리고 네팔까지 여러 나라를 여행했지만, 모두 아시아 국가였기에 이번엔 다른 대륙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아시아를 제외한 오대주의 그 많은 나라들 중 한 나라를 택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잊고 지냈던 이름이 떠올랐다.

그래! 훈이 오빠가 호주에 살잖아!


몇 년 전 호주로 건너가 브리즈번에 정착한 친척오빠였다. 브리즈번에 가면 오빠 집에 머물며, 오세아니아라는 처음 가보는 대륙에서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가 아닌 일반 집에 머물며 현지인처럼 살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여행지는 정해졌고, 비행기 티켓만 끊고 별다른 계획은 하지 않은 채 퇴사일이, 그리고 출발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버지는 말하셨지, 내가 좀 덜렁거린다고

디데이가 되었다. 장장 17일의 긴 여정이었기에 캐리어 하나로는 부족했다. 남자 친구에게 내 몸통보다 큰 가방을 빌려, 등에 메고 손에 끌며 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 날, 유례없던 바보짓을 하게 된다.


마침 인천공항에선 전통행사가 있었다.


혼자 하는 여행이었지만 기죽지 않고, 핸드폰과 고프로로 셀카와 동영상을 찍으며 신나게 돌아다녔다. 그리고 이 날을 위해 준비한 pp카드를 내밀어 라운지에서 느긋하게 만찬을 즐겼다. 호주에 가면 한동안 좋아하는 떡볶이를 못 먹겠단 생각에, 떡볶이가 있다는 라운지를 굳이 찾아가서 말이다.


좋아하는 음식을 잔뜩 퍼놓고 마냥 신났던 때


그런데 너무 신나게 사진을 찍어대서인지 핸드폰 배터리가 몇 프로 남지 않은 상태였고, 나는 라운지 내에 콘센트가 모여있는 곳으로 갔다. 제각기 다른 각국의 콘센트 모양이 눈에 띄었다. '아, 역시 공항이라 그렇구나'라고 생각하며 자연스레 220v짜리 콘센트를 찾는데... 아뿔싸.


통신사 부스에서 멀티 어댑터를 빌려왔어야 했는데 그걸 깜박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어 입국 심사 전 아무 데도 들리지 않았다는 걸 기억해냈다.

미리 환전 신청해놓은 호주 달러도 찾아오지 않은 것이다!


촌스럽 처음으로 공항 라운지에 갈 생각에 너무 흥분했다. 오로지 라운지에 갈 생각으로 어댑터도, 돈도 없이 출국심사대로 내달렸던 걸 생각하니, 부끄러움과 당혹스러움이 앞다퉈 밀려들었다.


그래도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해서 은행에 전화를 해보았으나, 이미 출국심사대를 통과한 후엔 방법이 없다고 했다. 열심히 달려 면세구역 안에 있는 은행도 찾아갔으나, 현금만 환전이 가능하단다. 원래도 평소에 현금을 잘 안 가지고 다니거니와, 호주에선 한화가 필요 없을 테니 꼭 필요한 카드와 소량의 현금만 챙겨 나온 길이었다.


어댑터는 사면되니 그렇다 치고, 호주 돈은 1달러도 없이 브리즈번에 가게 되다니! 뒤늦게 스스로를 탓해봤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고, 미리 신청한 돈은 다시 한국에 돌아올 때 호주 달러에서 한국 원화로 재 환전을 해 찾는 수밖에 없었다.


아빠가 항상 말했지만 나는 항상 부정했던 말. 내가 좀 덜렁거리는 면이 있다는 그 말을, 이젠 스스로도 부정할 수 없게 한 역대급 덜렁 거림이었다. 하지 아빠한텐 비밀다. ;)


그래도, 간다!

2미터짜리 셔츠의 첫 단추를 잘 못 끼운 듯 뭔가 찜찜한 기분이었지만 구름까지 올라갔던 기분은 내려올 듯 결국 내려오지 않았다. 무제한 pp카드가 아까워 라운지를 하나 더 들른 나는 여전히 흥분된 걸음으로 비행기를 타러 가고 있었다.


첫 직장에서의 42개월, 누군가에겐 참 편해 보였을지 모르나 나에겐 크고 작은 탈이 많았던, 녹록지 않은 시간이었다. 처음이었던 탓에 모든 게 새롭고 낯설어 실수도 많았지만, 그렇게 많이 겪고 배우며 성장했다. 그리고 이제 그 첫 막을 내리고, 2막을 올리기 전 인터미션에 와 있었다.

Why not? 나는 당분간 지겹던 회사에 출근도장을 찍지 않아도 되고, 컨디션은 최상이었으며, 해외에서도 사용 가능한 카드가 여러 장 있었다. 그리고 호주에 가면 나를 두 팔 벌려 환영해줄 이도 있었다. 기분이 좋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웬만해선 떠나는 나를 막을 수 없다.





*. 다음 편



*. 표지 사진 : Photo by Jared Subia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