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편지
국어시간에 받아쓰기도 잘하고, 발표도 잘하고, 글쓰기 숙제도 잘했던 초등학생의 나는 시험만 보면 꼭 1~2문제씩 틀리곤 했다. 분명 맞는 답을 고르고 썼는데도 100점이 채워지지 않은 시험지가 야속해서 뚫어져라 노려보던 기억이 있다. ‘내가 틀릴 리 없어’ 굳센 희망과 의지를 안고 선생님께 구구절절 내 뜻을 전달하며 항의했지만 선생님은 난처하게 웃으시며 100점이 아니어도 잘했다며, 다음에 더 잘 보면 된다는 부질없는 위로를 건네셨다. 집에서라도 억울함을 풀 작정으로 씩씩대며 엄마에게 내 사정을 설명하면 엄마도 똑같은 위로뿐이었다. “90점도 잘 한 점수니까 괜찮아.” 아니, 난 90점이 싫은 게 아니라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어서 누구라도 붙들고 물어본 것이었다. 그런데 내 속마음을 헤아려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또 시험에서 한 문제를 틀린 어느 날, 엄마가 내 시험지를 찬찬히 들여다보더니 말씀하셨다. “이건 시험이니까 너의 생각을 적으면 안 돼. 정해진 답을 골라야 정답이지.” 이게 대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주어진 문학작품을 읽고 옳은 생각을 적으라는 문제에 내 생각을 적으면 안 된다니? 그래, 생각해보면 애초에 문제가 참 거슬리는 것이었다. ‘옳은’ 생각이 따로 있는 것이었나. 문학을 읽고 떠올리는 저마다의 생각이 다 옳고 의미가 있는 것이지. 누가 이런 걸 문제로 내서 날 괴롭게 만드는지, 내 편은 안 들어주고 이런 이상한 문제 편만 들어주는 엄마도 밉고 선생님도 밉고 작가도 밉고 세종대왕님도 밉고 아무튼 다 미웠다.
그런데 중학교에 올라가니 그런 문제가 더 많이 나왔다. 작품에 대한 감상을 묻는 문제에 5개의 선택지가 딸려있었는데 그중 내 감상과 맞아떨어지는 건 없었다. 화자의 생각으로 알맞은 것을 고르라는데 내가 추측한 화자의 생각과 잘 어울리는 선택지도 없었다. 분명 이상한 시험이었다.
하지만 이상하다 생각하고 고민하면 할수록 틀리는 문제는 많아졌다. 나 혼자만의 심도 깊은 수수께끼는 의외로 쉽게 풀렸다. 학생들에게 시험 잘 보는 요령을 설명하시던 어느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국어에도 공식이 있다는 것이었다. 수학도 아니고 국어에 무슨 공식인가 싶었지만 시험이라는 씁쓸한 제도 아래 문학은 공식을 대입할 도구일 뿐 예술로서 기능하지 않았다.
그걸 깨달은 뒤로 국어 과목은 내가 잘하는 과목일 뿐 좋아하는 과목에선 밀려났다. 전래동화전집에서 닳고 닳을 만큼 여러 번 읽었던 흥부전을 탈탈 털어 조각내는 그 수업시간을 차마 좋아할 수 없었다. 첫사랑 소녀를 잃은 『소나기』 속 소년의 슬픔에서 깨어 나오기도 전에 제비꽃 색깔의 의미 따위를 묻는 피도 눈물도 없는 그 시험에 도저히 정을 붙일 수 없었다. 하지만 일주일에 몇 번씩 찾아오는 국어시간은 늘 문학을 멋대로 해부했고 배움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오히려 문학은 점점 어려워졌다.
한 번은 백석의 「수라」를 수업시간에 읽었다. 내가 이토록 백석을 사랑하기 전의 일이었다. 제목 옆에는 모의고사 출제 작품이라고 별표가 그려져 있었다. 일제강점기 민족의 비극적 현실이니, 가족 공동체의 해체니 하는 주제가 크게 적혀있고 행마다 의미 해석이 깨알같이 쓰여 있었다.
거미 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 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 거미 쓸려 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여기서 방바닥은 가족 해체가 이루어진 공간적 배경이다.
차디찬 밤은 시간적 배경을 촉각적 이미지로 표현한 것으로 일제강점기의 냉혹한 현실을 상징한다.
‘아무 생각 없’던 화자의 생각이 ‘짜릿’함으로 바뀌는 건 문제 내기 아주 편한 화자의 감정 변화 양상이니 형광펜으로 밑줄 그어야 한다.
그즈음 나는 이미 그런 분석적인 수업에 물들어 가고 있었다. 수업 방식에 대한 불만은 여전했으나 수업을 바꿀 힘이 없으니 적당히 장단을 맞추는 중이었다. 결국 나에게 「수라」는 일제강점기 가족 공동체의 해체를 다루는 작품으로 기억에 박혀버렸다. 그 이후 아무리 생각을 비우고 읽어보려고 애를 써도 정답으로 정해진 그 주제와 해석을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그렇게 「수라」를 영영 잃어버렸다. 수업시간에 처음 읽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지 않는 한 절대 작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다. 곱씹고 또 곱씹어도 늘 달콤할 백석의 귀한 작품 하나가 질겅질겅 고무를 씹는 것처럼 형편없이 되어버렸다.
잃어버린 작품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소설, 수필, 시, 희곡 가릴 것 없이 수많은 작품이 내 손을 떠나버렸다. 특히 ‘시’가 피해를 제일 많이 입었다. 교복을 입던 시기에 나는 시집을 제대로 읽어 본 기억이 없다. 어렵다 못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황당한 건 그때가 한창 내가 시를 쓰던 시절이었다는 것이다. 시를 쓰면서도 시를 어려워하던 혼란한 때였다.
졸업만 하면 더 이상 날 괴롭게 하는 수업 따위 듣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런 수업을 듣지 않게 되었지만 이제는 내가 그런 수업을 하게 되었다. 학원이나 과외를 통해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쳤는데 점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정해진 해석을 가르칠 수밖에 없었다. 학생과 학부모가 원하는 건 문학에 대한 깊은 고찰과 진지한 대화가 아니라 당장 기말고사에서 1등급 더 오르는 것, 수능에서 희망대학 입결에 맞는 성적을 받는 것이었다. 그런 바람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저 현실이었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 그 일을 택했지만 학생들을 만나고 가르친다는 건 내 적성에도 맞았고 실제로도 즐겁고 보람찬 일이었다. 나름대로 수업 틈틈이 문학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소개하고자 노력했으나 그래도 결국 수업의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EBS 수능특강 교재에 나온 백석의 「수라」가 지긋지긋해서 환멸이 날 지경이었지만 내 입에서는 너무나도 익숙하게 “가족 공동체의 해체를 보여주는 시야”, 이 소리가 줄줄 나오고 있었다.
수업을 위한 시험이 아니라 시험을 위한 수업으로 뒤집혀버린 공교육을 그토록 질색해서 대안교육을 꿈꿔온 내가 공교육의 폐해라고 할법한 사교육 시장에 뛰어든 것만으로 자잘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던 중이었다. 거기에 저런 수업까지 겹치니 정말이지 끔찍한 딜레마였다. 물론 난 학생들을 사랑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학생들은 원하던 성적을 받았고 그건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마치 백석을 배신한 것처럼, 그 존경하는 작가들을 저버린 것처럼 느껴지는 찝찝함과 씁쓸함이 뒤섞인 자책을 피할 수는 없었다.
시험을 위해, 입시를 위해 문학은 끊임없이 희롱당해야만 했다. 그리고 오늘은 그 시험의 끝판왕이라 할만한 ‘수능’이 치러진 날이다. 비행기가 멈추고, 대중교통 시간이 조정되고, 경찰차가 수험생의 발이 되어주는 그런 날, 나라 전체가 수험생을 위해 눈치 본다는 날이었다. 나도 수능을 본 (전)고3으로서 수능날 아침의 서늘함과 남의 학교에서 시험을 보는 낯섦을 기억한다.
그리고 5년이 지나 오늘은 나의 제자들이 수능을 보았다. 첫 시험으로 국어 시험지를 펼쳐 지난 1년 동안 내가 가르쳐온 작품들을 만났겠지. 나는 그 친구들이 고른 답이 정답이길 바란다. 얼마나 고생하며 수험생의 지겨운 시간을 버틴 지 누구보다 잘 아니까. 좋은 점수받아서 원하는 대학에 무사히 입성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다만 시험이 끝난 오늘 밤, 뒤늦은 고백과 참회를 전하자면 내가 가르치고 너희들이 고른 답이 시험의 정답일 수는 있으나 절대 작품의 정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문학에는 답이 없다. 그 당연한 진리를 시험 때문에 잊어야만 했지만 이제는 벗어났으면 한다.
나는 귀한 시 「수라」를 영영 잃었지만 동시에 나의 제자들로부터 영영 뺏어버렸다. 내가 학생이던 시절 내게 그런 가르침을 준 선생님을 원망했는데 이제는 「수라」를 읽을 때마다 내가 빼앗은 이들의 감상을 기리며 미안해하려고 한다. 그리고 현실에 부딪혀 외면해야 했던 백석의 소중한 진심에도 깊은 사죄를 표한다. 내가 꿈꾸는 대로 대안교육에 나간다면 꼭 이 시를 다시금 학생들과 나누고 싶다. 정답을 찾아서가 아니라 시에 담긴 순수함을 느끼며 나누리라. 그렇게나마 내 지난 제자들과 백석과 수많은 시인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2021년 11월 18일
담소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