쌉싸래한 김밥의 맛
오이, 당근, 단무지, 계란, 햄 취향껏 재료 넣고 돌돌 만 김밥은 소풍 가는 날 꼭 챙겨야 하는 준비물이다. 소풍날이면 점심은 항상 잔디밭 위에서 각자 챙겨 온 귀여운 1인용 돗자리를 깔고 앉아 먹었다. 친구들이 집에서 쓸법한 반찬통에서 깨 뿌려진 집 김밥을 꺼낼 때 나는 은박지나 종이 포장지에 담긴, 김밥가게에서 사 온 김밥을 꺼내곤 했다.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 부모님은 늘 맞벌이를 하느라 바쁘셨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는 두 분 다 타 지역에서 일하셔서 나와 오빠는 부모님 얼굴을 일주일에 한 번 볼까 말까 했다. 그렇다 보니 당연히 집에서 싼 김밥을 들고 소풍 갈 형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딱히 싫지는 않았다. “어린 마음에 은박지에 담긴 김밥이 그렇게 부끄러웠어요.”하는, 뭐 그런 눈물의 기억은 없다. 늘 바쁜 부모님이 익숙했기에 새삼스럽지도 않았고 유치원 때부터 뭐든 혼자서도 잘 챙기는 똑순이였기에 불편한 것도 없었다.
소풍 가기 전날이면 혼자 마트에 가서 칸쵸와 빼빼로, 풍선껌과 당시 어린이 음료계의 아이돌이었던 뚜껑 달린 팬돌이 음료를 샀다. 난 파란색 팬돌이를 좋아했는데 그것들이 내 소풍 간식의 최애 조합이었다. 장 보고 집에 와서 알록달록 미니 돗자리와 간식, 휴지, 물티슈, 공책과 필통을 가방에 야무지게 담으면 내 준비는 끝이었다. 아침에 다른 친구들보다 30분 먼저 집을 나가 ‘김밥 헤븐’에 들려 김밥 한 줄 사가면 점심 도시락 준비도 완벽했다. 집에서 만든 김밥은 아니었지만 난 충분히 든든했다. 부모님이 가방을 챙겨주는 게 익숙한 친구들과 다르게 혼자서도 잘 챙기는 스스로가 대견할 뿐이었다.
그토록 덤덤했던 나에게 김밥이 아프게 다가온 건 초등학교를 훌쩍 지난 고3 때 일이었다. 나의 고3은 학교보다 병원이 더 익숙했던 시간들이다.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한 우울증 때문에 정신과를 다니기 시작했고 정신이 쇠약해지자 자연스레 몸도 망가지기 시작했다. 두통과 어지럼증이 심해서 여기저기 병원을 다녔는데 ‘전정신경염’을 진단받고 끝내 입원했었다. 그런데 그때도 부모님은 바쁘셨다. 난 혼자 병원에 가서 입원절차를 밟았다. 검사를 받으러 갈 때도 환자복을 갈아입고 링거 거치대를 끌고 다닐 때도 혼자였다. 내가 입원한 병실의 문에는 ‘어지럼증 환자는 부상의 위험이 있으니 꼭 보호자와 동반하십시오.’라는 주의문구가 크게 써져있었다.
혼자 있을 때 아프면 서럽다고 했던가. 그 말이 참 맞더라. 3인실 병실에 나 빼고 다들 챙겨주는 보호자와 함께 있는 걸 보는데 되게 울컥하더라. 할 일 없는 병원에서 홀로 있는 건 외로움과 슬픔보다 심심함이 더 크게 느껴지는 지독히도 지겨운 일이었다.
혼자 버티는 입원생활을 가장 힘들게 한 건 ‘밥’이었다. 움직임도 없이 약 기운에 취해 잠만 자니 입맛이 돌 리가 없는데, 앉아만 있어도 어지러우니까 계속 멀미하는 기분이고 약 때문에 입안에는 쓴 맛이 맴돌고 도저히 무언가를 먹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내가 건강하다 해도 도저히 먹을 수 없겠다 싶을 만큼 병원밥은 맛이 없었다. 난 결국 병원밥을 취소하고 즉석식품이나 빵 따위로 겨우 배만 채웠었다.
그러다 어느 날은 병원 앞 김밥가게에서 김밥을 샀는데, 엄마나 이모 중 누군가 병실에 들렀을 때 사주고 가신 걸로 기억한다. 서랍장 위에 올려두었다가 저녁에 먹으려고 펼쳤는데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쿰쿰하니 기분 나쁜 냄새가 살짝 스쳤다. 혹시 상했나 싶어서 망설이다가 한 번 먹어보자 싶어서 젓가락으로 김밥 한 개를 집은 순간, 속이 멍든 것처럼 까맣게 변한 계란이 보였다. 순간 힘이 탁- 풀리는 기분이었다. 한순간에 서러움이 파도처럼 거세게 밀려왔다.
상한 김밥처럼 내 마음이 까맣게 멍들어갔다. 김밥이 뭐라고 날 이렇게 약 올리나 싶고, 이렇게 병원에 있다간 더 병들 것 같아서 뛰쳐나가고 싶고. 그 와중에 머리가 어지러워 속은 울렁거리는데 빈속에 먹기에는 약이 너무 독했다. 상한 김밥을 앞에 두고 약봉지만 손에 꽉 쥔 채, 나는 멈춰있었다. 밥도, 약도 먹지 못한 채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참기 위해 눈에 힘만 가득 주고 있었다.
그날 눈에 고인 눈물은 뭐였을까. 몸이 아파서 마음도 약해졌나. 아니면 병원에 날 혼자 두고 일하러 간 부모님을 철없이 원망했나. 그것도 아니면 그 김밥이 너무 먹고 싶었던 걸까? 그래, 김밥이 너무 얄미웠나 보다. 평소 좋아하지도 않는 김밥을 그날따라 너무 먹고 싶었나 보다.
그날 먹을 수 없게 된 김밥을 보며 나는 어린 시절 소풍 때 싸들고 간 김밥을 떠올렸다. 난 분명 그 시절 김밥가게에서 산 김밥이 아무렇지 않았는데, 정말 괜찮았는데 문득 어린 날의 김밥과 상해버린 김밥이 겹쳐 보였다. 내 마음을 내가 모른다는 게 참 우스운 일이지만 난 지금도 모르겠다. 초등학생 때는 괜찮았던 김밥이 왜 하필 10여 년이 지나서야 서글펐을까. 상한 김밥을 버리고 어두운 병실 복도의 의자에 앉아서 엉켜버린 기억과 감정을 풀어보려고 애썼다. 김밥 대신에 10년 치 설움을 씹어 삼키며 눈물을 참았다.
여전히 그날의 감정을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다. 외로움과 원망과 슬픔과 배고픔과 답답함이 김밥 속 재료처럼 한데 섞여 내 마음에 박혔을 뿐이다. 그렇지만 그 뒤로 김밥을 싫어하게 됐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즐겨 찾는 음식은 아니지만 먹게 되면 맛있게 잘 먹는다. 다만 김밥을 먹다 보면 가끔씩 어렴풋한 기억이 떠오르면서 뒷맛이 쓸 때가 있다. 잔디밭의 먼지와 병원의 소독약 냄새가 입 안을 맴돌며 쌉싸래할 때가 있다. 아주 가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