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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hl May 18. 2019

프로불만러의 넋두리

엄지를 든 프로불만러의 탄생

작년에 한창 열심히 다녔던 필라테스를 요즘 다시 시작해 회사 점심시간에 열심히 다니고 있다. 안 맞는 균형을 맞춰가며 의지와 달리 얼굴이 빨개지기도 하고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도 하는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하지만 모든 게 끝난 뒤 OO크라상에 가서 싱그러운 샐러드와 과일, 샌드위치들을 구경하다 보면 그것만으로도 참 상쾌하고 좋은데, 거기서 먹고 싶은 걸 골라 창밖을 바라보며 한 입 한 입 맛을 음미하다 보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땀 흘린 뒤에 먹는 밥은 정말 꿀맛이지 않은가!


그런데 며칠 전 이 소소한 행복에 살짝 스크래치를 낸 사건이 일어났다. 여느 때와 같이 운동을 끝내고 기진맥진해서, 그러나 홀가분한 기분으로 OO크라상으로 향했다. 어제와 비슷한 라인업이지만 그 날 기분에 맞춰 새콤달콤한 스위트 칠리 드레싱의 누들 샐러드를 골라 계산대로 향했다.



ㄱ자 모양의 계산대엔 각 면마다 1대의 포스기가 있었는데, 내 앞엔 이미 줄을 서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어 대각선 쪽 카운터에 기대어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미리 계산할 OO페이 카드와 적립할 마일리지 바코드를 찾아놓느라 미쳐 보지 못한 사이, 어떤 여자분이 다가와 자연스레 내 앞에 섰다.

 

당시의 상황 이해를 돕기 위한 (허접한) 그림

   

뭐, 이런?! 화가 났지만 한 사람뿐이니 그냥 넘길까-하는 생각을 하는 사이 내가 기대어있던 카운터에 직원이 왔고 '다음 손님~'을 부르는 소리에 얼른 몸을 돌렸다.


그. 런. 데... 그 직원이 '먼저 온 손님이 있어서요.'라며 새치기를 한 그 사람을 먼저 응대하는 게 아닌가?! 이제는 직원에게도 분노가 일었다. 내가 먼저 온 것도 모르면서 일을 그렇게 처리하면 되나? 보통은 어느 분이 먼저 오셨냐고 물어보지 않나?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가능한 반응은 크게 둘로 나뉠 수 있을 것 같다. 그냥 '그럴 수도 있지 뭐, 그러려니 하자'는 생각으로 대수롭지 않게 넘기거나,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라는 생각으로 새치기를 한 손님과 그걸 받아준 종업원에게 컴플레인을 걸 수 있다.


나는 속으로 온갖 불만을 품곤 계산을 마치면 직원한테 한마디를 할까, 한다면 뭐라고 해야 할까- 열심히 짱구를 굴리다, 원래 기다리고 있던 카운터가 비자 얼른 가서 계산을 하느라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계산을 마치고 뒤를 돌아보니 그 손님도, 그리고 그 종업원도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버린 뒤였다.


마음은 후자와 같았으나 행동은 전자와 같았다. 대부분의 경우 마음은 불같으나 결국 행동은 그와 같지 못하다. 그렇게 계속 맘에만 품게 되는 불만들이 쌓이니 속이 곪아가는 것 같아 펜을, 아니 (핸드폰에) 엄지를 들게 되었다. 그게 바로 프로불만러의 넋두리다. 남들은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는 일들에 곧잘 불만을 갖지만, 그걸 바로 해소하진 못하고 후에 글로 하소연하는 것이다.



가끔 생각이 실천으로 옮겨졌을 땐 이를 글로 다시 적으며 마음이 더 후련해지지만, 보통은 이미 엎질러진 물처럼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을 되짚으며 글을 쓴다. 이땐 희박한 확률로 해결책을 찾게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않는 고요한 메아리가 된다.


하지만 일종의 희열을 느끼는 건 확실하다. 그때 했어야 했던 말을 나중에라도 적어보고, 또 그런 글에 공감해주는 이들의 댓글을 읽으며 느끼는 즐거움은 곪은 속에 살살 약을 발라준다. 어쩌면 나와 같은 상황을 경험한 사람들은 대리만족을 느낄 수도 있겠단 기대감도 한 스푼 얹는다. 


며칠 전 영어학원에서 컴플레인(complain, 불평)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때 '당신은 누구에게, 어떤 상황에서 불평을 하는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이에 나는 I complain to everything around me.라고 답했다. 여기에 한 문장을 덧붙여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And i'm gonna keep on cause utopia didn't come yet.




* 표지 사진 : Photo by Christian Erfurt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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