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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hl Jun 20. 2019

발 디딜 데 없는 곳에서의 진짜 삶

<노인과 바다>를 읽고

노인은 술집에선 곧잘 옛 생각에 잠기고, 야구라면 언제나 디마지오 선수가 있는 양키스가 이길 거라고 생각한다. 의 삶은 '크고 대단한 검둥이'를 한 손으로 넘어뜨릴 정도로 기력이 왕성했으며, 이제는 없는 사진 속의 아내가 살아 숨 쉬던 그 시절에 멈춰 있는 듯하다.


하지만 멈춘 듯 단조로운 그 풍경 안에서 노인은 자기만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 삶은 거기에 있다는 듯 다시 바다로 나가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한다. 남들 꺼리는 상어의 간유를 먹고, 본인과 닮 안타까운 바다거북의 알도 먹다. 육지에서의 삶은 그때 그 시절에 멈춰 있지만, 바다에서의 삶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는 어부다.
고기를 잡아야 한다.


날씨가 좋았다. 기를 잡지 못한 지 80일 하고 5일이 된 날이었고, 각배는 아바나 조금도 보이지 않는 먼 바다에 떠 있었다. 순간 노인은 낚싯대 끝으로 몇십 년의 어부 생활 중 가장 육중한 무게를 느낀다. 그것은 자줏빛인 듯 은빛인 듯 오묘한 빛을 내는 커다란 고기였고, 노인에게친구이자 형제이며, 온전히 감상하고픈 황홀한 피조물이었다. 




고기는 입속 깊숙이 낚싯바늘이 걸린 채 유유히 바다를 헤엄치고, 노인은 고기에 끌려가는 조각배에서 고군분투한다. 고기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온 등으로 낚싯줄을 받 채, 오른손 크게 뻗어 겨우 작은 고기들을 입으로 주워 담으며 버틴다. 그러다 생각에 잠긴다. 


저 당당하고 위엄 있는 고기를 먹을 자격이 있는 인간이 있을까.


그러나 자칫 불구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노인은 결코 고기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을 놓지 않는다. 고약한 쥐가 나 잔뜩 오그라든 왼손을 보듬어줄 틈도 없이 다른 손도 내어준 채, 오랜 동행 끝에 진정한 형제의 지느러미에 작살을 꽂는다. 그리고 살아있을 때도 그랬듯이, 죽은 고기를 사랑한다. 고기는 '진짜 삶'의 증표다.


피 냄새를 맡고 끝도 없이 몰려드는 상어부터 고기를 지키기 위해 노(oar) 몽둥이, 키(wheel)까지 닥치는 대로 휘두른다. 배고픈 상어들은 죽지 않기 위해, 노인은 삶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있지도 않은 노란 쌀밥을 소년에게 권하며 현실은 커피 한잔도 겨우 외상으로 마시는 정도지만, 노인에게 먹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는 무언가에 이토록 매달려 본 적이 있었던가.




아내가 떠난 뒤 육지에서 그의 벗은 5살 때부터 낚시를 가르친 소년뿐이다. 사람들은 늙고 힘이 없어진 노인을 운 없는 어부라 대놓고 조롱하지만 그는 아랑곳 않는다. 홀로 낚시하며 맘 놓고 큰 소리 스스로를 다독이고 또 북돋운다. 그리고 패전한 병사처럼 상어에게 모 뜯겨버린 고기와 함께 돌아온다.


노인은 여느 때처럼 육지로 돌아온 그의 곁을 지키는 소년에게 자신의 패전을 알린다. "내가 졌어, 그놈들한테 저버렸어." 하지만 남은 고기의 꼬리와 뼈를 본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과 장대함을 칭송한다. 사람들은 생전 처음 보는 그 커다란 뼈가 노인에게 속했음을 알고, 이제 그를 그 뼈와 꼬리로 다시 기억하게 되었다.


그는 해변에서 천연히 노니는 사자 꿈을 꾸지만, 곧 일어나 편치 않은 현재를 묵묵히 살아낸다.

노인은 내일도 바다로 나갈 것이다.

내 진짜 삶은 어디에 있는가, 난 치열하게 그 삶을 살아내고 있는가. 아니면 언제고 사자 꿈만 꾸며 그 꿈이 현실인 듯 진짜 삶이 무언지도 모른 채 세월을 보내고 있는가. 쩌면 진짜 삶은 편히 발 딛고 있는 지금에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 표지 사진 : Will van Winge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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