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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hl May 05. 2019

부는 어떤 면피권도 주지 않는다

사소한 일상의 예와 질서도 잊은 사람들

지난겨울 아침 9시 즈음, 여느 때와 같이 전철에 몸을 싣고 출근길에 올라있었다. 적당히 자리를 잡고 선 순간, 뒤에서 꽤 묵직한 게 종아리를 후다닥 치고 간다.


뒤를 돌아보니 어느 할머니가 통로를 가득 메운 사람들은 아랑곳 않고 장바구니가 달린 손수레를 끌고 지나가고 있었다. 여름이라 반바지라도 입고 있었다면 어쩔뻔했나? 다쳤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드니 뭣도 모르고 당황스러웠던 기분은 화로 변했다.



그런 내 기분은 알 생각도 없는 듯 몇 사람을 더 치고 지나간 할머니는 임산부석 앞에 섰고, 어린아이와 함께 앉아있던 엄마는 하릴없이 일어섰다. 기다렸다는 듯 임산부석에 앉은 그를 더 지켜봤다.


마치 방금 미용실에 다녀온 듯 물결 웨이브가 선명한 머리엔 반짝이는 핀이 두 개나 꽂혀 있었고, 그 아래로 보이는 화려한 푸른빛의 코트는 무채색 패딩들 가운데 단연 눈에 띄었다.  


앉자마자 핸드폰을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데, 손톱엔 숍에서 받은 듯 깔끔하게 발린 매니큐어가 반짝이고 있었다. 곧 전화가 연결되자 걸걸한 그의 목소리기 차 안을 가득 메웠다.


우리 아들한테도 그것 좀 주고... 청담동에는 쌍둥이 빌딩을 지을라니까... 아니 왜 그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어? 응?


처음부터 끝까지 상대를 아래로 낮추는 화법, 그리고 한결같이 우렁찬 목소리. 그 시끄러운 소리며 대화 내용이 굉장히 듣기 거북 하단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리니, 옆에 선 아주머니도 기가 막히단 표정으로 슬쩍 눈을 흘기고 있었다.



청담동이며, 쌍둥이 건물이며, 행색으로 보나 말하는 걸로 보나 건물을 몇 개쯤 가진 부자로 보이긴 하는데... 일반의 나 질서는 배우질 못한 것 같았다.  버는 데 집중하다 보니 미쳐 그와는 무관해 보이는 것엔 신경을 쓰지 못한 걸까? 갑자기 부자가 된 사람들을 낮춰 부르는 졸부라는 단어엔 바로 돈밖에 모르는 이런 사람들에 대한 의미가 포함된 게 아닐까?


저렇게 남들은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매 분 매 초를 자신의 이익만 고려하며 살아야 부자가 될 수 있는 걸까? 하지만 그렇게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라면, 그런 구조의 사회가 문제인 건 아닐까?


기업은 성장하며 사회와 환경에 영향을 주고 그 반대급부로 부를 축적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묻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도리를 다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어느 예능인의 오랜 유행어처럼 한 개인 또한 (움직이는 벤처) 기업이 될 수 있다. 개인이 부를 축적하는 것도 결국은 다른 이들과의 상호작용에 의한 것이며, 인간의 삶 자체가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현재 갖고 있는 물질의 양과 무관하게 누구든 타인을 배려하며 예를 지켜야 한다. 그러면 좋겠다는 개인의 희망이 아니다. 사회적 의무다. 부는 어떤 면피권도 주지 않으며, 오히려 부를 축적하며 자연과 타인에게 진 빚을 인지해야 한다.



특히나 지하철과 같은 공공장소라면 더욱 그렇다. 수레를 들고 탄 그 할머니도, 그 수레에 치인 나도, 자리를 양보해야 했던 아이와 엄마도, 소음공해에 시달려야 했던 아주머니도 모두 똑같은 돈을 내고 전철에 올랐다. 지하철에서 우린 모두 동등한 위치에 있으며, 오직 자발적인 예와 배려만이 그 안에 질서를 만든다.


얼마 전 출근길에 여전히 문제의 그 수레를 끌고 나와 반대로 걸어오는 할머니와 마주쳤다. 역시나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 있었지만, 반짝이는 액세서리와 값비싼 옷에 파묻힌 몸은 평온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다가오지 않을 미래를 좇는 듯한 눈과 긴장을 놓지 못하고 꽉 다문 입, 그리고 자의와 타의가 섞인 듯 바삐 움직이는 그 걸음을 보고 있자니 또 다른 상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 표지 사진 : Sharon McCutch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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