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도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살기 위해 먹는 자, 먹기 위해 사는 자. 나에게 둘 중 어떤 종류의 인간이냐고 묻는다면 난 망설임 없이 답할 수 있다. “나는 먹기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습게도 나는 먹는 행위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 밥을 거를 때도 많고 입맛 없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산다. 이게 대체 무슨 모순이란 말인가.
내 논리는 이렇다. 나는 허기지다는 이유로 아무 음식이나 대충 때우는 사람이 아니다. 삼시세끼 밥때가 되었다고 해서 없는 입맛에 억지로 식탁 앞에 앉아 밥을 밀어 넣는 사람도 아니다. 그러니까 난 살기 위해 먹는 사람은 아니란 말이다. 절대 생존을 위해 무감각하게 음식을 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굉장히 까다롭게 고르는 편이다. 마치 수라상을 올리기 전 음식을 하나하나 꼼꼼히 확인하는 장금이의 심정으로 온도, 모양, 청결, 향 등을 따져서 괜찮은 것들만 입으로 들여보낸다. 물론 그게 끝은 아니다. 1차 관문을 통과하고 입 안에 들어왔다면 이제 혀가 직접 심사하는 2차 관문이다. 여기까지 통과하면 비로소 나의 뇌는 그 음식에 ‘먹어도 되는 음식’이라는 인증마크를 찍어준다. 그토록 온갖 까탈을 다 떨어대며 받아들인 음식만을 아주 적절한 때에 적당량 먹는다. 난 늘 그렇게 먹을 것에 진심인 사람이다. 이런 내가 먹기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닐 리가 없다.
음식에 대한 나의 까다롭고도 진지한 철학은 집안 내력이다. 전라도 토박이인 외할머니로부터 손맛을 물려받은 엄마는 한 때 식당을 했을 만큼 그 실력이 좋았다. 아빠 또한 다르지 않았다. 할머니가 전라도 분이었는데 동네에서도 제일가는 요리 솜씨로 잔칫날만 되면 모두들 할머니의 손을 빌리고 싶어 안달이었다고 한다. 그 덕에 아빠도 요리하는 손맛이 남달랐다. 게다가 반찬은 꼭 접시에 덜어 먹어야 하고, 나물은 그때그때 무쳐서 먹어야 할 만큼 입맛도 손맛만큼이나 남다른 분들이었다. 그런 부모님 밑에서 자랐으니 내 입맛이 까다로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 집은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비싼 옷은 못 사더라도 음식 하나는 기가 막히게 먹었다. 부모님은 음식도 먹을 줄 아는 사람이 먹는 거라고 말씀하시며 나와 오빠를 먹을 줄 아는 사람으로 키우셨다. 봄이면 알 가득한 꽃게에, 주꾸미를. 여름이면 하모회 먹고, 복날에는 민어를 사다가 회 떠먹고 뼈는 푹푹 고아 먹었다. 가을이면 전어회에, 온갖 과일을 챙겨 먹었고 겨울이면 방어회를 먹었다. 철마다 챙겨서 먹다 보니까, 음식으로 계절을 구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나에게 음식은 맛의 평가가 가장 중요했다. 맛이 있는지, 없는지 그게 음식의 전부나 다름없었다. 그렇다 보니 음식은 참 잘 고르는데 무언가를 ‘먹는’ 자체에는 흥미가 안 생겼다. 분명 맛있는 음식을 잘 먹고 있는데 자꾸만 먹을 이유를 고민하게 되었다. 깊은 맛을 못 느끼고 허하달까.
음식의 참맛을 고민하게 된 건 우연히 TV에서 본 어떤 이야기 때문이었다. 어느 시트콤에서 콩국수를 먹는 장면이 나왔는데 주인공이 돌아가신 엄마를 떠올리며 눈물 젖은 국수를 먹고 있었다. 엄마가 큰 수술을 받기 전 날, 성치 않은 몸으로 맷돌에 콩을 갈아서 자식들 먹을 콩국수를 해놓고 입원하셨고 이후 주인공은 그 콩국수를 먹다 엄마의 임종을 듣게 된 사연이 나왔다. 주인공이 먹던 콩국수는 어떤 맛이었을까. 그날 엄마의 손길이, 자식들을 향한 엄마의 사랑이, 허망하게 엄마를 보낸 자식의 죄책감과 그리움이 담겨 있지 않을까.
물론 음식이라면 맛있어야 좋은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맛있고 맛없고로 따질 수 없는 것들도 있는 법이다. 우리네 사는 모습을 의·식·주로 표현하는 건 그만큼 먹고 자고 입는 게 우리들 생활을 담기 때문이다. 인간이 살기 위해선 최소한의 섭취가 필요하고, 지치고 힘들 때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힘을 내어 살기도 하는 것 아니겠나. 음식을 먹으며 함께 먹던 그리운 누군가를 떠올리기도 하고, 하루 힘들었던 일을 소주 한 잔에 털어버리기도 하고, 콩닥거리는 마음으로 설레는 사람과 밥을 먹기도 하는 것. 그런 순간들이 음식에 담기는 추억이고 참맛이겠지.
뒤늦은 깨달음이지만 덕분에 지금의 나는 음식을 입으로 먹고 기억으로 먹고 분위기로 먹고 즐거움으로 먹을 줄 알게 되었다. 여전히 입맛은 까다롭고 이것저것 많이 따지지만 그만큼이나 음식의 이야기도 정성 들여 모으는 중이다.
세상 살아가는 아름다움을 담은 음식. 한자로 아름다울 미(美)에 먹을 식(食)을 써서 미식(美食). 그것이 내가 쫓고자 하는 음식의 참맛이다. 이제부터 지금껏 내가 듣고 겪으며 모아 온 바로 그 미식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