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육점 집 딸내미
기름을 부으면 빨갛게 열선이 달아오르며 공기를 따끈따끈하게 만들어주던 조금은 오래된 기름난로. 손을 뻗은 채 옆에 있으면 금세 몸이 달궈지는 튼튼한 난로는 큼큼하고 끈적한 기름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철망 안 빨간 원통의 열선을 보고 있으면 불멍(?)에 빠지게 만드는 겨울철 마성의 물건이었다.
그 시절 정육점을 했던 우리 집은 가게 중앙에 그 난로를 두고 늘 따뜻하게 불을 피웠다. 그런데 사실 나에게 난로는 따뜻한 기억보다는 맛있는 기억이 더 강하다. 소를 도축해 온 날이면 아빠는 가장 좋고 비싼 부위를 그 자리에서 바로 썰어 식구들 몫을 먼저 챙기셨다. 한 손에는 먹기 좋게 손질한 소고기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알루미늄 포일을 들고 우리 남매가 있는 난롯가로 오시면, 우리는 젓가락을 들고 먹을 준비를 했다. 난로의 뚜껑에 포일을 깔고 그 위에 소고기를 척-척- 올리면 난로의 열기에 고기가 육즙을 흘리며 서서히 익어갔다. 기름 냄새 사이를 비집고 소고기의 고소하고 달큼한 냄새가 코를 간질였다. 그 시절 향수처럼 늘 내 몸에서 풍기던 고기 향이었다.
난 그때 먹었던 그 고기 맛을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한다. 5~6살의 어린 나이였기에 미각의 기억이 온전하지 않다. 그럼에도 내 인생 최고의 소고기를 꼽으라고 한다면 난 난로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던 그 소고기를 꼽는다. 그만큼 맛있었다는 건 분명하다. 캠핑 온 것처럼 괜히 설레서 꼭 나무젓가락으로 먹었는데 그런 낯섦이 좋았던 것 같다. 집에서 먹는데도 나들이 분위기에 취해 먹은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설렘보다, 가장 좋은 건 자식 먹이려던 아빠의 마음이 더 와닿는다. 뉴스에서 소고기 200g을 꾸준히 먹으면 성장에 좋다는 걸 듣고 매일 소고기를 챙긴 엄마의 정성이 더 뭉클하다. 가게 안 단칸방에 네 식구 모여 살던 가난한 시절인데 난 늘 그 시절을 부자로 기억하곤 한다. 어렸을 때는 고기를 많이 먹었으니까 부자인 줄 알았고 조금 더 커서는 그나마 그때가 더 낫다 생각할 만큼 집안 형편이 안 좋았다. 그리고 지금은 식구들이 똘똘 뭉쳐서 마지막 한 점을 서로에게 양보하던 따스함이 그 시절을 부자로 만들어준다.
고기를 김치처럼 흔하게 먹던 화려한 시절은 몇 년 가지 못했다. 소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며 끝내 폐업으로 막을 내렸다. 가게를 정리하면서 엄마가 제일 소중히 챙긴 건 사골이었다. 매일 새벽이면 소뼈를 푹푹 우리고 기름을 걷고 또 우리고 또또 걷어내고, 엄마 아빠의 잠과 맞바꾼 사골국물. 팩에 담아놓은 그 뽀얀 국물을 냉동실을 가득 채울 만큼이나 한가득 이삿짐에 실었다. “내 새끼들 이거라도 먹여야지.” 참, 자식이 뭐라고 그렇게 알뜰살뜰 먹이고 입혔을까.
그렇게 먹이고 입히기 위해 바쁘게 장사하느라 부모님은 나랑 놀아줄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혼자 소꿉놀이를 하며 살짝 미워하기도 했다. 그래도 가게 곳곳에 찻잔이며 접시며 플라스틱 당근 따위를 늘어놓은 채 엄마 아빠의 옆에서 놀고 있으면 같이 노는 기분이 났다. 아빠의 칼 가는 소리, 엄마가 “공주, 조심히 다녀.” 하고 외치는 소리. 그 속에서 나는 늘 같이 놀았다. 여기저기 누비며 놀다 보면 간식으로 소고기를 입에 넣어 주시곤 했지.
소고기를 구우면 여지없이 그때가 떠오른다. 분홍색 소꿉놀이 세트, 기름 냄새나는 난로, 사그랑 반짝이는 포일과 그 위에서 익어가는 소고기. 정말이지, 지금은 다시 못 먹을 별미였다. 제 입으로 들어갈 것까지 전부 자식 입에 넣어주시던 부모님의 마음이 담긴 소고기는 가장 비싸고 귀한 것이었다. 가장 싱싱한 고기를, 가족들이 다 같이 둘러앉아 소풍 온 것처럼 구워 먹던 소고기. 그래서 나한테 소고기는 난로가 데워주던 따뜻함이다. 그래서 난로는 나에게 따끈따끈 맛있는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