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이 가져오는 것은 안정감이다. 안정감이 가져오는 것은 나태함이고 이는 속박이다. 사람은 자신의 역할이 익숙해졌을 때 여유를 가진다. 이는 자신이 해야 하는, 가지고 있는 역할이나 능력뿐만 아니라 비슷함을 풍기는 시간과 살아가는 장소도 포함된다. 경험에 따라 겪어본 일이라면 이전보다 여유롭게 흘러 보낼 수 있는 것처럼 내가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익숙한 장소라면 수많은 시간이 나를 감싸 안아주어서 안정감을 느낄 것이다. 나는 태어나 다른 곳을 떠돌다 다시 돌아와 지금 살고 있는 지역에서 17년을 살았다. 한 아이가 태어나 고등학생이 되어 수능을 준비할 나이가 될 정도의 시간을. 나에게 이곳은 고향이나 집이 있는 곳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지나가다 마주치는 익숙한 가게와 길들, 친구들이나 아는 사람뿐만 아니라 서로서로 얼굴만 알음 하는 익숙한 사람들까지 하다 못해 아파트의 산책로의 꾸밈새나 가로수의 높이까지. 이 지역이 나에겐 곧 집이다. 다른 지역으로 가야 할 일이 생기면 지역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든다. 한데 돌아올 때는 우리 지역에 다 와간다는 표지판이 보이기만 해도 힘이 난다. 그 익숙함이 가져오는 안정감은 달콤하기에 이렇게 나를 꼬아낸다.
이런 익숙함은 분명 득일 것이다.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 자신의 소속감이나 유대감을 확실히 알고 넓게 퍼져 있는 것에 대해서 쉬이 자부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을 투자해 놓은 공간이 있다는 것. 이는 자신의 역량을 펼치거나 평소의 일상에서 가질 시간에 대해 여유로움이 묻어날 것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실이다. 내가 익숙한 만큼 타인들도 나를 익숙히 대하기 시작한다. 본디 익숙하면 할수록 소중한 것이지만 사람들은 쉬이 그 사실을 까먹기 마련. 점점 타인들은 나의 소중함을 잊는다. 또한 이런 안정감이 가져오는 것은 결국 나태함이다. 지금의 상황이 지독히 편안하고 안정적인데 굳이 변화를 위해서 움직일 필요성을 찾지 못한다. 삶이란 흘러가는 방향대로 여유롭게 살아가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으나 결국 원하는 길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스스로 노를 젓고 발을 움직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을 속박하고 있는 나태함을 벗어나는 것이 큰 해결책일 것. 안정감 속에서 자신의 발전을 꾀한다는 말은 어림도 없는 것이었다.
물론 나와 다르게 자신들의 익숙함 속에서 다른 가능성을 찾아서 발전해 나가는 사람들도 있을 터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새로운 것에 도입해서 완전히 다른 도전을 한다는 것. 웹툰작가가 하고 싶었고 그림을 좋아했던 사람들이 인스타툰에 뛰어들어서 성공을 하는 것과 연예인이 되고 싶고 그런 끼와 예능감이 있던 사람들이 연예과에 도전하다 유튜브에 뛰어들어서 성공을 하는 것처럼. 분명 비슷하고 같은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전혀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안정감 속에서 도전을 하던 사람들인가? 아니다. 애초에 그들이 처음에 하는 도전조차도 안정감이 기반이 아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안정감에 살고 있는 만큼 많은 불편함을 마주한다. 세상은 합리와 불합리가 반씩 나눠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신이 당연한 돈을 내고 음료를 구매한다면 곧 있어 당연하지 않은 돈을 내고 밥을 구매할 수도 있는 것. 우리는 매 순간 안정감에 속느냐 안정감을 만들어내느냐 하는 차이로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안정감에 빠진 이유는 무엇인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곳, 내 고향 그 자체다. 지독하다. 10년은 강산도 변하게 한다 하지 않았나. 하지만 그 10년의 시간을 옆에서 지켜보는 순간 변화는 느낄 수 없다. 5년을 본 친구의 변화보다 1년 동안 못 본 친구의 변화가 더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 이미 가까운 이의 변화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다름을 느끼지 못한다. 흔히 여자친구가 오늘 자신이 바뀐 것 없냐는 질문에 대답하기 어려운 것도 같은 이유다. 큰 변화가 아닌 이상 모든 것이 익숙해져 있어서 쉬이 다름을 느끼긴 어렵다. 지나온 시간들에 경험이 겹쳐서 보이기 때문에. 나는 처음에는 단순히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서 집의 안정감이 가져오는 나태함이 나를 어리게 만들었다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냥 이 지역 전체에서 가져오는 안정감이 나를 이곳에 속박시켰다. 그냥 이대로 이곳에 머물기를, 주변의 것들이 변화하지 않기를 바라는 다 늙어버린 생각을 가진다. 내가 어디로 벗어날 수 있을까.
내가 실에 집중해서 설명한 만큼 분명 득또한 존재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얻어낸 90점보다는 잃은 10점에 집중하는 것이 본능인 것. 자신이 모든 것을 가지지 못함에 통탄해하는 것이 가진 것의 소중함을 모르는 한심한 외침으로 보일 수 있음에도 모든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말도 안 되는 욕심이 더욱 부각되는 것이다. 꿈을 꾸라는 말을 할 때도 자주 들은 말이 아닌가. 저승에 갈 때 행복한 기억이 떠오르겠나 이루지 못한 꿈이 떠오르겠나-하는 것처럼 많은 것을 경험하고 이루었다 할지라도 결국 이루지 못한 꿈 하나의 불편함이 이를 모두 덮어버릴 것이다. 지금의 내가 90점짜리 인생을 살고 있다 할지라도 나는 또 10점에 눈이 팔려 1점씩 더 얻어내려 노력할 것이다. 이 끝이 100점이라는 보장은 없으며 100점이 끝일 거라는 확신또한 없지만 서도 말이다. 그렇다면 결국 나는 계속해서 잃어버린 점수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생각에 나타나는 나태함이 나를 90점에 속박시킨다. 익숙함. 이 달콤한 말은 끔찍한 말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