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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hl Mar 01. 2019

예상치 못했던 고난, 그래서 책임자가 누구야?

'공유 서울 나눔카'의 허(虛)

지난 1월 언니가 장한평으로 이사를 했다. 전에 살던 곳에서 처리해야 할 문제가 있어 언니는 전 집에서 마무리를 하고 넘어오기로 하고, 나는 먼저 새 집에 가서 미리 이삿짐 차를 받을 준비를 했다. 이사를 매끄럽게 마치기 위해 언니는 몇 주 전부터 나에게 수시로 챙겨야 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당부의 말을 했다. 뭐가 그리 불안한지 이사 전날까지 그간의 내용을 정리해주겠다며 또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그리고 이사 당일 아침. 초행길이었지만 지도 어플 덕분에 길을 헤매지 않고 좁은 골목길과 낯선 자동차 수리점들을 무사히 지나갔다. 그리고 근처 편의점에 들러 차가운 샌드위치와 따뜻한 캔커피를 구입한 후, 언니가 당부한 시간보다 먼저 집에 도착했다. 그러나 샌드위치의 비닐포장을 벗기기도 전에 (마찬가지로 약속시간보다 일찍 방문한) 관리인을 만났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얼른 언니에게 받아둔 서류를 건네고 집안 이곳저곳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싱크대부터 보일러, 화장실, 그리고 화재경보기까지(화재경보기를 손으로 끌 수 있다는 걸 첨으로 알았다.) 집 안 구석구석 꼼꼼하게 확인하다 보니, 통신사 기사님이 방문해 인터넷 설치도 해주셨다. 겨우 한시름 놓고 아직 따뜻한 캔을 따니 또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다. 에어컨 설치 기사님이었다. 


기사님은 에어컨 설치를 위해 필요한 짐들을 옮기고 베란다에서 요리조리 기웃거리시더니, 멀뚱하니 서있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저 아래 차를 빼야겠는데? 저기 저 하얀 차." 말인 즉 벽에 구멍이 뚫려있지 않아 이를 뚫어야 하는데, 그러면서 벽돌 부스러기들이 바닥에 떨어져 차에 흠집이 날 수 있으니 미리 주인에게 얘기해 차를 옮기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벽을 뚫어야 한다니, 그게 가능한 일인가? 그것은 두 번째로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어쨌든 주차장으로 내려가 그 하얀 차를 살폈다. 차량 앞유리엔 차주 번호 대신 고객센터 번호가 적힌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그 차는 카 쉐어링 업체의 서비스카 중 하나였고, 나는 080으로 시작하는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어야 했다. 세 번째로 맞닥뜨린 예상치 못한 일이었으며, 고난의 시작이었다. '하필이면 언니가 이사할 집 아래에 주차돼있는 차가 셰어링 카라니,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일단 침착하게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안내 메시지를 듣고 시키는 대로 번호를 눌러 겨우 상담원과 연결이 됐고, 현재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차를 빼 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기사를 불러서 차를 옮기는데 무려 하루가 걸린다고 했고, 내가 지금 당장 차를 옮겨야 한다고 하니 잠깐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문제의 하얀 차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다시 수화기 너머로 돌아온 그는 '역시 다른 방법이 없으며, (서비스를 예약하지도 않은 제삼자에게) 차 문을 열어줄 순 없다'라고 했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나는 기온이 영하와 영상을 오가는 날씨에 차 앞에서 덜덜 떨며 마지막으로 얘기했다. 그럼 이 차에 흠집이 나도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고, 난 분명히 빼 달라고 먼저 얘기했다고. 그러자 그는 '회사에서는 차를 빼줄 의무가 없으니, 흠집이 나면 배상을 해야 한다'라고 했다. 그게 말이야 방귀야? 화가 났지만 어쨌거나 이 '고객센터'라는 곳을 통해 차를 옮길 방법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일단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고, 새로 전화를 걸었다. 하얀 차 뒤편으로 '공유 서울 나눔 카'라는 글이 보였지만 연락처는 나와있지 않아, 다산콜센터로 전화를 걸어 담당 부서로 연결해달라고 했다. 연결된 수신자는 본인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그렇다면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서비스를 사용하는 서울 시민은 대체 불편을 어떻게 해소해야 한다는 말인가? 


덧붙여 '해당 서비스 회사의 고객센터에 전화해보라'는 말에 어이가 없었지만, 지금까지의 상황 - 이사를 하는 중에 에어컨 설치를 해야 해서 구멍을 뚫어야 하는데 밑에 차가 있고 나는 이미 고객센터에 전화를 했고 - 을 모두 이야기하니 담당자는 비로소 직접 그 회사에 연락을 해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두 번째 전화를 끊고 얼마 안 있어 이번엔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지만 받아보니 바로 그 회사의 본사 직원이었고, '고객센터에서는 규정대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대응하는데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 죄송하지만, 지금 원격으로 차 문을 열어줄 테니 옮기시라'는 말을 했다. 




허무했다. 진작 120으로 먼저 전화를 해야 했던 걸까. 어쨌든 결국은 차를 옮겨 맘 놓고(?) 벽을 뚫을 수 있었고, 에어컨 설치도, 이사도 무사히 마쳤다. 그리고 이 경험으로 두 가지를 알게 되었다. 하나는 전형적인 책임 떠넘기기. 좋은 것처럼 보이면 너도나도 발을 담가 공을 차지하려 하지만, 막상 거기서 문제가 생기면 이번엔 너도나도 발을 빼는 정부 사업의 실태를 직접 체험했다. 그리고 이러한 정부의 행태에 따라, 편의를 위해 시행한 서비스가 오히려 시민에게 불편을 줄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또 하나는 불편을 겪을 경우, 그것을 해소하는 치트키는 '매니저 불러와!'라는 것. 물론 블랙 컨슈머나 갑질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악용되는 사례가 종종 있다. 하지만 한 회사 내의 프로세스가 전 직원에게 체득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어느 정도 상위 직급에 있는 책임자를 찾는 게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는 걸 느꼈다. 


그래도 언니가 이사를 하는 데 도움이 되어 기쁘다. 언니가 무사히 새 보금자리에 자리를 잡고, 그곳에서 좋은 일들만 생기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 표지 사진 : Photo by rawpixel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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