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 그 가혹함

by 정다훈

가장 최, 착한 선을 쓰는 최선(最善), 이 단어가 가진 그 가혹함을 알고 있는가. 우리는 항상 노력을 해야하며 그에 따른 성과를 얻어내지 못한다면 도태되는 삶을 살고 있다. 헌데 그 노력의 정도에 있어서 우리는 때로 최선을 쉽게 꺼낸다. 최선이 붙을 수 있는 노력은 결국 성공해낸 결과가 있는 것인데도 말이다. 성공하지 못했다면 정말 최선을 다 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최선이라 불릴 수 없는 사회에서 쉽게 만족하고 자신에게 너그러워지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


‘당신이 만약 돌아간다면 이보다 잘할 자신이 있느냐. 그때의 휴식이나 여가, 다른 볼일에는 이유가 없느냐. 지금보다 더욱 성장할 자신이 없다면 당신은 이미 최선을 다한 것이다.’ 라는 글을 읽고 좋은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보다 다른 관점으로 접할 필요를 느꼈다. 이미 겪은 일이기에 경험이 있으며 그로 인한 배운점이 있을 것이며 생각할 부분이 충분히 있을 것인데도 돌아가서 발전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미 그 일에 대해서 최선을 다 할 생각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성공한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존경하며 닮고 싶어 하면서도 그 들의 생활방식이나 사소한 것들에 대해서 깊이 알고 따라해보려 하지 않는다. 성공한 사람들이 정말 피나는 노력 끝에 얻어낸 결과만 보고 동경하는 것이지 그에 따라는 최선의 노력에 대한 것에는 궁금증을 느끼지 않는데 그 이유는 힘들 것이 분명하며 아마 나는 못 따라하겠지 하는 마음이 은연중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자기계발서를 좋아하지 않는다(그렇다고 자기계발서가 쓸모없다거나 안좋다는 뜻은 아니다. 나 또한 수많은 자기계발서를 읽었다.). 결국 그런 책을 쓰는 사람들은 노력의 크기가 어떻게 됐든 성공이라는 결과물을 가져온 사람들이며 책은 그런 사람들의 일대기가 담겨 있을 뿐이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 기록된다는 말이 있듯이 그들은 이미 승자가 되었으며 그를 자축하기 위한 글을 남긴 것일 뿐이라 생각한다. 위에서 말했듯이 그런 성공한 사람들이 자신이 어떻게 노력을 했으며 어떤 방향을 정했는지 보여주는 것은 매우 좋은 조언이라서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자기계발서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해준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이다. 이로 인해 독자들은 그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것에 있어서 조금의 거부감이 생길 수 있으며, 때로는 자신에게 맞지 않는 방법 같으면서도 마냥 이렇게 하면 되겠지 하면서 무작정 따라하는 모습이 보일 때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따라만 해서는 안된다. 아까도 말했듯이 최선은 정말 최고가 되려는 열정이 필요한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읽은 책의 사람의 두 배, 세 배 이상의 노력을 더해야 성공이라는 결과를 가져와 다시 자신의 이야기로 자기계발서를 꺼내놓을 수 있단 말이다.


허나 이 사회에 지친 필자는 '최선'이란 단어를 가혹하다 여기는 이유가 있다. 에피쿠로스의 건전한 쾌락주의를 동경하는 사람으로써 이 전 글에서도 말했듯이 우리는 충분하다라는 감정을 느낄 필요가 있다. 우리가 무언가에 도전을 하고자 한다면 그 곳에 최고가 되겠다라는 다짐 보다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다. 숫자로 보이는 등수가 아니라 자신이 만족할 만한 지점에 도달해야 할 것이며 제일 높은 곳에 올라가겠다는 마음이 아닌 제일 먼 곳 까지 나아가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기준은 사회에서 정해진 숫자가 아니라 자신이 만드는 자신만의 길 위에서 정해져야 할 것이며 우리는 모두 본인의 기준에서 최선을 다해 부딪힐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자신이 정한 길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노력은 필수적인 것이다. 요령을 부리려 하지 말자. 우리는 1등이 아닌 목표에 도달하여 그 만족감으로 행복을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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