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hl Jun 25. 2019

사랑 후에 남는 것, 끈적끈적한 붉은빛 심장

블랙 미러 시즌 5 <스트라이킹 바이퍼스>를 보고

※ 본 콘텐츠는 <브런치 X 넷플릭스 브랜드 콜라보레이션> 참여작이며, 스포일러를 '살짝'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느 때와 같은 출근길. 오늘은 지하철에서 BBC Learning English 대신 넷플릭스를 지만 <스트라이킹 바이퍼스>를 재생자마자 황급히 다시 꺼야 했다. 1분 만에 대니와 테오의 굴곡진 벗은 몸이 화면을 가득 메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내 볼을 발갛게 만들었던 그들은 10년 뒤 평범한 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대니는 그 사이 눈이 나빠졌는지 안경을 쓰고 나타나 연기를 참아가며 고기를 굽는다. 테오는 자연스레 안방마님 노릇을 하며 대니의 생일 파티에 온 손님들을 챙긴다.


그리고 그들의 오랜 친구인 이 선물로 '스트라이킹 바이퍼스'라는 게임을 들고 찾아오고, 그 게임은 곧 대니와 테오의 결혼생활을 망쳐놓는다.




아니, 그런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게임은 이미 대니와 테오, 그리고 칼의 마음속 깊숙한 곳에 있던 욕망을 드러내는 도구일 뿐이다. 그저 육체적인 끌림으로 서로를 탐했던 그들에게 이제 섹스는 둘째를 가지기 위해 날 맞춰해야 하는 노동이 되어버렸지만, 이는 둘의 관계에서만이다.


대니는 요리하는 가정적인 남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익어가는 고기보다 다른 여자의 엉덩이골에 더 관심을 보인다. 테오는 부모로서 그래선 안된다며 스스로를 다잡지만, 자신에게 접근해오는 낯선 남자에게서 자극과 열정을 다시 느껴보고픈 충동을 느낀다. 그들은 여전히 뜨거운 관계를 갈구한다.


'스트라이킹 바이퍼스'는 그런 대니의 숨통을 트여준다. 게임 속에서 대니는 남자 캐릭터 '랜스'로, 칼은 여자 캐릭터 '록시'로 분, VR 섹스 파트너 관계가 된다. 대니는 처음엔 그런 스스로와 칼에게 놀라지만, 생각과 달리 그의 몸은 어느 매일같이 게임기 앞에 앉아 의 접속을 기다리게 된다.


칼은 11년 넘게 만난 여자 친구와 1년 전에 헤어진 상태였는데, 아마도 칼은 그 1년 전에 이 게임을 알게 된 게 아닐까.  록시로 분한 채 하는 랜의 VR 섹스에서 이전과는 다른, 그 어떤 걸로도 대체할 수 없는 특별한 무언가를 느끼게 되고,  중독된다.




그러던 어느 날 록시는 랜의 섹스가 끝나고 혼잣말인 듯 내뱉는다.

I love you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였지만 서로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그녀의 목에 퍼붓던 키스를 멈추고 별안간 쓰레기통을 발로 차며 분노한다. 입밖에 꺼내진 않았으나 서로 느끼고 있던 사랑이란 감정이 록시의 입을 통해 터져 나왔고, 그건 유부남인 대니에게 불륜을 가시화하는 것으로 느껴졌으리라.


그들의 관계를 뭐라고 하면 좋을까, 연하게 느껴지는 사랑이란 감정 말랑말랑한 분홍색 마쉬멜로우 같은 느낌이라면, 그들이 주고받는 감정은 끈적끈적한 진한 붉은빛의 심장 같다. 

하지만 그 역시 사랑이다.

서로를 더 이상 남자와 여자가 아닌 남편과 아내로 보는 테오와 대니게서 떠난 사랑은, 릎을 베고 누워 이야기를 주고받는 랜 록시 어깨에 앉은 듯하다. 둘은 박동하는 심장처럼 생동감 넘치고, 그 심장을 감싸는 붉은 피처럼 강렬한 사랑을 한다.


후에 테오가 이 사실을 알게 되지만 부부는 이전과 같은 삶을 유지한다. 두 아이와 함께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함께 일상을 보낸다. 하나 바뀐 게 있다면 각자의 일탈이 생겼다는 것. 저녁이면 대니는 소파에 앉아 게임을 켜고, 테오는 반지를 빼 바에 간다. 그곳에서 그들은 굳었던 심장을 다시 펄떡 뛰게 하는 사랑을 한다. 사랑이 가고남은 자리 새로운 형태의 사랑이 메운다.  






+. 덧붙이고픈 단상이 있다.(포주의)

칼은 정말 대니와의 키스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을까, 대니가 불편해해 영영 떠날까 봐 거짓말을 한 건 아닐까? 왕래도 없던 친구의 생일에 찾아와, 값비싼 VR 기기를 선물한 건 단지 우정 때문이었을까?




*. <블랙 미러> 다른 글



*. 표지 사진 : https://unsplash.com/@alexacea

매거진의 이전글 5점짜리 사람과 2점짜리 사람이 공존하는 곳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