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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hl May 31. 2019

나는 작가다

책 <글쓰며 사는 삶>을 읽고

일전에 <예상치 못했던 고난, 그래서 책임자가 누구야?>라는, 서울시의 공유 카 지원 행정의 허점을 (살짝) 비판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언니네 이사를 도우며 겪은 일을 쓴 건데, 예상치 못하게 조회수가 많이 올라 언니한테도 자랑 아닌 자랑을 했었다. (만뷰를 넘는 조회수를 기록한 그 글은 아직도 내 글 목록 순위 1위에 올라있다.)



언닌 "작정하고 찾으면 누군지 알겠는데.."라며 나를 에둘러 깠지만, 나중에 내 다른 글들도 읽고는 동물적 감각이 있다느니, 기획력이 좋다느니 하며 글쓰기를 응원해줬다. 그리고 얼마 후 만나서는 크록스 샌들과 호밀 과자, 그리고 고양이 엽서와 함께 한 권의 책을 건넸다. <글쓰며 사는 삶>이였다. 언니가 보려고 샀으나 얼마 못 읽은 채로 앞 날개가 46페이지쯤에 접혀있는 채였다.


집에 돌아와 한동안 그 책을 책상 위에 모셔만 두고 있다 며칠 전 드디어 읽기 시작했고, 얼마 안 있어 다 읽어버렸다. 케케묵은 얘기만 늘어놓을 듯했던 그 오래된 책엔,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오, 나도 빨리 이렇게 써보고 싶어!'란 생각이 들 정도로 흥미진진하고 실용적인 이야기들이 꽉 차 있었다.


이것도 쓰고 저것도 쓰기

작가는 글쓰기 연습의 7가지 원칙을 제시하며 책을 시작하는데, 그중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하나를 공유하고자 한다.


6. 이 나라에서 가장 쓸모없는 것들도 마음껏 쓰라
원한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산타페에서 가장 쓸모없는 것, 뉴욕에서 가장 쓸모없는 것, 칼라마나 미시간, 자기 동네, 자기 목장, 동네 레스토랑에서 가장 하찮은 것들에 대해서 써도 괜찮다.


보통 글을 쓰려고 하면 뭔가 굉장히 특이하거나 중요한 일을 찾게 되는데, 역으로 가장 쓸모없는 것들에 대해 써보라는 조언이었다. 이제는 일시의 유행(fad)이 아니라 하나의 트렌드가 된 '소소한 행복'처럼, 글쓰기 또한 거창한 것이 아닌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것!


저자는 그 외에도 글 쓸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글을 쓰고 싶지만 도저히 쓸만한 주제가 없다는 사람들에게 '쓰고 싶은 주제를 정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며,  직접 쓰는 훈련법과 가까운 일상의 소재들을 공유한다.


죽음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을 아무거나 쓰라.

사람들이 별로 쓰지 않는 소재, 하지만 생각해보면 쓸 말이 덩굴처럼 줄줄이 이어져 있는 소재 중 하나가 잠이다.

자, 이제 10분 동안 "나는... 을 생각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해서 글을 써보자. 그런 다음에는 10분 동안 "나는... 을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문장으로 써 내려간다.

일주일이나 며칠 동안 여행했던 도시나 마을에 관해 써보라.

정말로 사랑했던 것, 충일감과 완전함을 느꼈던 활동에 대해 써보자.


좋은 문장을 찾는 법

소재가 정해졌다면, 이제 '어떻게' 써야 할까. 그저 흘러가는 대로 쓰는 것처럼 보이는 작가도 실은 다양한 방법으로 좋은 단어와 문장을 찾고 있었다.


샐러리를 한 입 베어 보라. 그리고 어떤 느낌이 드는지 강렬한 단어로 표현하라. 맛있다, 짜다, 좋다 같은 단어는 안 된다. 가만히 앉아서 구체적인 낱말이 떠오르기를 기다려라. 호랑이, 근육, 유리는 어떤가. 논리적일 필요는 없지만 평범하거나 조건반사적이어서는 안 된다.
열흘 연속으로 하루도 쉬지 말고 글을 써보라. 그 열흘 동안에는 자기가 쓴 글을 다시 읽지 말고 2주를 기다려라. 그렇게 2주가 지난 뒤에 편안한 의자에 앉아 마음을 가라앉히고 관심과 열정을 갖고 당신이 쓴 글을 읽어보라. 빼어난 문장이 나오면 밑줄을 그어두고 다음번 글을 쓸 때 첫 문장으로 활용해보라.


그렇게 일단 하나의 문장을 만들면, 그 하나의 문장으로 시작해, 계속해서 다음 문장을 적고, 또 다음 문장을 적으며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고 더 나아가 한 권의 책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다 보면, 머리로 생각을 하기도 전에 손이 알아서 익숙한 표현들을 그대로 적는 일을 종종 경험한다. 푸른 하늘을 보고는 자연스레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라고 적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땐 그 어구를 그대로 두지 말고 지워버린 후, 좀 더 비범한 표현이 생각날 때까지 잠시 손을 내려놓아야겠다. 그리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더 강렬한 첫 문장을 만들어내야지. 좋은 글은 첫 문장에 달려있다고 하지 않은가!


그리고 매일 해야 할 일

제목에 걸맞게 책에는 글을 쓰는 행위 그 자체와 더불어 글을 쓰며 사는, 작가로서의 삶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그중 인상 깊었던 것은 책을, 즉 남의 글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읽지 않은 사람의 글은 공허하다. 다른 선수들은 상관도 하지 않고 경기를 하는 야구선수를 생각해 보라. (중략) 다른 작가의 글을 읽지 않는 작가들은 이와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글쓰기는 혼자 하는 작업이지만, 공동체에 관한 일이기도 하다. (중략) 글쓰기의 절반이 읽기라는 것은 분명하다. 자신이 쓴 글만 읽는 것은 소용없다. 그건 배고픈 뱀이 자신의 꼬리를 먹는 것과 같은 행동이다. 꼬리가 없어지는데도 뱀은 계속 자기 꼬리를 삼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자기 자신을 완전히 먹어치우고 만다.


독서가 좋다는 말은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지만, 그건 뭔가 언어 능력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나 얌전한 취미생활의 대명사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작가로서 다른 작가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일과이자, 가진 것이 소진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채우는 일로 또 다른 의미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의식처럼 행해야 할 일이 또 하나 있었다. 스스로 "나는 작가다."라고 되뇌는 것이다.


매일 아침잠에서 깨자마자,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자신에게 말하라. "나는 작가다." 스스로 그 말을 믿든 안 믿든 상관없다. 그냥 씨앗 하나를 심어놓았다고 생각하자. (중략) "나는 작가다."라는 말이 당신 안의 보이지 않는 존재를 불러올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이 원하는 것과 실제의 당신이 만나서 하나가 될 것이다.


정말 그럴까? 

의심하지 말자.

나는 작가다






*. 표지 사진 : Photo by Kat Stoke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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