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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hl Jun 19. 2019

보고 싶어, 너의 모든 순간

블랙 미러 시즌1 <당신의 모든 순간>을 보고

※ 본 콘텐츠는 <브런치 X 넷플릭스 브랜드 콜라보레이션> 참여작이며,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부엌의 통유리로 푸른 잔디가 끝없이 보이는 커다란 이층 집에 사는 부부가 있다.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이는 보모에게 맡겨두고, 둘은 아내의 친구 집에 초대받아 그녀의 옛 친구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한다. 그런데 잠깐, 이때 이 물건이 있다면 어떨까. 내 모든 기억을 저장해놓고 돌려볼 수 있는 기기, '그레인'이...



기억이 안나도 걱정 마세요, 그레인이 있잖아요

내가 눈으로 보는 건 모조리 어딘가에 저장되어 언제든 돌려볼 수 있고, 티브이 등에 띄워 친구들과 같이 보는 것도 가능하다. "어제 회사에서 글쎄, 그 사이코 상사가..." 하며 그때의 상황을 주저리주저리 설명하며, 상사가 던진 말이 정확히 뭐였는지 애써 기억해낼 필요가 없다. 그저 어제의 기록을 날짜나 인물로 검색해 보여주는 것으로, 친구는 당신에게 크게 동조할 것이다.


기다렸던 여름휴가를 떠나려 26인치 캐리어를 꽉 채워 공항으로 향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와 짐을 붙이려는데 직원이 묻는다. "혹시 라이터나 배터리가 들어가 있나요?" 이 한마디는 당신을 쥐고 흔든다. '배터리? 카메라 배터리 여분을 챙겨 왔던가? 그 어디다 넣었지?' 하지만 그레인이 있다면 그저 짐을 싸던 당시의 기록을 2배속으로 돌려보는 것으로, 캐리어에 대충 집어넣은 속옷을 강제 공개하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기억할 필요 없이 내가 본 것을 알아서 기록해주는 이 기능누구에게 가장 유용할까? 단연 치매환자가 아닐까. 길을 걷다 문득 로 가는 길을 잊어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헤매거나, 가족 몰라보 손을 뿌리치는 일이 잦아지면 결국은 가족도 등을 돌리게 된다. 하지만 영화 <첫 키스만 50번째>처럼 기록을 보고 또 보며 치매를 극복한다면, 원치 않게 특수시설 여생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그레인을 만났을 때

남부럽지 않게 사는 부부는 리암과 피다. 변호사인 리암은 면접을 망치고 예정보다 일찍 돌아와 약속 장소로 향하고, 먼저 가 있던 아내 피는 오지 못할 줄 알았던 그의 등장에 란 표정을 짓는다. 그때부터였을까, 그는 피의 표정에서 반가움보단 당황스러움에 가까웠던 그 놀람을 읽었을까. 피가 이내 함께 얘길 나누던 조나스를 그에게 소개하지만, 그는 그런 조나스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조나의 이야기에 웃는 피의 모습을 기록에서 끄집어내 피를 추궁한다. 그저 조나스의 이야기-지금은 콘플레이크에 충실한 상태죠-에 웃었을 뿐인데, 이를 외도와 연결 짓는 그의 모습은 좀 과해 보인다. 의처증에 걸린 남편 모습이었. 하지만 그는 그레인의 힘을 빌려 지난 영상을 돌려보고 반복하고 또 확대해가며, 그 속에서 단서를 찾아낸다.


처음엔 너무도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그를 보며 '진짜 이상한 사람 아냐? 왜 저래?'라는 생각이 들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으로 시작했던 그 집착은 결국 모호했던 그 느낌이 확실한 외도의 단서였다는 걸 밝혀낸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놀라는 사이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그는 어떻게 그 사소한 변화를 알아챘을까. 오랜 시간을 함께한 탓도 있겠지만, 그보단 항상 그녀에게 관심을 갖고 지켜봤기 때문이 아닐까.



그 사랑의 크기만큼 큰 배신감을 느낀 리암은 피를 끝까지 몰아붙여, 끝내 보지 말았어야 할 영상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이후 피와 아이가 떠난 텅 빈 집과 그 집에서 매 순간 집안 곳곳에서의 옛 기록을 돌려보며 괴로워하는 리암을 비추며 끝을 맺는다. 때로는 진실을 모르는 게 낫다는 듯.


하지만 정말 그럴까?


언젠가 또 아내가 다른 남자를 찾더라도 그 사실을 모른 채 사는 게 더 행복했을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를 친자식으로 믿고 사는 게 더 행복했을까?



당신이 늘 진실을 말한다면 그 무엇도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 - 마크 트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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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by Ryoji Iwat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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