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이 바람 될 때'를 읽고...
얼마 전 사내 도서관을 둘러보다 이 책을 찾았다. 예전에 어디선가 소개를 듣고는 언젠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책. 폐암으로 서른여섯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젊은 의사, 폴 칼라니티의 자서전 '숨결이 바람 될 때'(원제: When breath becomes air)였다. 주기적으로 병원을 가야 하고 그 검사 결과에 때로는 웃고, 때로는 울게 되는 병을 앓고 있기에, 그의 이야기가 더 궁금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곤 그걸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일부러 시간을 내서 도서관에 들르길 잘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세상에 남긴 것이 있다. 하나는 바로 내가 읽은 그의 책이고, 나머지 하나는 바로 그의 딸, 릴리이다.
그는 의사로서 다른 이들의 삶을 지켜주기 위해 노력했고, 때로는 그들의 죽음을 지켜봤다. 그리고 나중엔 본인이 환자가 되어, 폐암이라는 병으로 죽음을 눈 앞에 두게 되었다. 그는 그 두 가지의 시선으로 죽음의 양면을 바라보게 되었고, 이를 글로 써서 우리가 죽음을, 그리고 삶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했다.
그는 사람들이 죽음을 이해하고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 했다.
(에필로그 중)
삶에는 죽음이 예정되어있으며, 죽음은 특별한 게 아니라는 것.
아마도 그가 말하고 싶었던 건 이런 게 아니었을까.
그는 그런 그의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듯, 예정된 죽음을 마주하고도 그대로의 삶을 살았다. 암이 완치되지 않았지만 꿈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의사로서 수술대에 오르고 결국 인턴을 마쳤다. 수술을 하기 전엔 고통을 참기 위해 꼭 약을 먹어야 하고, 수술이 끝나면 쓰러지듯 잠에 들 정도였지만 그는 그런 고된 생활을 꾹 참고 버텼다.
그리고 병이 다시 악화되었을 때, 그는 그간의 삶을 정리하는 대신 새로운 생명을 만든다. 자신은 곧 떠나야 하니 남은 이들을 위한 것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죽음을, 삶을 끝내는 무언가가 아닌 애초에 삶에 포함되어 있던 것으로 생각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원래 예정되어있던 죽음이기에, 그 죽음이 다가오기 전까진 원래의 삶을 사는 것. 그게 더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몇몇 환자들에 대한 글도 남겼는데, 그중 정말 가슴 아팠던 내용이 있다. 하나는 수술 중 시상하부에 1mm의 손상이 생겨 먹는 걸 멈추지 못하고, 폭력적인 발작을 일으키게 된 소년의 이야기였다. 고작 1mm 때문에... 수술을 받기 전의 사랑스러웠던 여덟 살짜리 매튜와 140킬로그램이 된 열두 살의 매튜 중 누가 진짜 매튜라고 할 수 있을까.
또 하나는 뇌를 다쳐 오직 숫자만 말할 수 있는 환자 이야기였다. 폴은 인턴 초년생일 때 그 환자를 우연히 마주하게 되는데, 그에게 절실하게 뭔가를 말하지만 환자가 내뱉는 말은 숫자뿐이었던 상황을 이야기한다. 너무 힘들다고, 도와달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저 '일', '이'라고 밖에 말하지 못한다면... 아, 상상만으로도 너무 답답하고 슬프다. 한편으론 그런 환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아직은 아프지 않은 뇌로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했다.
폴이 미처 다 완성하지 못하고 떠났기에 이 책은 미완성처럼 보이지만, 어찌 보면 그 사실로 인해 책은 완전히 다 이뤄진 것처럼 보인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예정되어 있다는 것, 죽음은 삶을 미완성시키는 게 아니라 그 자체가 원래 삶에 속해있던 것이라는 걸 더욱 절실히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