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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훈 Oct 30. 2023

일기

2023.10.30

 정말 오랜만에 일기를 쓴다. 최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준비하던 자격증 시험은 부지런하신 다른 분들이 대단하시다. 신청 오픈한 지 3시간 만에 전국의 모든 자리가 마감되어 있어서 나의 게으름을 탓할 수밖에 없었고 내년으로 미루게 되었다. 기왕 준비하던 것이 무산된 이상 좀 쉬어볼까 했지만 우연찮은 기회로 애완동물 행사에 캐리커쳐 행사를 담당하게 되었다. 상상도 못 한 기회가 생겨서 그려본 적 없는 동물 그림과 부족한 손 그림을 열심히 연습하는 중이다. 거기에 약 3년 동안 해왔던 학점은행제의 마지막 기말고사를 어제 마무리했다. 이제는 말하기 부끄럽지만 대학졸업증이 생겼다. 올해 목표한 것들이 큰 것은 아니지만 천천히 다 이뤄가는 중이다. 여기서 오는 성취에 대한 만족도는 색다르다. 별다른 목표 없이 큰 틀만 잡아서 쫓으려 하다가 작은 목표들을 하나하나 만들어서 이뤄가는 동안 스스로도 성장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원래 바라던 방향과 조금 상이해진 것은 어쩔 수 없다. 올해에 일어난 변화 중 가장 큰 변화는 생각의 전환이다. 꿈의 찬양론자에 가까웠던 하지만 현실을 지독히 신경 쓰던 본인이 이제는 확실히 노선을 정했다. 역시 나는 현실을 견뎌내어 노력하기에 한없이 부족했나 보다. 스스로의 모자람을 잠시 한탄했었다. 짧은 한탄을 뒤로하고 정해진 노선에 충실하기로 마음을 잡았다.


 어떻게 보면 당장 3개월 뒤까지의 일이 모두 정해졌다. 소위 말하는 J가 된 기분이다. 약간의 계획과 그를 이뤄가는 것에 대한 성취감은 진작에 알고 있었기에 하루하루의 일과의 목표들이 망가지는 것을 싫어했지만 꽤나 넓은 범위의 시간에 목표를 세운 것은 기분이 묘하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것은 우월감을 가져오기도 할 정도다. 나는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겠는 인생에서 지나치다 만나는 돌에 도장을 하나씩 남기고 있다. 이전에는 도장이 아니라 돌을 파내어 잡으려 노력했었다. 이제는 순응해야겠지. 나는 나이가 들었다. 드디어. 나의 혼란스럽던 정신은 여전히 고등학생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성숙하다’라고 생각했던 것이 오만이었음을 깨달았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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