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병에는 집밥 처방!
“내가 해 먹으면 그건 ‘내 밥’이고, 식당 가서 사 먹으면 그건 ‘남의 밥’이지. 나는 ‘집밥’이 먹고 싶다고~!”
직장생활을 위해 먼 타지에 뚝 떨어져 혼자 산 지 어느덧 2년 하고도 2개월이 된 내가 밥 먹을 때면 종종 하는 푸념이다. 어느새 부모님 울타리를 떠나 1인가구를 꾸린지도 2년이 넘었다. 시간이 참 빠르게도 흘렀다. 브런치 작가가 되어 열심히 글을 쓰겠다고 다짐하고 얼마 되지 않아 어쩌다 보니 직장인이 되어버렸다. 분명 대학졸업 이후 코로나19를 핑계 삼아 안식년을 선포하고 글쓰기에 전념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대안학교 교사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가 바로 뽑힌 덕분에 꿈꾸던 대안학교 교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원하던 일을 하게 된 건 너무 좋은 일이었지만 그 과정이 정말이지 번갯불에 콩 볶듯 후다닥 이었다. 2주 만에 이사를 준비해서 따뜻한 남쪽 동네에서 북한 근처 북쪽 동네로 한반도를 가로질러 온 것이다.
시작이 정신없었던 것처럼 그동안 나의 생활도 정신없이 흘러갔다. 처음 1년은 초년생이 그러하듯 아는 것도 없고 하는 일은 끝이 없고 머리에 남는 건 더더욱 없는 ‘3無’ 상태였다. 특히 밥 챙겨 먹을 기운이 제일 없었다. 퇴근하고 나면 청소할 힘도, 옷 정리할 체력도, 밥 차릴 의욕도 없었다. 그저 닥치는 대로 일을 해치우던 전쟁 같은 하루가 적당히 끝났음에 고개를 끄덕이고 그대로 방바닥에 드러눕는 것이 일상이었다.
2년 차의 삶은 시작부터 특별했다. 월세 계약 1년 만에 집을 옮겼는데 연말 그 바쁠 때, 심지어 2학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이사를 하느라 넋이 나간 채로 새해를 맞이했다. 그래도 생활권이 더 좋아졌고 덕분에 일상이 보다 윤택해지긴 했다. 직장에서는 여전히 좌충우돌이 펼쳐졌다. 아는 척할 건 늘었지만 진짜 아는 건 몇 안 되고 초년생 딱지를 벗었다고 목소리가 커졌지만 그만큼 책임도 늘어난 ‘모순’ 상태였다. 뒤죽박죽 모나게 굴러가던 첫 해를 적당히 동글동글 빚어서 얼렁뚱땅 굴려낸 한 해였던 것 같다. 그래도 밥 차려먹을 힘이 조금씩 생기기도 했다. 힘이 생긴 건지, 오히려 너무 지쳐서 밥에 대한 욕망이 강해진 건지 조금 애매하긴 하지만 어쨌든 밥을 챙겨 먹고 다녔음에 의미를 두고 싶다.
대부분의 1인 가구가 그러하듯 ‘배달음식-외식(혹은 간편식)-요리’의 무한굴레 속에서 시행착오를 겪었다. 초반에는 요리를 해 먹다가 직장생활이 바빠지면서 배달을 굉장히 많이 시켜 먹었고, 연애를 시작하면서 외식이 늘었다가 이사를 한 이후 요리를 다시금 시작했다. 독립 초반에 요리를 시작할 때는 자신감이 넘쳤었다. 나름 장금이 언니 동생쯤은 되지 않을까 할 정도로 요리실력은 자신 있었고, 어려서부터 밥을 직접 해 먹던 사람이라 어려울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말도 안 되게 힘들었다. 일단 나는 손이 크다. 그것부터 문제였다. 찌개를 한 번 끓이면 최소 양이라는 게 있는데 이게 딱 한 끼 분량만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맛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이것저것 재료 추가하다 보면 금세 냄비 한가득 불어나기 십상이다. 먹는 양도 적은 내가 그 찌개를 다 먹기 위해서는 일주일 내내 먹어야만 했다. 그것도 매일 꾸준히 먹었을 때 기준으로. 하지만 아침은 출근 준비하느라 건너뛰고, 점심은 직장에서 먹고, 저녁도 때때로 야근이나 약속에 따라 바깥에서 먹고 그러다 보면 평일에 집에서 먹는 건 기껏해야 3~4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차라리 요리하는 건 쉽지만 ‘처리’가 어렵고, 덩달아 재료 관리도 어렵다 보니 얼마 못 가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서 자연히 배달음식이 늘었다. 그리고 그만큼 쓰레기도 늘었다. 물론 식비도 엄청 늘었다. 최소주문금액이라는 게 있어서 더 이상 예전처럼 “짜장면 한 그릇도 배달되나요?” 묻던 정은 없다. 무조건 일정 이상 채워야 하는 거다. 그리고 그 최소주문금액의 기준이 혼자 먹는 사람에게는 너무 과할 때가 있다. 특히 나처럼 양 적은 사람은 메인요리 하나면 차고 넘치는데 어쩔 수 없이 사이드메뉴를 시키거나 한 그릇 더 시켜서 금액을 채우는 것이다. 그럼 음식은 고스란히 남는다. 먹지도 못하는 음식에 돈을 지불하는 셈이다. 그래서 피자, 떡볶이처럼 냉동실에 얼려두고 다음에 또 먹을 수 있는 음식들 위주로 시키게 되었고 자연히 메뉴가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내가 전에 살던 곳은 식당을 걸어서 가기 어려운 위치라 포장은 못하고 배달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이래저래 엥겔지수가 높아질 수밖에.
결국 그다음 선택한 것은 외식이었다. 주말에는 데이트를 하면서 맛집을 찾아다녔고, 평일에는 밖에서 먹거나 김밥, 라면, 햄버거 같은 간단한 음식 위주로 적당히 때우게 되었다. 이 방법은 앞선 방법들에 비해 제일 간결하지만 그만큼 수명도 간결해지는 느낌이었다. 건강이 무척 나빠지는 기분. 패스트푸드가 늘면서 살도 찌고 피부도 나빠지고 면역력이 떨어지는 게 실감이 되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건데, 참 그렇게 먹는 게 고달플 수가 없다. 그래도 또 먹어야 산다는 심정으로 대충이나마 해 먹게 되었다. 그렇게 돌고 돌아 다시금 요리를 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시행착오의 시간 동안 이사를 하면서 장보기가 수월해졌고 나도 나름 여유가 생기고 이전의 실패를 바탕으로 노하우가 생기면서 요즘에는 꽤 잘해먹는 중이다. 물론 일이 엄청 바쁠 때나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쉽지 않긴 하지만 요령껏 자취(自炊) 중이다.
그럼에도 밥을 먹다 보면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느낄 때가 있다. 배보다는 영혼이 고픈 느낌, 따뜻한 밥을 먹지만 속까지 뜨끈해지지 못할 때 그 허함이랄까. 나는 이걸 ‘집밥증후군’ 혹은 ‘돌아온 집밥의 계절’이라고 부른다. 일종의 향수병이랄까. 아마 많은 이들이 공감하리라고 생각한다. 혼자 아파 서러운 날이나 일이 유난히 잘 안 풀리고 하루가 엉켜버린 날들, 어쩌다 보니 밥때를 놓쳐서 유난히 배고프고 피곤한 그런 날들. 이런 날들이면 여지없이 엄마의 된장찌개와 비빔밥, 아빠의 물회와 오징어볶음이 생각난다. 나에게는 그것이 소울푸드이리라. 그게 그리울 때면 타지에 홀로 떨어져 나온 내 처지가 안쓰럽고 외롭다가 괜히 더 배가 고픈 것처럼 기운이 빠진다. 그리움이 머리를 거쳐 가슴에 퍼지면 그때부터는 엄마아빠가 보고 싶고 ‘이러다 엄마아빠가 돌아가시면 나는 혼자 남을 텐데, 지금처럼 일 년에 두세 번 보는 걸로 되겠나’ 하는 가도 너무 간 생각까지 드는 것이다.
평소 먹방(음식 먹는 방송)은 전혀 보지도 않는 내가 유일하게 먹방을 찾아볼 때가 바로 이런 순간이다. 딱 저 4가지 메뉴 먹는 것만 찾아본다. 침대 끄트머리에 누워서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비빔밥, 된장찌개, 물회, 오징어볶음 먹는 영상을 찾아본다. 마치 성냥불 속에서 따뜻한 집과 만찬을 보았던 성냥팔이 소녀처럼 그런 영상을 보며 잠시나마 텅 빈 속을 달래다가 영상이 끝나면 더 큰 허탈감에 굶주리며 잠을 청하는 것이다.
어쩔 때는 엄마아빠가 해주시던 음식뿐만 아니라 막내이모가 해주시던 음식도 떠오른다. 갈치조림이나 골뱅이소면 같은 이모의 맛난 음식들. 학교 다닐 때 이모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살았던 기간이 꽤 길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그리워할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난 것이다. 그럼 외로움도 그만큼 더 커지곤 한다. 글로 적고 보니 참 웃기고도 안쓰러운 모습이긴 한데 정말 그렇다. 이런 집밥증후군이 일 년에 몇 번씩 찾아오곤 한다.
그래서 방학 때나 명절에 집에 가면 왕창 먹고 오게 된다. 반찬이 별로 없더라도 사 먹는 것보다는 집에서 엄마아빠랑 먹는 게 좋다. 엄마아빠도 둘이 먹다가 셋이 먹으니 더 맛있고 좋다고 말씀하신다. 그 말이 좋아서 더 신이 나서 먹게 된다. 가득 채워진 식탁과 나를 맛나게 먹이겠다는 정성이 더해진 반찬들이 식욕을 돌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엄마아빠와 함께 집밥을 맛있게 먹고 배를 통통 두드리다 문득 생각한 적이 있다. ‘엄마아빠 집밥은 누가 차려주지?’ 일찍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다 돌아가셔서 엄마아빠는 젊은 나이에 부모님을 떠나보냈다. 시골집을 가도 이제는 그 흔적만 남았을 뿐 반갑게 맞아주는 부모도 없고, 자식 키우고 돈 버느라 고생했다며 차려주는 밥상도 없다. 아주 문득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나이가 들면서 그리움도 옅어졌냐고 묻기에는 엄마아빠는 추억이야기를 자주 하신다. 엄마는 어릴 때 도시락 이야기, 장 볼 때 따라가서 얻어먹던 시장음식 이야기. 아빠는 할머니가 새벽부터 머리 곱게 빗고 동백기름 발라서 비녀를 꽂고는 아침을 차리셨다는 이야기, 들깨를 손수 갈아서 찌개에 넣고 끓이셨다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떠나보낸 세월만큼 절절함은 흐려졌지만 그리움은 여전하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한편으로는 엄마아빠에게는 서로가 해주는 밥이 집밥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20대 초중반 일찍 결혼해서 단칸방에 신접살림을 차렸던 두 사람은 20대와 30대에 부모를 다 떠나보냈다. 나이 오십이 훌쩍 넘은 지금은 부모님께 얻어먹던 밥만큼이나 서로의 밥을 먹고 산 기간이 더 많아진 것이다. 단순히 기간으로 그 둘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 무게감만큼은 두 밥 모두 깊을 것이다. 가진 것 없이 그저 청춘이던 시절부터 정신없던 사회생활 초년, 자식 낳고 키우며 자식 입에 밥 먹이기 바빴던 시절, 그리고 중년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 먹고산 밥은 분명 두 사람을 가득 채워준 밥이 아니었을까. 퇴근하고 추운 몸을 녹이는 찌개, 속상한 일이 있어도 소주 한 잔과 함께 털어내던 밥상, 오늘 하루 고생했다며 서로를 다독이는 한 마디. 그렇게 가득 채워진 진짜 집밥.
엄마아빠가 부모를 떠나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새 식탁을 차린 것처럼, 나도 엄마아빠의 울타리를 벗어나 나만의 식탁을 차리고 있다. 나에게는 아직 엄마아빠의 밥상이 집밥이지만 나도 시간이 흘러 새로운 집밥을 찾을 수도 있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릴 수도 있고 친구들과 농담처럼 말하듯이 우리만의 셰어하우스를 만들 수도 있고, 혹은 지금처럼 1인가구일 수도 있다. 형태야 어떻든 간에 부모님과 함께 하던 전과 달리 나를 주체로 하는 집과 밥이 있겠지. 그 밥이 부모님의 밥에 비해 얼마나 맛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나이 들면 입맛도 변한다고 하니 엄마아빠의 손맛이 아닌 다른 맛에 길들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이 오면 조금은 슬퍼질 것 같다. 아마 엄마아빠도 아주 조금은 서운해하시지 않을까. 그래도 나의 첫 집밥은 단연코 부모님의 밥이다. 그 밥을 먹고 자라 새로운 곳으로 뻗어나간다는 것을 나는 기억한다. 아주 나중에 부모님의 집밥을 먹을 수 없는 그런 날이 나에게도 온다면 돌아보기 위하여 영원히 그리울 나의 집밥을 이렇게 글로나마 미리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