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움

by 정다훈

공모전에 도전하기 위해 책을 쓰던 도중에 글이 미치도록 적히지 않아서 새벽에 집을 나섰다. 마침 그 시간에 잠들지 않은 친구를 만나 두 시간 정도를 놀다가 헤어지고 집에 가려던 때에 뭔가 오랜만에 느끼는 새벽 공기에 이끌려서 인지 잠시 발걸음을 산책으로 옮겼다. 그렇게 10분을 걸었을까, 예전 같지 않은 체력을 원망하며 한 벤치에 앉아서 담배(옆에 꽁초 버리는 쓰레기통이 있는 흡연구역이었다.)를 피고 있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어디를 급하게 가는지 바쁘게 달리는 차들과 부지런히 하루를 시작하는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아직 완전히 출근을 못한 해와 그 덕에 시원한 바람과 함께 흩어지는 구름과 안개들, 이 모든 풍경이 각박하고 급한 세상임을 알고 있음에도 평화로워 보였다. 열심히 사는 듯이 보이는 사람들이 풍기는 에너지와 이른 새벽 공기가 주는 기분은 그 모든 것에 부러움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목표가 있는 사람들이, 목적지가 있는 차들이, 한없이 맑은 공기가, 그리고 그 속에 있는 나조차도. 모든 것에 부러움을 느끼며 조용히 사색을 하다 집을 가려고 일어설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항상 다른 사람들이 가진 것을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은 많이 했는데 내가 저걸 가지지 못해 불행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는 것을. 예전에는 부모님이 이를 욕심이 없다며 바라는 바가 크지 않거나 꿈이나 배포가 작을 거 같다는 말을 하며 나를 걱정했었지만 이제와 보면 오히려 좋은 것이 아닌가. 내가 바라는 것이 크지 않다는 것은 쉬이 나의 바람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고 나는 오롯이 나를 위한 행복을 챙길 수 있다는 것 아닌가. 타인에게 나를 투영해 나의 부족함을 자책하지 않고 남을 시기하지 않으며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 행복을 느끼고 남의 행복에 진심으로 공감해줄 수 있는 마음가짐이라니, 마치 도를 닦는 사람 같은 마음 아닌가.


우리가 목표를 이루는 데에 있어 불행은 필요 없다. 시련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것은 그것을 극복해내는 나의 모습에 대한 얘기지 시련에 닥치라는 뜻이 아니다. 우리는 보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의 목표와 잠재력에 관심을 기울여 불행에 신경조차 주지 않아야 한다. 행복은 바랄수록 적어지나 불행은 생각할수록 늘어난다. 한 가지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주변의 모든 것이 불행해 보일 것이고, 주변의 모든 것이 행복해야만 불행한 것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우습게도 우리의 마음은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것에 쉬이 동화되지만 그러면서도 긍정적인 것이 좋은 것이라며 바라는 모순적인 면모를 보인다. 삶에 기준을 행복과 불행, 긍정과 부정, 악과 선으로 나누지 않고 자신이 이렇게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질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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