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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훈 Dec 20. 2023

아픔에서 만들어지는 내면의 나약함

건강이 1순위가 맞다.

 몸이 좋지 않다. 알고 있다. 어릴 적부터 큰 병을 여럿 겪었고 자라면서도 내 몸이 예민하고 약하구나-하는 것을 느낄 때가 많았다. 최근 병원 진료를 여럿 받으면서 느꼈다. 아, 내 생각보다 더 안 좋을 수도 있겠구나. 흠, 일단 밖으로 나와 담배를 하나 물었다. 몸이 안 좋으면서 무슨 담배냐. 근데 일단 불을 붙였다. 나도 안다. 지금 내 상태에서 담배를 피는 것이 자해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 왜 피는 거냐. 중독이 되어서? 아니다. 스트레스를 풀려고? 아니다. 그냥이다. 딱히 안 핀다고 해서 중독증상이 있지도 않고 화나거나 힘들거나 식사를 마치고 나서도 안 피면 안 될 것처럼 찾아서 피지는 않는다. 근데 그냥 그런 행위가 몸에 익었다. 익었으면 습관이 아니냐-하지만 그냥 안 피고 싶을 때는 안 피기도 해서 행위 자체가 박혀있지는 않으니 아니지 않을까. 그래서 또 그냥 피고 버렸다.


 아무렇지 않다. 몸이 안 좋은 나를 걱정하는 부모님의 티 나지 않는 걱정에 오히려 불편할 뿐이다. 괜히 남들에게 '아픈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받고 걱정이나 위로, 격려가 섞인 말을 듣고 싶지 않아 아무 데도 알리지 않는다. 나는 그게 싫다. 괜히 남들에게 나의 나약함, 약점을 드러내어 '아, 이 사람이 이런 부분이 부족하구나'하며 그거에 관한 동정 섞인 뻔한 말을 하게 만들고 듣는 것이 불편하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조언이나 메꿀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은 좋아하지만 내가 겪은 우리나라의 문화에서는 먼저 동정이 우선시된다. 또한 그 사람의 뒤에서 나의 약점이 어떤 식으로 변형되어서 돌아다닐지도 모르는 것이다. 말은 전달될수록 불어나고 불어날수록 넘쳐흘러서 결국엔 나를 삼킨다. 그렇기에 아무것도 함부로 내놓지 않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계획하고 어떤 식으로 진행하고 있는지도 타인에게 잘 말하지 않는다. 이를 실패했을 시에 나오는 동정 혹은 질타가 두렵고 성공했을 시에 나오는 시기와 질투 혹은 빌붙음이 역겹다. 정말 가까운 이들에게도 내 얘기를 잘 꺼내지 않는다. 나는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들과 멀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꺼내기에 부담스럽게 만든다. 그들과 공유하는 시간과 추억을 굉장히 좋아하지만 그렇지 않은 시간에 나타나는 나만의 사건 사고를 꺼내놓기는 싫은 것이다.


 만약 내가 수술이 필요해서 입원을 하게 된다면 이 또한 곧장 알리지는 않을 것이다. 가까운 이들의 연락을 받고 별거 아닌 일이지만 잠시 입원이 필요해서 하고 있다-정도로만 말해주고 시간이 지나 완치가 된다면 어떠한 것 때문에 그냥 좀 있었다-로 정리할 것이다. 과하다. 내가 봐도 나는 자기 방어 기제가 과한 편이다. 이전에도 말한 적이 있다. 이런 성격이 있고 결국 이는 나를 지켜주긴 하기 때문에 굳이 내놓지 않는 것이 내 성향일 뿐이라고. 하지만 또 알고 있다. 이런 것을 알리지 않는 것은 결국 외로움을 낳는다. 외로움은 무엇인가. 질병이며 고통이다.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우리의 모든 불행은 혼자 있을 수 없는 데서 생긴다.'라고. 물론 이 뜻이 단순히 무조건 함께 살아야 하는 존재-라는 뜻이 아님은 알고 있으나 외로움이 근원이 되는 말이다. 사람은 불행을 공유하고 따질 수 있는 이를 곁에 두고 싶어 한다. 결국 내가 모자라면 모자랄수록 곁에 모자란 사람이 붙어서 지낸다. 끼리끼리라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이런 나약한 이가 되기 싫다.


 아마 조만간 담배를 그만둘 것 같다. 표면적으로 체력을 이유로 들 테지만 분명 몸의 변화에 따른 선택이다. 나는 남들이 보기에 어리고 뭐든지 할 수 있는 나이일 테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너무 나이 들어 버렸다. 나이는 단순히 태어나서 가지게 되는 단순한 숫자가 아님을 깨닫는다. 정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고작 나이에 굴하지 않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한없이 늙어버릴 수도 있다. 나는 어느새 늙어버렸다.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정말 무작정 많은 도전에 발을 뻗었다. 그 속에서 행복을 찾고 희망을 보고 빛을 맞겠다는 다짐보다는 나의 생각이 나약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뛰어들었다.


 나는 몸의 아픔이 두렵다. 또한 그 아픔에서 만들어지는 내면의 나약함이 정말 무섭다. 끝없이 무기력하고 모자라지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기분.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다. 아마 감히 말하기 어렵지만은 아픈 이들이 느끼는 바일 것이다.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잠기는 나약함. 이것만큼 아프게 하는 것이 없다. 아, 건강하고 싶다. 건강이 모두에게 1순위인 이유가 하나씩 떠오르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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