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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hl Jun 01. 2019

BMW를 타는 사람의 냄새와 벤츠를 타는 사람의 냄새

영화 <기생충>을 보고

*. 본 컨텐츠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며칠 전부터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황금종려상 후보로 올랐단 기사들이 앞다퉈 여러 포탈의 메인을 장식했고, 얼마 안 있어 페넬로페 크루즈 주연의 영화 <페인 앤 글로리>를 제치고 수상을 했단 소식이 들려왔다.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칸 영화제 최고의 상이었으나 그다지 떠들썩한 수상은 아니었다. 혹자의 말대로 동시대에 모국어로 황금종려상 수상작을 즐길 수 있는 프리미엄을 놓칠 수 없어 얼른 예매를 눌렀으나, 주말 낮 시간대의 예매는 어벤저스 때보다 훨씬 쉬웠다.


그리고 오늘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자리에 앉아 그 프리미엄을 즐기고 왔다. 왜 기우가 사수까지 하며 수능에 매달리는지, 한 집의 가장인 기택을 무너지게 한 그놈의 치킨집이 뭔지, 별도의 해석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도 가까운, 그 현실적인 설정에 자꾸만 고개가 끄덕여졌다.




비 - 누군가에겐 놀이, 누군가에겐 재앙  

박사장네 딸 다혜의 영어과외 선생님으로 기우가 들락날락한 이후, 차례로 여동생 기정은 다송의 미술 선생님, 아빠 기택은 운전기사, 엄마 충숙은 가사도우미로 (서로가 가족인 것은 숨긴 채로) 그 집에 취직을 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다송의 생일을 맞아 박사장네 가족은 1박 2일로 캠핑을 가게 되는데, 이때 다송의 엄마 연교는 충숙에게 '비가 오면 더 좋아하거든요'라며, 다송의 우비를 챙겨달라고 한다. 후에 충숙이 말한 것처럼 돈이라는 다리미로 편 듯 구김살 없이 자란 부잣집 아들 다송에게, 비는 그저 뻔한 풍경을 새롭게 만들어주는 소품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사이, 기택네 가족은 그 집에서 술과 음식을 잔뜩 꺼내 먹고 마시며, 그 집의 주인이 된 양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비가 너무 많이 내린 탓에 박사장네가 급히 집에 돌아오게 되고, 기택네 가족은 모두 잠든 저녁이 되어서야 그 집에서 몰래 빠져나온다.


하지만 겨우 도착한 반지하 집엔 이미 비가 들어와 넘실거리고 있고, 얼마 없는 살림살이들은 물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 와중에 물건들을 챙기던 기정은 오물을 내뿜는 변기를 마주하곤 결국 포기해버린다. 그리곤 변기 위에 앉아 천장에 숨겨둔 담배를 꺼내 입에 문다. 이제 물은 기택의 턱 끝까지 올라와 있었다.


그들에게 비는 캠핑의 분위기를 더해주는 서프라이즈 선물이 아니었다. 몸뚱이만 간신히 건져 나와 계획에도 없던 체육관에서의 단체 취침을 하게 한 천재지변이었으며,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데 대한 변명을 가능케 한 무계획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기생충들 - 기생충 아래 기생충

문제의 그 캠핑 날, 기택네 가족은 또 다른 기생충을 만난다. 박사장네가 없을 때 때맞춰 방문한 전 가사도우미  문광은 비를 홀딱 맞은 채로 지하실에 놓고 간 물건이 있다며 문을 열어 달라고 한다. 공포영화에 자주 등장해 이후의 전개를 예상케 하는 이 장면에서 난 속으로 '열어주면 안 돼!'라고 외쳤지만, 충숙은 그녀에게 문을 열어준다.


그러다 한참 있어도 지하실에서 나오지 않는 그녀를 쫓아가 보니, 지하실엔 주인도 몰랐던 패닉룸이 있었고, 그곳엔 사람이 살고 있었다. 바로 사업에 망해 빚쟁이들을 피해 숨어 지내는 문광의 남편이었다. 같은 불우이웃 아니냐며 돈을 좀 줄 테니 남편이 계속 이곳에 살게 해달라고 하는 문광에게, 충숙은 잠깐 본인의 원래 집을 잊은 듯 자신은 불우이웃이 아니라며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던 기택네 다른 가족들이 발견되고, 상황은 역전되어 서로 실랑이를 하다 문광이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게 된다. 이후 정신이 든 그녀는 기택이 묶어둔 남편을 풀어주려 하지만, 머리를 다친 탓에 이내 눈을 감으며 이렇게 말한다.

그 언니가 참 착한 사람인데, 나를 발로 뻥 차 버렸어...


그런 지하실의 상황은 모른 채 다음날이 다가왔고, 연교의 호출에 기택네 가족은 각자의 원래 역할로 박사장네 집에 모이게 된다. 그리고 은밀히 접선해 아래(지하실)쪽 상황을 걱정하는 기정에게, 충숙은 "안 그래도 배고플까 봐 준비하고 있었어"라며 함박 스테이크를 건넨다. 전날 기택과 기우에게 뒤를 넘기고, 각자 짜파구리를 만들고 상을 치우느라 바빴던 탓에 피를 보지 못한 충숙과 기정의 천진함에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박사장네에 기거하는 것이 그들에겐 희박한 생존의 길 중 하나였기에 서로 포기할 수 없어 등을 맞댔다. 기생충들 간의 다툼이었다. 하지만 첫 만남에 같은 불우이웃임을 부정했던 그들은 언니-동생이었고, 모두 착한 사람들이었다. 기택은 문광을 그 집의 뜰에 묻어주며, 예를 지켜 그녀를 문 자 광 자 님이라 칭한다.


냄새 - 선을 넘은 그것

마지막으로 충숙이 박사장네 집에 가사도우미로 취직을 하게 되고 얼마 안 있어, 다송이 기택과 충숙에게 번갈아 다가가더니 이렇게 말한다. "같아, 둘이 냄새가 똑같아" 이에 비누를 바꿔야 하나, 섬유유연제를 바꿔야 하나 이야기가 오가는 와중에 기정이 말한다.

반지하 냄새야. 여기서 벗어나야 없어져.


그렇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옷과 피부에 깊숙이 박힌 집 냄새였으며, 가난의 냄새였다. 사람에게 숨길 수 없는 세 가지가 기침과 가난, 그리고 사랑이라는데, 학력과 신분을 위조한 그들 역시 냄새로 인해 가난은 숨길 수 없었다.


제목이 '냄새'가 아닌가 할 정도로 영화에선 그 냄새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좁은 차 안에 기택과 단둘이 있다 보니 먼저 그 냄새를 맡은 박사장은 기택의 냄새가 선을 넘었다며 연교에게 그 냄새를 이렇게 묘사한다.

걸레 빤 냄새? 아니야. 그 있잖아,  지하철 타는 사람들 그 특유의 냄새가 있어.


이에 연교는 "그래? 지하철 타본지가 너무 오래돼서..."라며 공감하지 못하지만, 난 그렇지 않았다. 매일같이 버스(Bus)와 지하철(Metro)을 타고 다니는 BMW족로서 살짝 빈정이 상하기도 했지만(내 몸에서도 무슨 냄새가 나는 걸까?), 박사장이 말하는 그 냄새가 뭔지 알 것 같았다. 특히 여름철의 지하철이라면 더욱...


더운 날씨에 땀으로 젖은 사람들이 에어컨 바람에 각자의 땀을 식히는 냄새, 비 오는 날 살짝 젖은 옷이 바싹 말리지 못한 채 은은히 내는 냄새, 그 습한 냄새였을 것이다. 게다가 지하철은 반지하처럼 지하에 있으니, 그 냄새들은 완전히 환기되지 못하고 계속 어딘가에 남아 날이 갈수록 진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캠핑 다음 날, 기택은 선을 넘은 박사장에게 칼을 들게 된다. 박사장이 본인에게 "Respect!"을 외치며 죽어가는 사람을 눈앞에 두고도 그 냄새에 코를 막으며 차 키만 쏙 빼가는데, 그는 다름 아닌 문광의 남편이었다. 박사장에겐 모르는 존재였지만, 기택에겐 같은 냄새가 나는 존재였던 것이다. 냄새는 박사장과 기택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자, 동시에 그 둘을 구분 짓는 것이었다.




넓은 잔디와 세 마리의 강아지가 뛰노는 대저택과 불을 켜면 흩어지는 바퀴벌레들과 함께하는 반지하집, 그리고 치열하고도 은밀하게 삶을 꾸려나가는 기생충과 저도 몰래 그들에게 한편을 내어준 심플한 숙주의 삶이 너무도 극명한 대비를 이루어서일까?


같이 영화를 보고 나오며 남자친구가 물었다. "어느 쪽이 더 와 닿았어?" 부잣집인 박사장네와 가난한 기택네 중 어느 집 이야기가 더 공감되었냐는 질문이었다. 난 당연한 듯 기택네가 너무 불쌍하다고 했는데, 남자친구의 입에서 예상외의 답변이 흘러나왔다. "난 그 박사장네가 좀 안됐던데, 그 사람들도 열심히 살아서 그렇게 된 거잖아."


어떻게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기택네는 치킨집을 했다 망했지만, 박사장네는 다행히 사업이 잘 돼서 그런 거라고. 하지만 기우가 사수를 할 필요가 없는, 기택이 치킨집이 아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아예 기생충과 숙주 같은 관계가 없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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