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운전자일 줄만 아는 무개념 운전자들에게 고함
평소와 달리 살짝 늦은 출근길이었다. 늦잠을 잔 탓이었으나 덕분에 잠은 많이 자 컨디션은 최고였다. 그러다 지하철을 타러 갈 때 항상 지나는 OO마트를 지날 때였다.
순간 앞으로 회색 세단이 훅 하고 들어왔다. 무릎과 번호판 간 간격은 30cm도 채 되지 않았다. 놀라 몸이 정지되었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건너편 갓길에 후방 주차를 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처음엔 그저 얼떨떨하다가, 나중엔 어이가 없더니, 결국 화가 났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앞유리를 향해 있는 힘껏 눈을 흘긴 후, 서둘러 회사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걷다 보니 가슴에선 계속 공기가 빠져나가기만 했다. 맘 속 기압이 낮아지고 있었다. 사이드미러에 쓰인 글도 못 읽나?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다고!!
게다가 몇백 번의 충돌 시험을 이겨낸 금속으로 이뤄진 차체를, 살짝의 부딪힘에도 상처를 입는 내 연약하고 말랑한 살에 들이밀다니!
나와 같이 길을 걷던 '보행자'도 차가운 강철 안에 몸을 감추고 핸들을 잡으면 '운전자'가 된다. 그리고 본인의 두 다리로 걷던 방금 전의 일은 잊고, 몸을 뉘인 그 차가 곧 자신인 듯 행동한다.
혼자 분노라는 기름에 달궈진 팬을 들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연달아 넣으며 달달 볶고 있자니 결단이 필요했다. 공공의 제도권 안에서 그 운전자의 잘못을 따질 방법을 찾아야 했다.
초록 창에 '보행자 위협 차'라고 입력하니 수많은 결과들이 나왔고, 그중 대다수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를 위협하는 상황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새를 못 참고 슬금슬금 앞 범퍼를 들이미는 것도 참 짜증 나는 일이지만 내가 찾던 결과는 아니었다.
검색어를 조금씩 바꿔 더 찾아보니 '생활도로구역'과 '보차 혼용도로'란 단어가 나왔다. 생활도로구역은 보행자의 통행량이 많은 주택 및 상가 밀집 지역에서 차량의 통행 속도를 30km 이하로 제한하는 구역이고, 보차 혼용도로는 생활도로구역과 마찬가지로 보행자의 통행량이 많으나 아예 보도와 인도가 구분되어있지 않은 도로라고 한다.
뭔가 이상했다. 보도와 차도가 분리된 생활도로구역에선 (아마도) 그 사이를 지나는 보행자를 보호하기 위해 차량의 속도를 제한하고 있으나, 보도가 없어 말 그대로 차와 섞여가야 하는 보차 혼용도로엔 최소한의 속도 제한도 없다. 보행교통사고 사망자의 74.9%가 바로 이 보차 혼용도로에서 발생하고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런 제한이 없거나 혹은 있는 걸 모르고 있는 경우라도 일상에서 받은 위협을 제보하고 답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정부에 민원을 제기하는 것이다. '국민 신문고', '안전 신문고', '스마트 국민 제보', 그리고 '생활불편신고' 등 다양한 앱이 있는데, 모두 차량과 관련된 민원을 정부 및 지자체에 제기할 수 있는 창구이다.
자, 그렇다면 민원을 올려보자. 일단 어플을 다운로드하고, 메뉴를 찾았는데, 글을 적으려면 본인인증을 해야 하고, 그다음엔 주소와 연락처도 입력해야 하고... 초반에 할 게 많지만 괜찮다. 민원인의 신분도 증명되어야 하는 거니까.
그리고 이제 겨우 몇 자 쓰려는데 당구장 표시 뒤로 보이는 글자가 눈에 거슬린다. '증빙자료에 촬영 시간이 없는 경우 과태료 부과 처리가 되지 않을 수 있음'.
증빙자료 자체가 없는데 촬영 시간이 있어야 한다니! 순간 내가 왜 그랬을까, 그때 눈을 흘기는 대신 사진을 찍었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했으나 곧 다시 생각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 누가 침착하게 핸드폰을 켜서 카메라 어플을 켜고 그 차와 운전자 면전에 대고 차분하게 촬영 버튼을 누를 수 있겠는가!
이에 하루빨리 사건의 발생 전에 이를 예방할 수 있는 제도 지정과 도로 환경 개선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그 전까진 그저 운전자 대 보행자로서 맞짱을 뜰 수밖에... 단, 운전자는 반드시 차에서 내려야 한다. 그래야 공평하지 않겠는가? 야! 너 일단 내려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