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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훈 Dec 25. 2023

그래도 메리크리스마스

 반복된 일상에 무뎌진 줄 알았던 감각은 단순히 옛 향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뿐이었다. 지나온 시간이 남기는 흔적이란 나에게 시간이란 이름으로 기억이란 존재로 새겨지는 문신과 같다. 오늘은 크리스마스다. 어릴 적 산타할아버지란 신비한 존재에 대해 알게 된 이후에 하루도 울지 않고 착한 일을 해가면서 소박하지만 당시의 어린 나에게 굉장히 큰 선물을 기대했던 그날. 산타를 마음 깊이 믿던 어린 시절의 나는 전날부터 작은 손으로 연필을 꼭 부여잡아 서툰 글솜씨의 편지를 쓰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잠들었다. 시간이 지나 산타의 존재에 대해 점점 믿지 않는 시간이 왔음에도 크리스마스 자체의 분위기가 가져오는 추운 겨울 속의 따스한 연말과 사랑을 말하는 시간이 되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어 마냥 들뜨고 소중한 날이었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속삭이기도 하고 친구들과 다 함께 크리스마스라고 놀기도 하며 한 해의 마무리를 해주는 그런 날이었다. 오늘은 어떠한가. 연말이란 기분조차 들지 않고 그저 한 해가 또 지나간다는 사실에 또다시 몸에 문신이 하나 늘었구나-할 뿐이다. 분명 오늘은 내 과거에 특별한 날이었다. 지금은 여느 평일과 다르지 않다. 딱히 누구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크리스마스라고 해서 굳이 사랑을 속삭이고 싶은 생각도 없다. 오늘 하루의 시간이 흘러감에 원망스러울 뿐이다.


 똑같은 일상. 매너리즘에 빠져버린 듯이 이 일상을 헤치고 나올 생각이 들지 않는다. 지금의 삶에 안주하고 만족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을 선호하지 도전하고 깨지는 불안정한 삶에 출사표를 내밀기에 너무 늙었다고, 가진 것을 잃기가 두렵다고, 미래의 나를 상상하며 현재의 나를 믿지 못할 뿐이다. 그런 와중에 가끔씩 눈앞에 거슬리는 몸의 문신들은 너무 따스한 기분을 가져온다. 이 시간 속의 나는 어떻게 기쁘고 슬프며 아파하고 행복해했는가. 그 속에 남아있는 추위는 하나도 없다. 만약 있었다고 할지라도 몸의 온도가 모두 데워서 미지근하게 만들어버렸을 뿐이다. 그런 기억은 그냥 잊고 살아가는 것이며 따뜻한 기억에 의지에 온기가 꺼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때가 좋았지, 좋을 때지. 같은 뻔한 말 따위 하고 싶지 않다. 지나온 시간에 자신이 겪은 고통을 잊고 마냥 이제 와서야 행복했지-하는 것을 믿지 않는다. 분명 그 시간을 이겨내고 헤쳐 나오는 데에 스스로가 기울인 노력을 잊지 않는다. 이걸 쓰는 와중에도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지 조차 의문스러울 지경이다. 그래, 무뎌짐이 불러온 안정은 단순히 불안한 것에 대한 도전만을 없애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사람이 굳어지게 만들어버린다. 아무거나 할 수 있었기에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었고 어떤 것이든 뱉어낼 수 있었던 창작가의 길을 바라던 어린 날의 모습 따위를 기대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 가슴 아파하고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짓을 할 뿐이다.


 메리크리스마스, 이 단어가 들려오는 날에 어떤 것을 했어야 했던가. 과거의 나는 이 말을 듣고 말할 때 어떤 마음으로 어떤 생각으로 해냈는가. 지금은 누구에게도 메리크리스마스 같은 말 따위는 꺼내지 않는다. 그저 ‘곧 새해구나. 또 새해구나.’하며 지나간 시간을 되새길 뿐이다. 그러면서 또다시 새로운 해가 뜰 때의 달라진 자신을 기대하며 미래의 나를 신뢰하고 현재의 나를 내려놓는다. 12월 25일은 더 이상 나에게 특별하지 않다. 그냥 지나가는 수많은 날짜 중 하나 일 뿐이다. 사라진 동심에 애도를 표하고 사라진 감성에 그리움을 표하고 사라진 특별함에 슬픔을 표한다.


 나에게 어떤 기념일이, 특별한 날이 생겨날 수 있을까. 옛날에 지독히 챙기던 모든 기념일들은 단순히 회사의 상술로 밖에 보이지 않아서 굳이 그날에 그런 것을 사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성이 미워진다. 차라리 그런 날에 아무렇지 않게 괜히 사탕을, 초콜릿을, 빼빼로를 하나 사들고 먹으며 소소함을 챙길 수는 없었던 것일까. 그렇게 울부짖는 소확행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거라도 할걸 하는 내 이중성에 웃음만 나올 뿐이다. 사실 나는 누구보다 바랬기에 지독히 부정했던 것일까.


 어떤 크리스마스를 보냈나.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기념일에 가족과 있었나 친구와 있었나 애인과 있었나. 이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사랑을 나누었나 우정을 나누었나 행복을 나누었나. 그 어떤 것이라도 누려야 했다. 괜히 무엇을 하더라도 ‘크리스마스니까!’하며 의미를 불어넣어 괜스레 잘 먹지도 않는 케이크를 사고 친구들을 불러 대화의 꽃을 피우고 사랑을 속삭이려 노력해 종이라도 울려봤어야 했다. 그래, 내가 믿었던 미래의 나는 그런 과거의 나를 원망할 뿐이다. 과거에 대해 향수를 느껴 현재를 즐기지 못해서 미래에 기대만 하다가 다다른 현실에 다시금 과거를 원망하고 현재에 안주하며 미래를 꿈꾸지 않는다. 이런 일상의 반복이다.


 세상은 찬란하다. 태양이 내려주는 축복과 같은 빛에서 수많은 색이 반짝이며 반사되어 물들인다. 그 속에 필요 없는 색은 다 모이고 모여 짙은 검은색이 되어 나를 뒤덮은 기분이다. 나는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다. 결코 나에게 이런 것이 모일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를 주인공이라 자처해서 세상의 악을 모은다. 자기 자신조차 지키지 못하는 언럭키 히어로. 이런 어두움에 물들어버려서 내 글에서 마저 아무 색깔이 느껴지지 않는다. 감정을 말하고 싶고 내 생각에서 지혜를 얻고 싶다 말하던 진짜 찬란했던 주인공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나. 몸을 뒤져서 그 문신만 찾아볼 뿐이다.


 행복보단 아픔이, 기쁨보단 슬픔이 찾아왔던 크리스마스여, 이제 새 해를 불러와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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