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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훈 Dec 13. 2023

의도전달

소통 방식의 변화

 소통의 방식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거의 얼굴을 보고 만나서 얘기를 나누거나 여의치 않을 때는 전화를 이따금 문자로 내용을 전했다. 시간이 조금 흘러서 스마트폰이 세상에 등장했다. 전화와 문자는 똑같이 사용했지만 문자나 전화랑은 다르게 인터넷만 있다면 공짜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메신저가 등장한다. 이 메신저는 한 종류에 그치지 않고 여러 모습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SNS라는 시스템은 사람들이 서로의 일상을 연락이 없이도 볼 수 있게 만들었고 그 속에도 새로운 메신저를 가지고 있다. 다양한 연락방법이 생기면서 점점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줄어들고 웬만하면 문자로 대화를 나누고 어쩌다 전화로 가벼운 안부를 묻는다. 편리함. 문명의 발전은 결국 사람의 편리함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며 생겨나기 때문에 이는 사람들이 놓치지 못한다. 물론 이런 편리함이 생겨남에 따라서 예전의 감성(향수)을 느끼고 싶어서 돌아가는 사람도 몇몇 있지만 결국에 이미 한 번 맛보았던 쉬운 방법을 잊지 못한다.


 이런 소통의 방식에서 문제가 생겨난다. 우리가 중학교 시절부터 배웠던 대화를 통한 표현에는 무엇이 있는가. 언어적, 비언어적, 준언어적 표현을 통틀어서 대화라고 했다. 이 속에는 행동, 표정, 상황, 타인의 기분, 어투에 따라서 단어의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헌데 이런 것 없이 단순히 글자에만 집중되어 있는 표현은 서로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시작한다. 뭐 그렇다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이모지(이모티콘)를 활용하면 되는 것이 아니냐-하는데 이도 한계가 명확하다. 매 상황에 알맞은 이모티콘을 모두 구비하고 모든 상황에 쓸 수도 없으며 쓸만한 관계의 한계도 명확하다. 이 문제는 마냥 메신저가 문제라는 뜻은 아니다. 표현의 방식이 좀 더 직설적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는 제안정도. 개인적으로 느낀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상하게 내용을 돌려 말하거나 타인이 먼저 눈치채어 주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자랑거리를 살짝 내놓으면 타인이 먼저 얘기를 꺼내주기를 바라고 기분 안 좋은 모습을 애써 숨기고 있으면 알아채고 위로해 주기를 바란다. 그냥 우리나라 정서(문화)가 그런 것이라 뭐라 할 것도 없다. 위에 말했다. 소통의 변화는 문화의 변화(문명의 발전)가 가져왔다고. 도구가 바뀌었으면 방식도 바뀌어야 하지 않는가?


 나는 평소 주변사람들과 얘기를 나눌 때 비언어적 표현도 꽤나 쓰고 준언어적 표현을 굉장히 많이 활용한다. 장난의 강도에 따라서도 어투나 어조를 바꾸고 각 상황과 상대에 따라서 다른 표현을 사용한다. 가령 친구 1과 친구 2가 있다면 똑같이 ‘안녕!’을 하더라도 그 느낌이 전혀 다르다. 친함의 정도와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고 서로 평소에 어떤 장난을 치고 어떤 대화를 주고받는지에 따라서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 전혀 다르니까. 그래서 나는 ‘굳이’여도 전화를 선호한다. 문자처럼 정확하게 내용자체가 전달되지 않을 때가 있어서 되물을 때도 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서로의 순간에 감정과 원하는 방향을 쉽게 알아차리고 공감할 수 있으니. 이런 나에게 사람들을 만나지도 못하고 전화도 안 되는 상태 거나 문자와 메신저를 선호하는 사람과의 대화는 불편하게 느껴졌다. 분명 내가 하는 이 장난 섞인 농담은 그런 뜻이 아닌데, 지금은 내가 장난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말하는 것인데 본래의 의도와 다르게 이해가 될 것 같아서 괜히 말을 늘였다. 그랬더니 짧게 요약하라 그러고 지루하다 그러고 서운하기 짝이 없다. 정확한 표현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단순히 나 지금 우울하다, 지금 기쁘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감정만 있지는 않잖는가. 타인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굳이 길게 늘여서 쓰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이를 해결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의 내 글이 완벽했겠지. 이 방법을 찾지 못해서 계속해서 의도를 설명하고 긴 묘사를 적어내고 순간의 감정에 대한 설명을 적는 것이니. 아직까지 단순히 글을 적기만 할 뿐, 이 안에 무언가를 온전히 담아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지경이다. 이런 문화에서 결국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글쓰기다. 영상의 접근성이 여러 매체를 통해 높아졌다 하여도 결국 글로 인한 소통(댓글창)이 활발해지기 마련인 것처럼, 우리는 인터넷이 더욱 편리함을 가져올수록 글의 필요성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타인에게 오해를 사지 않을 말을 해야 하는 것은 중요하다. 단순히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서도 아니다. 분명 당신이 타인을 불편하게 만들 목적이 없음을 상기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타인에게 자신의 의도를 완전히 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결국 이를 채워주는 것은 어휘력과 문자를 이용한 표현력 외에는 없지 않은가. 추상적인 표현을 가져오는 감성적인 글과는 다르게 목적성을 가진 글에서는 전달되어야 하는 것이 분명히 존재하니까.


 뭐든 하면 할수록 모르는 것들이 하나씩 눈에 띄기 시작해서 어렵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 같다. 처음에는 마냥 쉬워 보이고 단순해 보이던 것들이 정작 들어서 보면 중간중간 이어지는 이음새가 정말 복잡하게 되어 있어서 이를 하나씩 해결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 날이 갈수록 글에서 내가 생각지 못했던 문제들이 보인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야 할지 감도 안 와서 그냥 계속 써 내려가다 보면 언젠가 이를 능숙하게 연결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으로 계속 적고만 있다. 언제쯤 준언어적 표현이 없어도 나의 의도가 단순히 글에서 명확하게 전달될 정도의 깊이를 가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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