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막내 이모가 양념게장을 담그지 못한 이유

다섯 자매에게 작은 오빠는 아버지였다

by 담소이

엄마는 위로 오빠 셋에 언니 둘, 아래로 여동생 둘을 둔 8남매 중 여섯째다. 워낙 형제자매가 많은 대가족인지라 오빠들에게 막냇동생들은 딸뻘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정이 많고 따스했던 둘째 오빠는 동생들의 자랑이었다. 온 동네 라디오며 TV며 냉장고며 모르는 거 없이 뚝딱뚝딱 고쳐주던 맥가이버 같은 오빠. 늘 “00아~ 학교 잘 다녀왔어? 밥 먹자.” 살뜰히 챙겨주던 자상한 오빠. 그래서 나이 40, 50이 되어도 동생들에게 둘째 오빠는 든든한 아버지처럼 그립고 또 그리운 존재다.


내가 중학교 1학년이던 해, 바람이 쌀쌀하던 날 둘째 외삼촌은 돌아가셨다. 지긋지긋한 가족력으로 이어져 온 암 때문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거동이 힘든 아내를 집안 구조물까지 손수 고쳐가며 간호하고, 철없는 막내아들 걱정에 무덤덤한 장남 걱정에, 게다가 살림살이 퍽퍽한 동생들 걱정까지. 온갖 걱정에 섞여 암은 슬며시 찾아왔다. 건장하던 삼촌은 끝내 병으로 50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다.


떠나시기 전 투병 중이던 삼촌을 뵌 기억이 있다. 큰 이모 집에 친척들이 다 모인 날이었다. 식구가 많은 탓에 거실에 자리를 펴고 밥상을 차렸는데 솜씨 좋은 막내 이모가 직접 담근 게장을 꺼내셨다. 8남매의 막내지만 음식으로 보나, 살림으로 보나 가장 맏이 같은 이모는 그날도 식구들 먹으라고 바리바리 싸들고 오신 것이었다. 일일이 다리를 으깨 살을 바르고 게딱지 내장을 숟가락으로 긁어 양념에 버무린 장은 막내이모표 게장 중에서도 가장 으뜸이었다. 흰 밥에 슥슥 비벼서 한 숟갈 가득 떠먹는 그 맛은 내가 맛 본 그 어떤 게장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맛이었다. 그건 그날 그 자리에서 먹은 모두가 느끼는 맛이었다.


둘째 외삼촌도 그 게장에 밥을 비벼 한 그릇을 뚝딱 드셨다. 먹지 못해 야윈 몸으로도 식구들 걱정할까 아무렇지 않은 척 묵묵히 밥을 드셨다. 막냇동생의 손맛이 대견하고 또 대견해서 맛있게 드셨다. 그걸 지켜보는 동생들은 고맙고 안쓰러워했다.


아버지, 어머니 두 분 다 오래전 병으로 보내고 자식들만이 남아 서로 의지하고 살아온 끈끈한 남매들이었다. 그런데 제 오빠에게서 그 옛날 병든 부모님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건 견디지 못할 슬픔이고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대들보처럼 형과 동생들을 떠받치고 끌어안던 둘째 오빠였으니 더 미어지는 마음이었겠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직감하며 다들 오빠가 비워 낸 밥그릇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 만남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삼촌이 돌아가셨단 연락을 받았다. 장례식장에는 그간 삼촌의 삶을 증명하듯 많은 이들이 찾아와 슬픔을 나누고 갔다. 나를 비롯한 조카들은 문상객들의 상을 차리며 그곳을 같이 지켰다. 그런데 일하면서 가끔 엄마와 이모들을 보면 생각보다 덤덤해 보였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 저러나.’ 죽음을 실감할 일이 없던 14살의 나는 그렇게 쉽게 넘겼다.


마지막 발인하던 날, 나는 그것이 내 착각이었음을 알았다. 아무리 준비해도 무뎌지지 않는 게 죽음이라는 걸. 숨이 넘어갈 듯 오빠를 부르짖으며 우는 엄마와 이모들을 보며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죽음 앞에 쏟아내는 울음은 참 설명할 길 없는 울부짖음이더라. 애써 담담한 척했던 것이었다. 자식과 조카들 앞에서 무너지지 않으려, 오빠의 마지막 가는 길 눈물로 채우지 않으려. 작은 몸이 휘청이며 꺾일 정도로 울고 소리치면서 오빠를 붙잡으려 손을 내젓는 모습이 여전히 내 기억 속에 잊히질 않는다.


그렇게 후회와 슬픔으로 오빠를 보내고 그리움만 남을 즈음 꽃게철이 돌아왔다. 막내 이모는 꽃게가 살이 통통히 올라 알이 가득 찼다며 게장을 담가야겠다고 하셨다. 그러더니 멈칫, 씁쓸히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번에는 간장게장만 담가야겠다. 양념게장은... 당분간 못 담그겠네.” 혼자 일찍 떠나버린 야속한 오빠를 떠올리는 이모를 나는 위로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보았다.


둘째 외삼촌이 돌아가신 지 어느새 10년이 되었다. 그 사이 동생들은 그때의 오빠만큼이나 나이를 먹었다. 삼촌의 아들들은 자식을 낳았고 갓 교복을 입던 조카들은 사회인이 되었다.

삼촌은 떠났지만 세상은 그대로 굴러갔고 우리는 점점 크는데 삼촌만 그 자리에 그대로이다. 그래도 엄마와 이모들에게 삼촌은 여전히 오빠다. 아버지처럼 든든하고 언제라도 어리광 부리고 싶은 그저 좋고 따뜻한 오라버니.


막내 이모의 매콤한 양념게장이 먹고 싶은 날이면 여지없이 둘째 외삼촌이 보고 싶어 진다.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분명 훌륭한 작가가 될 거라며 믿는다고 말씀해주시던 삼촌. 오늘은 정말이지, 양념게장이 먹고 싶은 날이다.


“삼촌, 그 어린 조카가 이제는 사회에서 제 몫을 할 만큼 컸어요. 얼마 전부터 막내 이모는 다시 양념게장을 담글 수 있게 됐어요. 시간이 그만큼 흘렀나 봐요. 그래도 다시 담그게 된 이모의 양념게장에는 그리움이 묻어 있어요. 오빠에게도 먹이고 싶은 마음으로 우리를 먹이는 것 같아요. 나의 삼촌이자 누군가의 오빠이고 아빠이고 남편이었던 최재봉 씨, 아픔은 이곳에 두고 그곳에서는 맛있는 거 많이 드시면서 행복하게 우리를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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